오랜만에 장이 섰네요. 이번 주에 모두 8편의 영화가 개봉했는데, 빵빵하게 홍보하는 야심찬 기대작도 있고, 시끄럽게 떠들지만 기대에 못미치는 영화도 있고, 조용히 개봉했는데 알고보니 숨겨진 보석같은 영화도 있으니 잘 가려서 선택하셔야 할 것 같네요. 3,4월 극장에 볼만한 영화가 없다고 불평하셨던 영화팬들은 오랜만에 골라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국영화인 [비스티 보이즈]와 [가루지기]는 못 봤습니다.
할람 포 (감독:데이비드 멕켄지, 주연: 제이미 벨, 소피아 마일즈, 청소년 관람불가)
먼저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을 맡은 배우 제이미 벨입니다. 인생의 영화로 꼽아도 손색없는 [빌리 엘리어트]의 주인공 소년이었죠. 어느새 스무살을 넘긴 청년으로 성장했더군요. 참 훌륭하게 자~알 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좀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성장영화입니다.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거치는 할람(제이미 벨)은 익사사고로 어머니를 잃었습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아버지와 아버지의 비서였다가 지금은 새엄마 자리를 꿰차고 들어온 베리티(클레어 폴라니)가 공모해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숲속 나무 위 오두막을 완벽한 자기공간으로 꾸며놓고 혼자만의 시간에 깊숙이 틀어박힙니다. 빼어난 매력을 지닌 새엄마에 대해 증오와 성적 호기심이 뒤섞인 감정을 갖고 있던 할람은 새엄마와의 예기치 않은 사건을 겪은 뒤 에딘버러로 가출을 결행합니다. 길거리 노숙자 신세를 자처한 할람은 우연히 길에서 죽은 엄마와 꼭 닮은 여인을 발견하고 무작정 쫓아가고 그 여인 케이트(소피아 마일즈)가 근무하는 호텔에 접시닦이로 취직합니다. 평소 취미인 엿보기를 더욱 발전시켜 케이트의 사생활을 망원경으로 관찰하는데 몰입합니다.
청소년기를 추억이라는 마법의 필터를 통해 보면 풋풋하고 아름다운 기억들만 남아있기 쉽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죠. 남자애들은 일단 몸이 말하는 걷잡을 수 없는 욕망의 열기를 감당못하고 허둥대기 일쑤이고 어른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나약해 보이는 가슴 아래 부글부글 끓고 있을 수도 있죠. 특히 성적으로 줄세우기를 지상가치로 삼는 교육현실에 놓인 우리 청소년들은 더욱 그럴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겠지요.
[할람 포]는 평범한 성장영화의 공식을 탈피합니다. 그렇다고 결말까지 일탈을 결행하지는 않습니다. 뒤죽박죽 섞인 감정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어리석은 일탈을 선택하지만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하지는 않습니다. 유사 근친상간이라는 소재도 이런 불안감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입니다. 진실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 세상에 없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일찍 알아버리기도 합니다. 케이트라는 여인도 결국 할람에게 가장 큰 어른들의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니까요. 하지만 할람은 진실을 알고 있지요. 곳곳에 흐르는 영국 팝의 감미로운 음악과 제이미 벨의 풋풋한 연기, 조연 배우들의 균형잡힌 조화, 에딘버러의 고풍스런 건물과 거리 모습 등이 어우러져 꽤 볼만한 성장영화입니다.
(요즘 뜨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좀 있는 소피아 마일즈의 얼굴과 연기 보는 재미도 볼만합니다. 특히 두번에 걸쳐 할람을 동정과 사랑을 담뿍 담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눈빛 연기는 압권이더군요.)
호튼 (전체관람가)
아이들 극장 데리고 가서 보여줄 만한 영화가 없다고 아우성치셨던 주부님들 5월 들어서 본격적으로 바빠지시겠습니다. 어른과 아이 모두 만족시키는 가족용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죠. [호튼]은 동화작가 닥터 수스의 책을 원작으로 삼고 있습니다. 피카츄를 패러디한 부분도 있고, 덩치큰 코끼리 호튼의 여러가지 재롱과 액션, 티끌 속에 사는 도시 사람들의 에피소드 등이 별로 지루해할 틈을 주지 않는데다, 영화가 주는 교훈도 결국 다른 것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한다는 공존공생 의식을 강조하고 있어 교육적 효과까지 좋습니다. 호튼 역에 짐 캐리가 목소리 연기를 했지만 국내 개봉에는 철저하게 아이들을 타겟으로 해 95% 이상을 더빙판으로 선보이고 있습니다.
명탐정 코난 : 베이커가의 망령 (12세 관람가)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서양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들을 소화해 내는 수준을 보면 놀랍습니다. [플란더스의 개]나 [알프스 소녀 하이디] 같은 TV용 애니메이션이 일본에서 만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으니까요. 이 작품도 [셜록 홈즈]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 18세기 영국 런던이 중요 무대이기도 하구요. 전통적인 2D 셀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담뿍 담고 있고 초반에 부와 권력의 세습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고 있지만 중간 중간 들어가는 코미디가 정겨운데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다 개성넘치고 모험과 액션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어린이들이 보기엔 다소 무리일 것 같기도 한 일본 애니메이션입니다.
이밖에 지난 글에 자세히 소개해 드린 [아이언맨]과 윤계상 하정우 주연의 [비스티 보이즈], 봉태규 주연의 [가루지기], 체코의 거장감독 이리 맨젤의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미국판 라디오 스타라고 할 수 있는 [톡투미] 등이 개봉됩니다. 어린이날로 이어지는 황금 연휴 날씨도 화창하다고 하니 알차고 재미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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