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들은 고유가를 도약의 기회이자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유국들은 지난 1970년대 유가 폭등을 불러온 오일 쇼크 때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대부분의 산유국들은 당시 원유를 팔아 축적한 국부를 경제체질을 개선하는데 쓰지 않아 석유 의존적인 경제구조에서 탈피하는데 실패했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세계 원유 수요의 40%를 공급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오일머니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 인도 등을 중심으로 한 세계 석유 수요의 증가와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 주요 산유국들의 정세 불안 및 국제 투기세력의 가세로 고유가 추세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 유가 수준은 친미 왕정을 무너뜨린 이란의 이슬람 혁명 여파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던 27년 전의 가격(인플레 적용시 배럴당 101.70달러)에 비해 여전히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사실상의 고유가 시대가 열린 2002년부터 2조달러 이상의 오일머니가 유입된 것으로 알려진 OPEC 산유국들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것이 경제구조의 다변화다.
OPEC 국가 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는 수출의 70% 이상을 원유에 의존하던 중동 국가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동 국가들은 석유자원이 고갈될 가능성에 대비해 석유부문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줄이고 철강, 시멘트, 비료제조업 등을 육성하는 산업구조의 체질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대의 성공을 거둔 나라로는 두바이가 속한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꼽힌다. UAE는 오일머니를 활용해 중동의 관광, 비즈니스, 물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산유국들은 원유자원을 활용해 부가가치가 높은 석유정제 및 화학 분야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또 견실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사회 인프라 개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사업에 오일머니를 쏟아붓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란, 이라크를 포함하는 걸프연안 8개국에서만 향후 5년 안에 플랜트 및 건설 분야의 투자가 8천억달러를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가경쟁력 강화에 필수적인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재정이 튼실해진 일부 산유국에서 볼 수 있는 새로운 현상이다.
사우디, 오만 등 상당수 중동국가들은 외국인 노동자를 자국 인력으로 대체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면서 자국민의 기술수준을 높이기 위한 기초교육과 직업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사우디는 아랍권 최고의 기술인력을 양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과학기술대학인 카우스트(KAUST. The King Abdullah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올 9월 문을 열 예정인 이 대학의 학생에게는 학비, 교재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사우디 정부가 부담한다.
신현길 KOTRA 카이로 무역관장은 "고유가 시대를 다시 맞이한 중동 산유국들은 장기 성장기반을 구축하는 정책에 눈을 돌리고 있다"며 "중동의 지도자들이 과거와는 달리 오일머니를 미래를 위한 투자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유국들은 풍부한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해외로도 본격 진출하고 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리비아는 오일 머니로 40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를 조성해 월스트리트 투자를 준비 중이고, 카타르는 오일머니를 투자해 영국의 식료품 업체를 인수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의 고공행진이 꺾이지 않는 한 오일머니가 해외 자산과 부동산 쪽에 몰리는 경향이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유가 추세는 그러나 산유국들에도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대다수 산유국들은 오일머니의 급증으로 고율의 인플레에 시달리고 있다. 유가 상승이 원자재 등 다른 상품 가격의 동반 상승을 초래해 수입 의존도가 높은 산유국들의 국민에게도 큰 고통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700억달러의 외화가 순유입된 러시아의 지난해 1∼9월 물가는 중앙은행 통계 기준으로 2000년 이후 최고치인 7.5% 올라 물가상승률이 애초 예상됐던 8%를 초과한 것으로 잠정 집계되고 있다.
러시아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인플레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게 현지 언론의 보도다. 물가가 폭등하면서 식료품 사재기 같은 사회불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인플레 문제는 중동지역의 다른 산유국에서도 경제를 압박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사우디의 인플레율은 지난해 9월 5년만에 최고치인 4.9%를 기록했으며 사우디 정부는 가파르게 오르는 물가가 경제를 위협하는 최대 요인으로 보고 있다.
오일 머니 유입은 부동산 가격 상승 등을 야기해 직간접적으로 빈부격차를 심화시키는 원인도 되고 있다. 실제로 주요 산유국에서 빈부 격차가 더욱 벌어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고 있다.
러시아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것에 따르면 모스크바 시민 중 소득 수준 상위 10%와 하위 10% 간의 소득 차가 41배나 됐다.
대부분의 산유국들이 민주성이 결여된 독재체제이거나 왕정 국가인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오일 머니 유입에 따른 국부 증가가 산유국 국민 전체에 혜택이 되기보다는 특정 지배계층의 주머니만 불려준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원유 및 천연가스 수출국인 이집트의 집권 국민민주당은 지난해말 열린 전당대회에서 에너지 수출과 국영기업 민영화 등을 통해 창출된 국부의 공정한 분배를 요구하는 여론 때문에 진땀을 빼야 했다.
집권당과 정부는 국민이 모두 혜택을 보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기다려 달라고 설득했지만 고유가의 여파로 오르기만 하는 물가에 짓눌린 서민들의 불만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신 무역관장은 "고유가는 산유국들에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성장동력을 제공하지만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초래하기 때문에 산유국의 경제에도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가파른 유가 상승이 산유국들에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고 말했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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