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화 전교조 위원장을 만났습니다. 최근 교육부 장관과의 '초콜릿' 회동과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비공개 면담 등 과거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정 위원장의 심중을 들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앞으로는 이념 투쟁에서 탈피해 공교육와 교육복지를 위해 힘쓰겠다고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부분에 대한 것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교조 측에 이번주초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대변인실에서는 정 위원장이 일정이 많아 금요일 오후에 그것도 40분간의 시간만 내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정 위원장은 요즘 매우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정 위원장은 인터뷰 직전에 국회에 다녀왔다고 말했습니다. 열린우리당 장영달 원내대표를 만나 최근 진행되는 사학법 개정 움직임에 대한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고 하더군요. 1년 남짓된 사립학교법 시행 이후, 사학비리가 눈에 띠게 줄어드는 등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투명한 사립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야가 더 충분히 논의하고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정 위원장을 직접 만나 인터뷰하면서, 오랫동안 잊혀진 학창 시절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원칙을 중시하되, 따뜻함을 잃지 않으신 것으로 기억되는 오래전 '선생님' 말입니다. 그 이유는 정 위원장 특유의 개성 때문이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강하면서 부드러운 면모를 동시에 가진 정 위원장은 인터뷰 내내 미소를 잃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목표를 뚜렷하게 밝혔습니다. 그래서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8만이 넘는 전교조의 '수장'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교육 문제를 고민하는 어느 선생님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됐습니다.
정 위원장은 지난 83년 중학교 도덕 교사로 교단에 섰습니다. 이후 89년 교원노조 설립을 위해 노력하다 해직됐습니다. 이후 전교조 여성국장과 부대변인을 맡았으며, 지난 94년에 복직했습니다. 그동안 전교조와 관련된 일을 계속 해왔으며, 재작년 전교조 서울지부장을 거쳐 지난해 말 제13대 위원장으로 당선됐습니다. 서울대 교육학과 79학번인 정 위원장은 김신일 교육부총리와는 '사제지간'이며, 결혼식 때 주례도 부탁한 사이입니다. 그래서인지 교육계 안팎에서는 그동안 갈등과 충돌로 점철된 교육부와 전교조의 관계가 회복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지난달 14일, 정 위원장은 교육부총리를 만나 현안을 논의한 자리에서 초콜릿 선물을 준비했고 부총리는 위원장에게 자신의 저서를 직접 건네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상호 입장 차이는 있겠지만, 앞으로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을 공유했습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초미의 관심사인 교원평가제에 대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지난 몇십년간 시행된 '근무평정' 제도에 따라 이미 교사들의 평가를 받고 있고, 인사와 승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겁니다. 여기에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교원평가와 성과급이 확대되면 교사들이 3중고를 겪는 것이라는 게 정 위원장의 얘기였습니다. 교육부는 내년 전면 실시를 목표로 신학기에 전국 506개 학교를 선정해 교원평가제를 확대했습니다. 그러나 정 위원장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와 공론의 장이 없었다며, 교육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여론수렴과 검토를 위해 교사들의 자발적인 평가제도 도입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정 위원장으로부터 들은 여러 이야기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얘기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동안 전교조가 왜 강경투쟁에 나설 수 밖에 없었는지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이었고, 나머지는 지난 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내세웠던 '참교육'을 위한 기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얘기였습니다. 전교조를 이해하고 싶은 분들께서는 조금 길더라도 다음 얘기를 눈여겨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동안 전교조가 강경투쟁에 나선 원인은 교육당국과 대화와 토론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점은 다들 짐작하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제도적인 문제에 있다는 게 정 위원장의 얘기입니다. 다시 교사들의 업무 전반에 대한 협약을 다루는 단체교섭이 지난 2004년 이후 교착상태에 빠져 있어 교육당국과 주요 현안에 대한 공통분모를 만들어내지 못했다는 겁니다. 전교조는 교육부가 교섭을 위한 공식적인 대화를 거부해왔기 때문에 항상 주요 현안에 대해 사전에 논의하지 못한 채 정책이 쏟아져나오다보니 여러 방식의 투쟁이 전개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정 위원장은 최근 이상수 노동부 장관과 비공개 만남을 갖고 교육부와 전교조간의 단체교섭이 4년째 막혀 있는 배경에 대해 설명했고, 교원노조법 개정을 통한 단체교섭 재개를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교육부가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하더라도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이 없기 때문에 교착상태가 무기한 연장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교육부로서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전교조외에 한국교직원노동조합과 자유교원조합 등 제2의 교원노조가 생겨 교섭위원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섭위원 구성에 이견이 생긴다고, 아예 교섭까지 4년째 미뤄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죠. 그렇습니다. 여론의 따가운 질타를 받은 전교조의 강경투쟁 이면에는 대화의 파트너인 교육당국의 방관이 없었다고 얘기할 수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교원평가제 역시 단체교섭을 통해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사항이었는데도 단 한 차례도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일방적인 정책 시행만 이어졌기 때문에 지난해 연가투쟁 같은 강경한 방식이 동원됐던 것일 수 있습니다. 교육 주체들이 서로 대화하고 공론의 장을 거치면서 문제점을 보완하자는 게 정 위원장의 입장이자 공약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 위원장이 강조한 말은 참교육 정신으로 돌아가겠다는 얘기였습니다. 지난 89년 전교조 출범 당시 기치로 내걸었던 참교육 정신을 구현하고 싶다고 정 위원장은 말했습니다. 비록 교원노조가 교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이지만, 다시 학교 현장에서 처음처럼 '참교육'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올해 사업목표를 잡았다고 정 위원장은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입시위주의 교육에 찌든 학생들을 구해내고, 21세기 교육희망을 구현하기 위해 다시 학생들 속으로, 학부모 속으로 다가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전교조가 과연 어떻게 달라지고 어떤 모습을 보일지 여러분 함께 지켜봐주시지 않겠습니까?
유럽의 사회적 배려 혹은 '톨레랑스'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교사들의 전국 단체인 전교조가 어떤 행보를 보이는지는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체행동을 놓고 밥그릇 싸움을 한다느니, 이익만 좇는 행위를 한다고 비난하기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단체행동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면서 동시에 노조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최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정 위원장과 교육부의 대화 창구는 그동안 막혀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최근 교육부총리와 면담 이후, 대화와 토론을 지속적으로 벌여나가면서 상호 협력하기로 뜻을 모은 대목은 그래서 반갑게 여겨졌습니다. '초콜릿' 회동은 그냥 언론이 만들어낸 작위적인 상황일뿐, 정작 중요한 것은 서로 대화하기로 뜻을 모았다는 부분입니다. 단체행동이라는 최후의 수단을 쓰는 것보다 사전에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생각이 정 위원장의 생각이며, 이런 생각이 전교조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지 여부가 바로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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