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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 오버 미 - 고통을 넘어 소통으로

늘 짧은 머리로 등장해 많이 웃겨주는 할리우드 대표 코믹 배우 아담 샌들러가 부스스한 헤어스타일로 변신한 것만큼 파격적으로 진지한 연기를 한다고 해서 관심이 갔습니다. 포스터가 주는 이미지가 조금은 썰렁하고 쓸쓸해보여 아직 오지않은 가을을 미리 만나보는 것 같더군요.

뉴욕에서 그럭저럭 잘 나가는 치과의사 알란(돈 치들)은 가끔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현관 앞에서 공짜 상담을 시도하는 것 빼고는 잘 나가는 듯 보입니다. 똑똑하고 예쁜 아내와 귀여운 자녀와 널찍한 집에서 알콩달콩 살고 있지만 자꾸 무언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연히 거리에서 미니 스쿠터를 타고 가는 대학시절 룸메이트 찰리(아담 샌들러)를 만납니다.

그가 9.11 테러로 아내와 세 딸, 심지어는 애완견까지 몽땅 잃어버렸고 그 충격으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세상과 사람들과 소통을 거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찰리는 보상금과 보험금으로 나온 많은 돈을 소비하며 컴퓨터 게임과 한밤중 클럽 밴드 드럼주자로 가끔 연주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장인 장모를 빚쟁이처럼 피해다니고 자신의 상처를 기억나게 하는 말과 행위에 극도의 거부감을 보입니다. 그런 찰리가 이상하게도 알란에게는 스스럼없이 친구로 대합니다. 찰리에게 닥친 비극적인 사건을 건너뛰고 만나는 유일한 상대이기 때문입니다. 알란은 처음에는 호기심과 동정심에서 찰리와 시간을 함께 보내주는데 이상하게 점점 그에게 계속 끌리고 또 찰리의 삶이 부럽게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9.11 테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치·사회적인 차원이 아니라 철저하게 개인적인 차원의 소재로 활용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예고도 없이 닥쳐온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자연재해와 별반 다름없는 의미로 작용합니다. 큰 비극을 겪은 찰리의 고통,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이 희생됐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무력감과 죄책감, 그런 그를 더욱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으로 이끕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찰리의 대척점에 서있는 평범한 앨런도 갈등하고 고민하고 외로워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부각시킨다는 점입니다. 아내와의 대화는 자주 겉돌고 퇴근하고 돌아온 밤에 아내가 재미있어하는 퍼즐 맞추기를 재미있는 척하며 지켜봐야 합니다. 아담 샌들러의 연기도 좋았지만 특히 앨런이란 인물을 입체적으로 설정하면서 영화는 더욱 큰 힘을 보여줍니다.

혼자 덩그러니 사는 아파트의 집사 아주머니와 법정 후견인인 슈가라는 남자는 이런 찰리를 그냥 그대로 인정하며 돌봐주는데 가장 가까워야할 장인, 장모는 이런 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뜯어 고치려고 하는데 이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너는 아내와 딸을 잃었고, 우리도 딸과 귀여운 손녀들을 잃었다.그런데 왜 너만 유별나게 그러느냐'며 원망하는 심리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앨런도 이들에게서 찰리가 받은 거액의 정부 보상금과 보험료를 노리고 접근하는 놈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습니다. (참 돈이 뭔지...) 영화의 시작과 끝은 미니 스쿠터로 뉴욕의 밤거리를 구석 구석 훑습니다. 첫부분은 헤드폰을 낀 찰리가 누비고 중간에는 찰 리가 앨런을 태우고, 끝부분은 앨런이 혼자 타고 밤거리 골목 골목을 훑어나갑니다.

치과의사 시절 수입에 맞추고 가족수에 맞춰 살던 넓은 집에 덩그러니 혼자 사는데 집에서 밥도 안 해먹으면서 주방 리모델링에 심혈을 기울입니다. 찰리가 주방 꾸미기에 집착하는 이유는 영화 후반부에 밝혀지면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황당한 환자로 나와 처음에 앨런을 당황시켰던 도나(새프런 버로우즈)도 정신과 의사 앤젤라(리브 타일러)와 연결되며 극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찰리가 심각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다고 판단한 앨런은 정신과 의사를 친구로 가장시켜 자연스럽게 상담과 치료를 받게하려고 시도하지만 격렬한 저항에 부딪힙니다. 후반부에 잠깐 판사로 나오는 도널드 서덜랜드까지 모든 배우들이 나름의 중량감을 갖고 영화의 사실성을 높여줍니다. 황량하면서도 친근감이 가는 뉴욕의 모습과 다양한 음악도 조화롭습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또 타인의 고통의 무게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는 세상. 단절이니 고독이니 하는 단어가 일상이 되고 짜릿한 생명의 에너지를 느끼기 갈수록 어려워지는 세상에서 넓은 마음과 이해하려는 노력, 타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태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과 조화롭게 사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해와 오해, 단어 하나 차이지만 말과 행위로 연결될 때 엄청난 차이가 벌어진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요즘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의 쾌적하지만 어딘가 쓸쓸한 느낌과 딱 어울리는 영화로 추천해 드리고 싶습니다. 수입사가 단관 개봉을 해서 서울 압구정 스폰지 하우스 한 곳에서 밖에 만날 수 있는 점이 아쉽네요.

(치과 진료중에 찾아온 찰리에게 알렌이 '환자는 마취되어 있고, 이 앞에 간호사는 과테말라에서 온지 며칠되지 않아 영어를 못 알아들으니 할말 있으면 해봐'하는 상황, 그 어떤 코미디보다 더 웃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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