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당이 깨지는 것 아니냐는 당원들의 걱정이 최고조에 이르도록 계속됐던 한나라당의 경선룰 갈등이 20여일 만에 가까스로 일단락됐다. 한나라당 상임전국위원회는 15일 회의를 열어 8월에 23만 천여명을 선거인단으로 해 경선을 치르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개정안은 오는 21일 전국위원회를 최종 통과하면 비로소 효력을 갖게 된다.
당 지도부는 21일 최종 통과를 기다릴 것도 없이 경선과 관련한 본격적인 실무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벌써 당 선거관리위원장으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이 내정됐다. 오는 29일을 시작으로 전국 주요 도시를 돌며 실시하는 경선 후보 정책 토론회 계획도 확정 단계에 올랐다. 이달 안으로 후보 등록도 마무리될 전망이다.
외견 상으로는 공정하고 투명한 정책 경선을 향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들이 '양보하자는 어리석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나' '경선룰을 걸레처럼 만들면 안된다' 이런 험한 말을 쏟아 내면서 마치 당장이라도 갈라설 것듯이 싸우던 게 불과 하루 전이다.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해와 단합을 외칠 수 있는 게 정치다. 그래서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경선 앞으로'를 외치는 한나라당호의 미래는 겉 보이는 것처럼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당장 극적인 합의가 이뤄진 다음 날인 15일부터 이명박, 박근혜 두 주자들간의 기싸움이 만만치 않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경선룰 합의 이후 첫 외부 행사에서 "한나라당의 승리와 염원을 따라 국민 앞에 결심을 발표했다"며 자신의 결단이 당을 살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는 "우리가 또 양보한 것'이라는 짧은 말로 심경을 표현했다, 이 전 시장이 양보한 게 아니라 당초 합의했던 경선준비위 안을 무시하고 이 전 시장쪽으로 기울어진 안을 박 전 대표쪽이 양보 차원에서 받아준 것이라는 취지다.
두 사람의 주장은 각자 논리를 갖고 있다. 양보의 기준을 어디로 잡느냐가 관건이다. 경준위가 당초 합의했던 8월-20만 경선안이 기준이라면 분명히 박 전 대표가 물러선 것이다. 상임전국위가 통과시킨 안은 선거인단 수를 늘리고 투표율 제고 방안을 추가시켜서 이른바 민심에서 앞선다는 이 전 시장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재섭 대표가 낸 중재안을 기준으로 한다면 결과는 정반대로 나온다. 중재안의 핵심이었던 일반 국민 선거인단 투표의 여론조사 반영비율 67% 보장을 이 전 시장이 포기했다는 점이 결국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주자들 본인의 발언 공방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측근들의 말을 들어보자. 이명박 캠프의 정두언 의원은 경선룰 합의를 두고 "원칙을 빙자한 박근혜 캠프의 생떼를 막지 못한 것이 손해"라고 일갈했다. 박근혜 캠프의 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표의 원칙이 이 전 시장의 어거지를 이겼다"라고 맞받았다. 합의된 룰을 놓고서도 이처럼 명분 싸움이 치열하니 앞으도 진행될 경선 과정에서 어떤 충돌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어렵다.
그래도 우선 예상할 수 있는 충돌이라면 역시 줄세우기 경쟁이다. 70여명으로 구성된 상임 전국위 표결을 둘러싸고 양 캠프가 치열한 표단속에 나서 본 결과 이명박 전 시장측이 조금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종 의사 결정기구인 전국위 세분포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인원이 900명이 넘는 상황에서 막상막하의 세를 과시하고 있다 보니 표계산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양 캠프는 이번 표 계산 과정을 통해 세결집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만큼 경선에 나설 당원과 대의원들을 상대로 한 줄세우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줄 세우기가 하도 극성을 부려 당장 지도부 인사가 힘들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4.25 재보선 참패로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사표를 냈지만 어느 캠프에도 속하지 않은 중립적인 인사 찾기가 어려워 사표낸 이들이 아직도 일을 계속하고 있는 처지다.
줄세우기보다 훨씬 격렬한 싸움이 되리라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검증공방이다. 지난 3월에 정인봉-김유찬 폭로를 통해 이미 한차례 전초전을 치른 바 있다. 일견 이 캠프에 대한 박 캠프의 공격 전략이라고 보기 쉽지만 실제는 이것 역시 공방전이다. 서로 검증하고 싶은 것이 많다는 뜻이다. 다만 박 캠프가 더욱 적극적인 것으로 보이는 것은 검증이라는 게 앞서가는 사람 보다는 추격하는 사람에게 더 매력적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 전 시장이 한나라당의 대선 승리를 가져다 주기에는 불안한 구석을 많이 갖고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자는게 박 캠프의 전략이다. 반면 이 캠프도 자꾸 그렇게 나오면 박 전 대표에 대해 검증할 것도 적지 않다는 입장이다. 검증이라는 포장에 숨은 네거티브 공격의 파괴력은 이미 여러차례 입증됐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두번이나 낙마시킨 '병풍'이 대표적인 사례다. 나중에 근거없는 정치공세로 드러나든 말든 일단은 선거에 이기고 보자며 죽기 살기로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다.
한나라당 경선이 이런 충돌을 피하고 원만히 치러지는 것은 단지 한나라당 당원들만의 소망이 아니다. 자격 있는 대통령을 뽑는 일은 모든 국민들의 권리다. 대권을 거머쥘 능력과 인품을 갖춘 주자들이 올바른 방법으로 대선 후보에 선출돼야 하는 게 당위다. 보장도 못하는 공천을 약속하고 사람을 끌어들이는데 몰두했던 인물은 올바른 후보가 아니다. 남의 흠집 들추기나 근거없는 비방으로 표를 얻은 사람 역시 아니다. 압도적인 비율로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정당의 대선 후보가 이런 꼼수로 만들어진다면 그건 단지 한나라당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이제까지 한나라당 경선룰 공방은 민주주의의 절차를 따지는 것이었다. 선거인단을 어떻게 뽑고 비율을 어떻게 정하고 하는 것들이었다. 지금부터는 민주주의의 본질을 추구하는 경선이 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본질이라면 결국 공정하고 투명한 경쟁, 결과에 대한 승복 이런 것들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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