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대통령 선거 운동이 종반으로 치닫으면서 상대 후보를 흠집 내는 ‘네거티브’ 공세가 치열하다. 신문 광고에서부터 대변인 성명, 유세전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막말 공격은 레드라인을 벗어난지 오래다. 거침없이 쏟아내는 각 진영의 막말 하이킥, 유형 별로 중간 집계했다.
◇ 대상 가리지 않는 막말= 막말 공격은 상대당 후보만 향한게 아니다. 이번 막말 공방의 신호탄이 된 막말은 다름아닌 국민을 향해 쏘아졌다. 지난달 26일 대통합민주신당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은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전국선거대책위원장 회의에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높은 데 불만을 표시하며 “국민이 노망든 게 아니냐”고 했다. “BBK사건과 관련해 국민의 60%가 김경준씨의 말을 믿고 있는데 이 와중에도 (국민이)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해찬 선대위원장도 “이 후보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가짜”라며 “이런 후보가 되면 대한민국은 가짜 나라가 된다”고 거들었다.
이튿날 노웅래 의원도 거침없는 막말 릴레이에 가세했다. 노의원은 이날 개인 성명을 통해 “지금 정치상황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혼돈 그 자체”라면서 “국민들이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것은 아닐까. 아니 집단최면에 걸린 것은 아닌가 의심하게 만든다”며 국민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선거유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부터 막말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김근태 공동선대위원장이 대전 유세에서 이명박 후보를 향해 “거짓말과 변명, 부패로 얼룩진 얼룩송아지”라고 말한데 이어 이해찬 공동선대위원장은 “이 후보는 온통 가짜. 진짜는 이 후보 부인의 핸드백 뿐”이라며 협공을 가했다. 김현미 대변인은 “그의 거짓말은 끝이 없다.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공격했다.
◇ '이에는 이'= 한나라당은 이에 발끈하며 곧장 맞불을 지폈다. 지난달 27일 강재섭 대표는 대전 유세에서 “노망든 후보와 노망든 정당을 물리치자”고 응수했고, 심재철 원내 수석부대표는 원내 대책회의에서 “신당과 정동영 후보는 노인 알기를 참 우습게 안다”고 비꼬았다. 나경원 대변인도 “노망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정후보와 신당 사람들”이라고 거들었다.
‘망언 3종 세트’도 공개됐다. 한나라당 박형준 대변인은 지난 달 28일 논평을 내고 “‘노망든 것’은 국민이 아니라 신당 선대위원장들이며 그들은 권력욕에 노망들었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국민들이 노망든 것 같다’ ‘대한민국이 가짜 되고, 유권자도 가짜된다’ ‘국민이 집단최면에 걸렸다’는 신당 측의 공격성 발언을 ‘정동영표 국민 모독 망언 3종 세트’라 이름 붙이면서 “국민들에게 석고대죄하라”고 촉구했다.
◇ 뱉은 막말 주워담을 수도 없고= 한나라당 이방호 사무총장은 지난 2일 당 출입기자들과 오찬 간담회 중 국민중심당을 가리켜 “구멍가게 지분 갖고 장사하고 다니면서 걸맞은 값을 불러야지 터무니 없는 가격을 부르면 장사가 되겠느냐”며 “BBK가 결론이 나면 굳이 국민중심당과 같이 갈 이유가 없다”고 비난했다.
그간 ‘沈-李’ vs. ‘沈-昌’ 연대를 놓고 저울질하면서 비공식 채널을 통해 한나라당과 막후 협의를 계속해오던 국민중심당은 이 사무총장의 비난성 발언이 있은 지 하루 만인 3일 오전 돌연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를 공식 선언했다. 이같은 결론에는 역시 ‘구멍가게’ 망언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중심당 류근찬 대변인은 단일화 선언 직전 논평을 통해 “(이 사무총장이) 국민중심당을 구멍가게로 비하하고 비선을 통해 접촉해온 ‘연대 논의’를 ‘장사’로 몰아붙였다”며 “그동안 한나라당과의 비공식 연대 논의가 무산되었음을 선언하며 더 이상 한나라당과 어떠한 연대 논의도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다”며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도 노인폄하 발언에 이어 건설노동자 비하 발언으로 또 한차례 구설수에 올랐다. 정 후보는 지난달 29일 인천 부평 유세 도중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을 비판하며 “자식들이 공사장에서 일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다. 이에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다음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건설 근로자는 위험을 무릅쓰고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이라며 “정동영 후보는 막말로 대한민국에 비수를 꽂았다”고 비판했다.
◇ 테러 수준 막말= 거친 화법 수준을 넘어 아예 비속어가 동원된 경우도 있었다. 탤런트 백일섭(63)씨는 지난달 13일 서울 염창동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이회창 출마 규탄 대회 및 필승결의 대회’에 참석해 이 후보에게 “밤거리 다니지 말라, 뒈지게 맞기 전에…”라고 말했다 곤욕을 치렀다. 파문이 일자 백씨는 이내 “발언의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며 “추운 날씨에 청중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한 농담이었다”고 꼬리를 내렸다.
◇ 제 발목 잡은 막말= 오래전 자신이 뱉은 막말이 유령처럼 목을 죄는 경우도 있다. 이 후보는 1998년 대권에 도전하며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 된다”고 말했으나 대권 삼수에 도전하는 올해는 주객이 바뀌어 한나라당으로부터 “이회창 찍으면 정동영 된다”는 말을 듣고 있다.
(중앙일보)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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