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셰익스피어로 먹고 사는 동네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에 인사 드립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지요? 영국에서 띄우는 첫 편지입니다. 제 블로그에서는 인사 드렸지만, '문화가 산책' 편지와 칼럼으로는 처음 인사 드리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영국 런던 북서쪽의 Coventry라는 도시에 있는 Warwick 대학에 와 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왔고요, 앞으로 1년 동안 여기서 공부하고 돌아갈 예정입니다. 기자 생활 십수년만에 다시 학생이 된 셈입니다.

낯선 곳에서 공부하느라 정신없겠지만, 여기서 보고 느낀 문화 이야기를 가끔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 방문기 전해 드립니다. 저와 가족들의 영국 생활기는 제 블로그(http://ublog.sbs.co.kr/shkim0423)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내가 사는 곳은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Stratford -upon- Avon)과 가깝다. 차를 사고 나서 제일 먼저 놀러갔던 곳이 바로 이 동네였다. 영국 내에서도 관광지로 굉장히 유명해서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 오래되고 예쁜 동네이면서, 유명 관광지 특유의 상업적 냄새도 나는 그런 곳이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 옆에 마련된 셰익스피어 센터를 중심으로 이 마을 곳곳에 셰익스피어와 관련된 유적지가 있는데, 이런 'Historic House'들을 묶어서 관람하는 패키지도 판다.

셰익스피어 생가
  ← 셰익스피어의 생가 앞에서

우리는 Shakespeare's Birthplace(셰익스피어의 생가)와 Nash's House & New Place(셰익스피어가 성인이 돼서 살았던 집. 셰익스피어의 손녀딸 엘리자베스의 남편 Tomas Nash의 이름을 따서 Nash's House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Hall's Croft(셰익스피어의 딸과 사위 John Hall이 살았던 집)을 묶어서 관람하는 '3 in Town Houses' 패키지 티켓을 샀다. 가족 티켓이 23파운드, 4만 원 좀 넘는 가격이다.

All 5 Houses 패키지는 타운 외곽에 있는 Mary Arden's(셰익스피어 어머니가 살던 집), Ann Hathaway's Cottage(셰익스피어의 아내가 어린 시절 살던 집)까지 포함하는데, 이 곳들은 걸어다니기에는 동선이 불편해 포기했다.

나는 셰익스피어가 성공하고 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사들인 집이라는 'New Place'(셰익스피어의 생가와 비교해 새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New Place라고 한 모양이다.)가 가장 재미있었는데, 이 곳에는 세익스피어의 전 작품이 전시돼 있다. 각 나라 말로 번역된 셰익스피어의 책들 중에는 한국의 정음사 판 도서도 포함돼 있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군'이라는 명대사를 한국어를 포함해 각 나라 언어로 녹음해 놓은 것을 들을 수 있게 해 놓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목만 쭉 이어서 만든 노래였다. 이름은 잊었는데 영국의 여가수가 로미오와 줄리엣, 멕베스, 햄릿, 이런 식으로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목들을 차례로 읊조리듯 노래로 부른다.

은우는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군'과 이 노래를 녹음해 놓은 것을 질리지도 않는지, 깔깔거리며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

전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 중에 좋아하는 순서대로 서열을 매기게 하는 코너도 있는데, 지금까지의 투표 결과는 단연 '로미오와 줄리엣'이 1위다. 갑자기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은우가 우리도 하자며 투표 용지를 들고 왔길래 직접 고르라고 했더니, 그나마 자기가 많이 들어본 '로미오와 줄리엣'을 1등으로 매겼다.

Shakespeare 'New Place'의 정원
  ← New Place의 정원에서

Hall's croft는 유명한 외과 의사였던 셰익스피어의 사위가 쓰던 진찰실을 중심으로 당시의 의학 서적과 치료 도구 등을 전시해 놓았다.

Hall's croft
  ← Hall's Croft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은 또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RSC의 본거지이기도 한데, 현재 RSC의 주극장은 공사 중이라 문을 닫았고, 소극장 두 곳만 문을 열고 있다. 언젠가 꼭 공연을 한 번 보러 와야겠다 생각했다.

RSC 스완 시어터
  ← RSC Swan Theatre

RSC Courtyard Theatre
  ← RSC Courtyard Theatre

스트랏포드 어폰 에이븐은 그야말로 셰익스피어로 먹고 사는 동네다. 셰익스피어 뿐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어머니, 딸, 아내까지, 셰익스피어와 조금만 인연이 있으면 모두 역사관으로 꾸며 관람하게 하는데, 실제로 보면 뭐 그렇게까지 비싼 돈 주고 볼 것까지는 없다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안 보면 섭섭해서 보게 돼 있다.

참 셰익스피어가 대단하긴 하다는 생각과 함께, 영국 사람들 셰익스피어 팔아서 장사 한 번 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에는 각 나라 언어로 된 안내문이 비치돼 있는데, 이 중에는 한국어로 된 안내문도 있었으니, 저 먼 나라 한국에서도 우리처럼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무수히 많은가 보다.

이렇게 유명한 문호 셰익스피어를 '낳은' 영국을 부러워해야 할까. 또는 셰익스피어를 이렇게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영국의 힘을 부러워해야 할까.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