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그럴싸했다.
서울 논현동의 15평 남짓한 사무실. 책상과 응접실, 신화 음반이 차곡한 장식대, 냉장고까지….
한 살림을 차렸다.
그룹 신화의 앤디(본명 이선호·26)가 6일 오픈한 앤디(ND:New Dream)엔터테인먼트.
문 앞은 일본 팬들이 보낸 화환으로 빼곡했다.
앤디가 대표지만 명함은 프로듀서로 '팠다'.
아직까진 쑥스러워서.
1998년 데뷔한 신화는 최근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독자적인 개별 활동.
앤디·에릭(톱클래스엔터테인먼트)·이민우(M 라이징)는 각자 회사를 설립했고, 김동완은 별 소속사인 H2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으며, 신혜성과 전진은 신화의 전속권을 보유한 굿이엠지에 남기로 했다.
이중 그룹 막내에다, 자립심이 '결여'돼 보이는 앤디의 회사 설립은 다소 의외다.
주위에선 우려 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왜 직접 경영을 택했어요?"라는 질문에 답을 하는 앤디는 약 10년간 연예계 생활에서 쌓인 근원적인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결정적 요인은 최대의 적(敵)이라는 선입견.
"그간 유약하고 귀여운 남동생 이미지로 굳어졌죠. 제가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진지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대사를 해도 사람들은 웃었으니까요. 팀 내에서 저만의 색깔을 찾지도 못했고요. 다른 기획사에 들어가면 제 이미지가 정체될 것 같았어요. 저와 잘 맞는 스태프와 일하며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죠. 아직 덜 보여준 앤디의 색다른 모습이 많거든요. 쉽지 않겠지만…."
사실 멤버들 사이에서 앤디는 어른스러운 멤버로 꼽힌다.
형들의 카운슬러 역까지 도맡으니.
정작 본인은 자존심이 세 고민과 근심을 터놓는 데 익숙지 않다.
집안에서도 장남인 데다 가장(家長)이다.
경기도 일산 사는 아버지는 2005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중이고, 어머니 역시 병원 신세를 지고 있다.
"목동에 사시는 어머니는 이달 말 퇴원해서 경기도 부천 할머니 집으로 옮기실 예정이에요. 아버지는 많이 호전되셨고요. 기적이 일어난 거죠. 영주권을 포기해서 몇 년 내에 군대도 가야 하니 미국에 있는 누나(29)도 빨리 시집갔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부동산 등 재테크에도 관심을 갖게 되네요. 하하."
향후 이 회사에서 펼칠 앤디의 '뉴 드림'은 일단 본인이 중심을 잡고 우뚝 서는 것.
최종 목표는 후배 양성을 통해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SM·YG·JYP처럼 브랜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내년 자신의 솔로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며, 앞서 9~10월 신화 9집 발표 전까진 연기 활동에 매진하기로 했다.
사실상 처음 본격적인 연기 수업을 받고 있다.
실제와 달리 '고생은 눈곱만치도 모를 것 같은 '부티' 나는 이미지를 쪽 빼려 한다.
이 작업에 송승헌 등의 연기 선생님이던 조영준 씨가 도움을 주고 있다.
독립으로 인해 불거져나온 '신화 해체설'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다가 서서히 해체 수순을 밟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앤디는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에 힘을 준다.
"저희 입으로 말도 안 했는데 해체설이 돌아 황당했어요. 신화를 해체하면 멤버 개개인은 의미가 없단 걸 잘 알고 있어요. 지금도 멤버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활동 계획을 얘기하고 음반 스케줄 맞추자는 논의도 해요. 9~10월이 될 것 같아요. 홀로 있으니 신화가 더욱 소중하게 생각돼요. 우린 정말 많이 싸우며 정든 사이죠. 오히려 저희가 더 빨리 음반을 내고 싶은 걸요."
그러나 지금보다 더 힘든 시기는 신화 4집 때로 기억한다.
영주권 문제로 미국에 들어가 음반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그때까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던 그는 당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했고 5집으로 복귀하며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었다.
"내년 신화 데뷔 10주년 땐 초창기 로드매니저부터 SM 이수만 선생님까지 모두 초청해 파티를 열고 싶어요. 그간 고마운 분들께 '차 한잔 마시자', '소주 한잔 하자', '밥 한끼 먹자'는 식상한 '멘트'들을 하면서도 지키지 못했으니. 그때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어요."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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