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한나라당 탈당을 선언했습니다. SBS에서 발빠르게 긴급 여론조사를 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어제 SBS 8뉴스와 오늘 아침 뉴스에서 같은 팀에서 일하고 있는 손석민 기자가 보도를 해 드렸습니다.
SBS 8뉴스가, 2시 반에 시작된 탈당 선언으로부터 불과 5시간 반 뒤에 시작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자화자찬이지만 상당히 신속한 대응이었습니다. 여론조사 결과표를 받아든 것이 저녁 7시 10분이 지나서였거든요.
조사 결과를 보면 일면 의외인 부분도 있었고 일면 예측이 가능한 부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상 여론 조사란 것이 그렇듯이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우선 "탈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잘한 선택이라는 답이 41.9%, 잘못한 선택이라는 답이 39.6%였습니다. 오차한계가 +-4.0%포인트이니까 오차한계 안이고, 찬반이 팽팽히 맞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역별로 보면 차이가 큽니다. 손 전 지사가 지사를 지냈던 경기를 포함한 경기/인천에서는 '잘했다'가 44.7%로 '못했다' 35.0%를 크게 앞섰습니다. 특히 호남에서는 '잘했다' 48.7%에 '못했다'는 28.3%에 그쳤습니다.
'잘했다'는 답이 낮게 나온 곳은 영남과 강원/제주 입니다. 대구/경북에서는 '잘했다'가 33.1%에 '못했다' 52.4%였고, 부산/울산/경남에서는 '잘했다'가 35.2%에 '못했다' 42.2%, 강원/제주에서는 '잘했다' 34.7%에 '못했다' 49.1%였습니다.
정당 지지도별로 보면 한나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잘했다' 30.6%, '못했다' 56.4%로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그밖의 정당 지지자들은 모두 잘했다는 쪽에 훨씬 더 많이 손을 들었습니다.
손 전 지사를 지지하던 사람들 가운데서는 75.3%가 '잘했다'고 했습니다.
다음으로 손 전 지사가 내건 탈당 명분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입니다. "한나라당이 대세론에 매몰돼 과거로 회귀하려 하기 때문에 탈당한다"는 것이 손 전 지사의 주장인데요, '공감한다' 36.9%에 '공감하지 않는다'가 51.1%로 나타났습니다.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실제로 손 전 지사가 왜 탈당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같이 살펴봐야 합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로 선출되지 못할 것 같아서'라는 현실적인 판단을 한 응답자가 56.5%로 '한나라당의 이념이나 정체성과 맞지 않아서'(23.5%),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규정 결정 과정에 실망해서'(15.8%) 라는 답을 한 사람보다 많았습니다.
결국 대선후보가 되지 못할 것 같아서 나가는 것이지 '대세론에 매몰돼 과거로 회귀하려 하기 때문'이라는 탈당 이유는 그냥 하는 말 아니냐는 반응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얼핏 보면 탈당이 잘한 일이라는 답과 이율배반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런 상태에서 차라리 나가기로 한 게 잘 한 일이다'라는 것과 '탈당을 하며 내세운 명분에 공감하지는 않는다'는 반응이 상충되는 것은 아닌 듯 합니다.
공감 여부에 대한 태도를 지역별로 보면 대체로 수도권이나 호남, 충청 쪽이 영남이나 강원/제주 쪽보다 높게 나오긴 했지만 호남을 빼고는 모두 공감하지 않는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호남은 '공감한다' 51.3%에 '공감 않는다' 41.2%였습니다.
재미있는 건 성별 반응인데, 남자는 '공감' 41.0%, '비공감' 51.0%로 10%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는데 여자는 '공감' 33.0%, '비공감' 51.2%로 격차가 18.2%포인트로 크게 벌어졌습니다. 잘 한 선택이냐는 질문에 대한 태도에서도 남자는 '잘했다'는 답이46.9%, '잘못'이라는 답이 41.5%로 잘했다가 5.1%포인트나 높았습니다. 여자는 '잘했다' 37.1%, '못했다' 37.8%로 못했다는 답이 더 많았습니다.
대체로 남자에 비해 여자들이 손 전 지사의 탈당에 대해 더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합니다.
여기까지 보면, 잘했다 못했다는 태도가 중요하냐, 탈당 명분에 공감하냐 공감하지 않냐는 태도가 더 중요하냐를 판단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음 질문을 보시죠.
손 전 지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다고 보는지를 물었습니다. '범여권 후보 선출에 참여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은 14.6%, '독자적인 신당을 만들어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좋겠다'는 답은 13.9%였습니다.
그런데 '대선에 출마 않고 한나라당 외의 다른 대선후보를 돕는 것이 좋겠다'는 답은 34.2%, 아예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답이 29.6%로 나왔습니다. 결국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아야 한다는 답이 63.8%로 나타난 겁니다.
결국 어제 여론조사의 전반적인 기조는 '잘했다' '못했다'는 쪽 보다는 '공감하지 않는다', '후보로 나서지 마라'는 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SBS8뉴스의 기사 제목이 "탈당 명분 공감 못 해"로 나갔는데, 제목을 제가 뽑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이런 판단에 근거한 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혹 손 전 지사의 탈당을 긍정적으로 보는 분 입장에서는 '찬반이 팽팽했다'는 제목이 더 맞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적어도 어제 여론조사를 전체적인 기조로 보면 '탈당 명분에 공감 않는다'는 쪽이 제목으로 더 맞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만약 시간이 좀 여유가 있었더라면 '출마 않아야 63.8%'가 제목으로 뽑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어제 저녁의 경우에는 워낙 시간에 쫓기는 상황이라 그렇게 제목을 놓고 들여다볼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지난번 열린우리당 탈당 의원들에 대해서도 우리 국민들은 명분 부분에 있어서 좋지 않은 점수를 줬습니다. 이유야 어떻든 '탈당'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이 우리 국민들의 정서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정치 행위를 '명분'이라는 잣대로 평가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여기에는 흔한 말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시각도 들어있습니다. 자기 일이 아닐 때 편하게, 쉽게 생각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판단을 위한 충분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고요.
※ 어제 여론조사는 전국의 19세 이상 남녀 600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방식으로 실시한 겁니다. 95% 신뢰수준에 오차한계는 +-4.0% 포인트입니다. 저희들이 보통 1000명 이상을 조사 대상으로 했는데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500명 이상이면 신뢰도에서 큰 차이는 없습니다. 참고로 1000명의 경우 오차한계가 +-3.3% 포인트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