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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의원의 8번째 당적

이인제 의원이 11일 민주당에 복당했습니다. 20년 정치 역정에서 8번째의 당적을 갖게 된 거랍니다. 덕분에 일부 언론에 이의원에 대한 기사도 올랐습니다. 가끔 의원회관 등을 오가다 이의원과 마주친 적도 있지만 별로 취재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던 터라 저도 좀 새삼스럽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덕분에 인간 이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의원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판사와 변호사를 거쳐 1988년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경기도 안양에서 39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니 정말 올해가 꼭 2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1948년생이니 올해가 우리 나이로 60세가 되지요.

이의원은 통일민주당에 이어 노태우, 김영삼, 김종필씨의 3당 합당으로 태어난 민자당으로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이 때는 일부 소신 있는 정치인들이 3당 합당에 반대해 민자당으로 가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만 대체로 자신이 대단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 한 그냥 따라가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건 자발적인 당적 변경으로 보기는 어렵겠습니다.

민자당은 이후 당명을 신한국당으로 바꾸었고 이의원은 김영삼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과 초대 민선 경기도지사를 지냈습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는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에 참여해 이회창 후보에 패했는데 결국 경선을 불복해 탈당을 해 직접 국민신당을 창당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당시 이의원은 대선후보 TV 토론회에 점퍼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애국이라고 쓰인 띠를 이마에 두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체구가 비슷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 흉내를 낸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의원의 탈당과 경선 불복 과정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정한 영향력을 미쳤다는 얘기가 많습니다. 특히 김영삼씨가 이회창 후보로 가닥이 잡혀가는 상황에서 "깜짝 놀랄 만한 후보"를 언급하면서 이른바 김심이 이의원에게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많았습니다.

어쨌든 이의원은 국민신당 후보로 97년 대선에 참여해 김대중, 이회창 후보와 싸워 5백여만 표를 얻는 성과를 거뒀고 이는 이회창 후보의 패배와 김대중 대통령의 탄생으로 연결됐습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인제 효과'라는 신조어가 나타났습니다. 일종의 학습 효과 때문에 유권자들이 이렇게 탈당하는 후보에게는 등을 돌리게 된다는 겁니다.

또 선거법도 바뀌었습니다. 정당의 후보 경선에 출마했다가 탈락한 사람은 다른 정당의 후보나 무소속 후보로 입후보할 수 없도록 선거법이 바뀐 겁니다. 사실 현실 정치인으로서의 이인제는 이 사건을 계기로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하지만 이의원의 국민신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정치 국민회의와 합당했습니다. 이 또한 이의원의 정치적 선택에 따른 것이죠. 이어 국민회의는 새천년민주당으로 이름을 바꿨고 여기서 이의원은 동교동계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유력한 대선주자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 쪽으로 대세가 기울자 경선을 포기했고 다시 16대 대선을 눈앞에 둔 2002년 12월 1일 민주당을 탈당해 김종필씨가 이끌던 자민련에 입당했습니다.

이어 이의원은 올해 1월에는 심대평 충남지사와 신국환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던 국민중심당에 합류했습니다. 이의원의 홈페이지에는 아직도 국중당 참여를 대한민국 정치 발전을 위한 새로운 출발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에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기는 것까지 하면 "통일민주당 --> 민자당 --> 국민신당 --> 국민회의 --> 새천년민주당 --> 자민련 --> 국민중심당 --> 민주당"까지 8개의 당적을 갖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의원이 민주당으로 돌아오면서 내놓은 말은 이렇습니다. 

"2002년 대선 직전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급진좌파노선과의 결별이었을 뿐 결코 민주당이 추구해온 중도개혁주의를 반대해서가 아니었다.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 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해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역사의 소명을 부여받고 있다. 저는 부족한 능력과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역사적 소명을 받드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 한다".

얼마나 설득력 있는 말일지는 여러분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다만, 부서와 출입처 등을 떠나서 오랫동안 잊어버렸던 이름들이 선거철만 다가오면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는 얘기 속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이런 것도 정치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참고로 이의원이 밝힌 민주당 입당의 변을 붙여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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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민주당에 복당합니다.

민주당은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전통을 계승하였으며, 평화적 정권교체의 위업을 이룬 자랑스러운 정당입니다. 저는 1998년 민주당의 전신인 국민회의와 국민신당의 정치적 통합을 통해 합류하였고, 2000년 새천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여 그 해 4월 16대 총선의 선대위원장으로 일한 바 있습니다.

새천년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 노선을 표방하는 한국 최초의 정당으로 16대 총선을 통해 영남 이외의 전 지역에서 한나라당을 누르고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나 2002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급진좌파노선이 당의 중심을 장악함으로써 중도개혁주의는 위기에 봉착하였습니다. 저는 급진좌파노선이 집권하였을 때 나라의 장래가 위기에 처할 것을 염려하여 당을 떠나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당시 저의 탈당은 급진좌파노선과의 결별이었을 뿐 결코 민주당과 민주당이 추구하는 중도개혁주의를 반대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충정을 다 말씀드리지 못한 가운데 당을 떠나다 보니 당원과 국민 여러분께 큰마음의 상처를 드렸습니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항상 저의 가슴에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었음을 고백하며 오늘 다시 한 번 넓은 이해와 관용을 바랄 뿐입니다.

민주당은 민주당을 분열시킨 노 정권의 급진좌파노선과 영웅적인 투쟁을 통해 마침내 승리를 쟁취하였습니다. 저 또한 정치보복에 시달리며 타협 없는 투쟁을 계속하였습니다. 뿌리가 뽑힌 나무처럼 해체과정을 밟고 있는 집권당을 바라보며 민주당과 저의 투쟁이 얼마나 정당했는가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의 투쟁과 전진은 여기에서 그칠 수 없습니다.

민주당은 중도개혁주의 세력의 대동단결을 통해 정치적 혼란을 수습하고 나라의 미래를 열어갈 역사의 소명을 부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부족한 능력과 많은 허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이 역사적 소명을 받드는 일에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 5년 가까운 생이별을 끝내고 다시 민주당에 입당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민주당은 반독재민주화, 평화적 정권교체 그리고 중도개혁주의를 계승 발전시키는 중도대통합정당 건설을 조속히 이루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연말 대선에서 낡은 지역패권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한나라당을 누르고 위대한 국민의 승리를 쟁취해야 합니다.

저는 백의종군의 자세로 자랑스러운 선배 당원 동지 여러분과 함께 민주당의 승리, 국민의 승리를 위한 투쟁에 헌신할 각오입니다. 앞으로도 아낌없는 지도편달과 성원을 당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7.    05.    1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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