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맘때 국제부에서 근무할 때였습니다. 외신 기사 중 일본 기상청이 벚꽃, 즉 사쿠라의 개화시기를 잘못 예상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는 기사가 들어왔습니다.첨부된 사진에는 기상청 고위 간부들이 일본식으로 머리를 깊게 조아리며 사죄하는 모습이 있었습니다.유난히 기온이 높아 예년보다 일주일 이상 빨리 피면서 빚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당시 그 사진을 보면서‘일본인들 참 오버한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까짓 벚꽃의 개화시기를 잘못 예상했다고 해서 대국민 사과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거죠.
그러나 벚꽃의 천국인 일본에서 생활하는 요즘에는 당시 상황이 이해가 됩니다. 일본 기상청은 당연히 사죄의 기자회견을 해야만 했으며,'정말 큰 죄(?)를 저질렀구나'라고 말입니다. 과장되게 말하면 다른 예보가 틀리는 것은 용서할 수 있어도, 벚꽃이 피는 시기는 맞춰주길 바라는 것이 일본인의 정서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만큼 일본인에게 벚꽃은 단순한 꽃 이상이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의 각별한 애정은 먼저 벚꽃에 쏟아지는 지나친 관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월과 4월 일본인의 화제는 단연 벚꽃입니다. 봄이 되면 온 나라가 들떠서 벚꽃이 피기만을 고대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도쿄에서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는 것은 3월말쯤이지만,적어도 2월말부터 매스컴의 관련기사가 쏟아집니다. 앞서 말한 전국의 벚꽃 개화 예상도, 즉‘사쿠라젠센(櫻前線)’은 단골 메뉴죠.날씨 기사의 첫머리로 언제쯤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릴지를 지역별로 상세하게 보도합니다.
각 지역별로 개화의 기준이 되는 벚꽃나무를 표본목이라고 부르는데, 도쿄는 우리에게 악명 높은 야스쿠니 신사 경내의 세 그루가 표본목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꽃이 필 무렵 기상청 직원이 매일 나가 꽃의 상태를 살피며, 5~6송이 정도 피었을 때‘개화’를 선언합니다.도쿄 기상청은 올해 3월 22일 개화를 하고 27일에 만개를 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특히 올해는 만개 시점이 빨라서 지난 1953년 통계발표를 한 이후 세 번째라고 합니다.
일본인 벚꽃에 대한 각별한 애정…매스컴은 물론 학계에서도 관심 높아
방송사들은 뉴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쿠라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는데, 이 중 대표적인 형식이 평생 사쿠라만 연구했다는 전문가들을 스튜디오에 초대해 벚꽃의 특징에 대해 대담 또는 퀴즈 형식으로 시시콜콜 공부하는 것입니다. 제가 본 한 NHK 프로그램에서는 50년간 사쿠라만 연구했다는 한 전문가가 나와서,3백년 된 벚꽃나무의 최근 60년간 개화시기 통계자료와, 8백년 전 사쿠라 관련 문헌의 기록을 토대로 벚꽃 개화와 만개시기의 연도별 변화에 대해 자세히 분석하더군요.정말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벚꽃만 연구했을까 의심이 날 정도로 집착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다른 교양과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이 정도의‘사쿠라 집중탐구’까지는 아니지만,벚꽃 관련이야기가 주로 화제가 됩니다. 물론 스튜디오를 벚꽃 색깔에 맞춰 장식하거나, 꽃 소식이 먼저 들려오는 남쪽 지방을 수시로 생중계로 연결하고, 리포터들이 꽃 봉오리도 채 맺히지 않은 벚꽃 나무 밑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은 기본입니다.
잡지도 벚꽃 관련 특집기사를 경쟁적으로 싣습니다. 벚꽃놀이, 일본말로‘하나미(花見)’를 하기 좋은 곳을 소개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 정보의‘심층성’이 보통 이상입니다. 그냥‘전국 명소 100곳’ 정도로 단순히 어느 지역이 좋다라는 수준에서 벗어나‘밤 벚꽃놀이에 좋은 명소 3곳’,’보트타고 봤을 때 절경인 명소 10곳’,'성이나 절과 어우러져서 좋은 명소 5곳’,’기차타고 가며 볼 때 좋은 명소 3곳’ 등 세분화된 기준을 제시합니다. 사쿠라 협회나 명망 있는 사쿠라 전문가의 엄격한 심사를 거쳤음을 명기하는 것은 필수입니다.
벚꽃에 대한 축적된 연구와 기록의 양과 질도 대단합니다. 어떤 대학은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연구를 위해 아예 대규모의 냉난방 장치를 설치했더군요.그 안에 여러 종류의 벚꽃나무를 심고 10월쯤부터 다양한 조건의 온도에 따라 개화시기가 어떤 영향을 받는가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담당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벚꽃은 봄에 따뜻하다고 일찍 피는 것이 아니라,각 계절의 영향을 다 받는다고 하네요.유명한 표현대로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가을의 선선함, 겨울의 찬 서리를 거친 끝에 나온다”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벚꽃 열기를 가장 빠르고 쉽게 느낄 수 있는 길은 엄청난 벚꽃놀이 인파를 직접 보는 것입니다. 벚꽃놀이가 왜‘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연중행사’로 불리는지, 이때 왜 1억 2천명이 넘는 일본인이 다 야외로 나온다는 말이 생겼는지 실감하게 됩니다. 성급한 사람들은 아예 개화 전부터 벚꽃놀이 무드로 들어갑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꽃망울 상태인데도,일찌감치 자리를 펴놓고 꽃놀이를 즐깁니다. 의의로 이런 사람들이 많아 명소는 일주일전부터 방문객이 크게 늘어난다고 합니다.그리고 벚꽃이 만개하면 가족과 연인,직장동료와 이웃 사촌 등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과 무리를 지어 하나미 명소를 찾습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사쿠라 명소뿐만 아니라 동네의 작은 공원까지 하나미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입니다.
특히 벚꽃이 만개한 주의 주말은 말 그대로 북새통입니다. 저도 지난 토요일에 가족, 일본인 친구와 함께 이노카시라 공원을 다녀왔는데,사람이 워낙 많아 공원 입구부터 계속 사람에 밀려 다녔습니다. ‘물 반 고기 반’이 아니라‘꽃 반 사람 반’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더군요.올해 10살 된 아들녀석도 자기 평생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이라고 해서 저희를 웃겼습니다. 경관이 좋은 나무 밑은 물론이고,사람이 다니는 길까지도 조금이라고 여유가 있는 곳에는 이미 돗자리가 깔려 있었습니다. 밤 벚꽃놀이,일본어로‘요자쿠라(よざくら:夜櫻)로 유명한 우에노 공원의 경우는 좋은 벚꽃놀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미리 나와 지킨다고 합니다. 특히 회사에서 회식을 할 경우 이런 일을 신입사원에게 맡기는데,얼마나 좋은 자리를 확보했느냐가 그 직원의 능력평가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하네요.
또 이때 크고 작은 벚꽃 축제,즉‘사쿠라 마츠리(櫻祭り)’가 전국 각지에서 열립니다. 개화시기를 따라 남쪽 규슈에서 북쪽 홋카이도까지 두 달 가까이 일본 열도가 달아오른다는 느낌을 줍니다.이 기간에는 평소에 조용한 일본인들도 시끄러워지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는데,낮부터 취해 있거나 공공질서를 지키지 않는 일본인들을 쉽게 보게 됩니다. 떠들썩한 분위기의 마츠리 그대로이죠.그래서 어떤 일본인들은“벚꽂을 핑계로 난장판이 된다”며 하나미의 유일한 부끄러운 면이라고 말하기도 하더군요.
일본 벚꽃 열기, '일본식 상술'이 부추긴 측면도 있어
사실 이런 벚꽃에 대한 열기 중 일정 부분은 일본식 상술이 부추긴 측면도 큰 것 같습니다. 각종 업체에서 수만 가지의 사쿠라 관련 상품을 쏟아내며 분위기를 띄우며 시장을 키웁니다.벚꽃의 색과 무늬를 입힌 옷이나 캐릭터 상품,생활용품,휴대폰을 비롯한 가전용품,술과 과자 등 사쿠라의 이미지를 상품에 입혀 팔아 댑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자주 쓰는 상술인‘기간 수량 한정상품’이라는 타이틀이 꼭 붙죠.올해는 마쓰자카야에서 나온‘사쿠라 팬더’라는 캐릭터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행사는 대목입니다.다양한 벚꽃 놀이 관광상품을 내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많은 전철 역이 이 기간 하나미 관광상품 광고로 도배가 되며,일부 여행사는 TV광고까지 냅니다.그 중에는 북상하는 꽃을 따라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상품도 있습니다.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벚꽃이 필 때 먹는 도시락, 이른바‘하나미 벤토’입니다. 집에서 직접 쌌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유명 백화점과 식당에서 예쁜 핑크 색 용기에 쌓인 도시락을 사는 것이 일반화됐다고 합니다. 벚꽃나무 밑에 모여 벚꽃을 감상하며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까먹는 것이 일본인의 큰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일본인들 벚꽃 선호 이유…벚꽃과 현대 일본인의 생활 정서 연관성 때문?
일본인들은 왜 이렇게 벚꽃을 좋아할까요? ‘좋아한다’는 문제는 개인 차도 크고, 쉽게 말하기 어려운 만큼 여러 가지 분석이 있습니다. 순식간에 피고 화려하게 지는 벚꽃의 특성과 일본인의 기질을 연관시켜 설명하기도 하고,일본의 역사와 전설 또는 특유의 사무라이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기도 합니다.저는 이런 해석에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보지만,벚꽃과 현대 일본인의 생활정서를 연관시키는 다음과 같은 풀이에 더 공감합니다.
먼저 벚꽃과의 친밀도가 높다는 것입니다. 일본 어디를 가도 동네마다 벚꽃나무가 널려있는 환경이다 보니,자연스럽게 벚꽃나무와 친해지지 않나 하는 것입니다. 이름없는 신사나 절,학교에는 어김없이 벚꽃나무 몇 그루가 심어져 있습니다.주택가에도 한집 건너 하나 꼴로 울타리에 벚꽃나무가 있어, 고개를 어디로 돌려도 활짝 핀 벚꽃과 마주치게 됩니다. 교외로 굳이 나가지 않고 도쿄 시내에서 JR같은 전철로 돌아봐도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벚꽃이 눈에 띕니다.서울 여의도나 남산 같은 벚꽃 가로수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말 그대로 지천에 벚꽃이 널려 있는 것이죠.어릴 때부터 이렇게 벚꽃나무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다 보면,아무래도 감정이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동네의 벚꽃나무 밑에 자리를 펴고 자신들만의 소박한 하나미를 즐기고 있는 일본인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벚꽃 나무가 친구고,벚꽃 놀이가 생활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벚꽃이 피는 시기가 절묘하다는 것입니다. 벚꽃은 보통 3월말에서 4월 중순에 만개를 하는데, 이 시기가 일본의 졸업식과 입학식,입사식 시즌과 겹칩니다.이별의 슬픔과 아쉬움,새로운 만남의 설레임이 교차되는 시기인데 그 추억의 배경 한 구석에는 적어도 한번은 벚꽃이 자리잡게 되는 것이죠.대표적인 것이 초등학교 입학식입니다.일본의 대부분 가정에는 만개한 벚꽃나무 아래에서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와 함께 찍은 입학 기념사진이 있다고 합니다.그래서 벚꽃에는 초등학교 시절의 향수가 묻어난다는 일본인이 많다고 합니다.
사쿠라가 등장하는 수많은 대중가요와 영화를 봐도 그렇습니다.벚꽃은 연인 또는 친구와의 만남과 헤어짐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매개물이 됩니다.학업이나 취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연인이나 친구를 먼 곳-대부분 도쿄-으로 떠나 보낼 때에는 활짝 핀 벚꽃이 오버랩 됩니다.또 주인공이 눈을 감고 바람에 함박눈처럼 날리는 꽃잎을 맞는 장면은 빠지지 않습니다.‘러브레터’로 유명한 이와이 ?지 감독의 영화 ‘4월 이야기’나,지난해 국내에서 개봉된 ‘벚꽃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센티미터’라는 애니메이션에도 일본인의 이런 감정은 잘 묘사돼 있습니다.피고 지는 벚꽃을 보면,가슴속에 묻어 뒀던 소중하고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라 감상에 젖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인들에게 벚꽃은 부정적 이미지…벚꽃에 얽힌 일제 점령기 굴욕의 과거사
그러나 우리에게 벚꽃은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우리의 과거사와 벚꽃,엄밀히 말해 사쿠라와 얽힌 악연 때문입니다.과거 일제 점령기 때 한국 혼을 없애고 일본식을 강요하는 식민적 첨병으로 벚꽃이 쓰이다 보니,마냥 좋다는 감정만으로 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대표적인 것이 창경궁의 굴욕의 역사입니다.일제는 조선 왕조의 대궐이던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격하하고 벚나무를 잔뜩 심어놓고 조롱을 했죠.창경원이 창경궁으로 돌아온 지난 1983년 전까지 말입니다.그래서 광복 후 벚나무는 일제청산의 상징이 돼,벚나무를 베어버리는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미국의 경우도 진주만 폭격이 있은 뒤,일부 도시에서 분노한 시민들이 벚꽃나무를 베었다고 합니다.
또 일본 군국주의 세력들이 벚꽃의 이미지를 정치 군사적 상징으로 악용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화려하게 피고 순식간에 지는 벚꽃의 속성을, 전쟁을 미화하고 부추기는 문화적 코드로 이용했던 것이죠. 메이지 시대 초기 벚꽃의 이미지를 사무라이 무사도의 상징으로 변용시키는데 이어,태평양 전쟁 때는 전쟁선동의 매개체로 활용했던 것이죠.대표적인 예가 과거 2차 세계대전 때 가미가제 특공대에 사쿠라 가지를 안기거나,그들이 탄 비행기에 사쿠라 문양을 새긴 일입니다.그래서‘사쿠라가 핀 야스쿠니 신사’는 비틀린 일본 제국주의 상징의 결정판으로 여겨집니다.일본 우익은 지금도 여전히 벚꽃의 아름다움을 군국주의와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벚꽃은 일본의 국화가 아니라고 합니다.또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품종이면서 경남 진해 군항제를 수놓는 왕 벚꽃나무의 원산지는 일본이 아닌 제주도라고 합니다.실제 벚꽃은 토종 꽃인 셈이죠.일제가 벚꽃의 이미지를 일그러지게 하지 않았다면,우리도 더 마음 편안하게 봄에 피는 아름답고 친근한 꽃으로 사랑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사진=유영수 기자)
※본 기사는 SBS의 편집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정보 제공자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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