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얀거탑'이라는 TV드라마가 화제입니다. 1년 전 쯤엔 '연애시대'라는 드라마가 화제였죠. 인기라는 말 대신 굳이 '화제'라는 표현을 쓴 것은 두 드라마 모두 인구에 회자된 정도와 열렬 시청자층의 존재에 비해 시청률은 그에 못미쳤기 때문입니다.
이는 두 드라마가 '주몽'처럼 전 시청자층을 골고루 흡수한 것이 아니라, 특정 계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연애시대'가 주로 20대 중반~ 30대 중반의 여남(女男) 시청자층의 지지를 받았다면 '하얀거탑'은 30~40대 남성 시청자들이 시청률을 견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시청률 10% 중후반을 오르내린 '하얀거탑'과 '연애시대'는 이 밖에도 닮은 점이 많습니다. 일본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 영화 연출경험이 있는 PD가 만든 TV 드라마라는 점, 세밀한 심리 묘사가 돋보이는 웰메이드 작품이라는 점 등이죠.
구체적으로는 영화적인 미장센과 의도적으로 한 발 물러나 보는 풀샷(연애시대)- 속도감있는 교차 편집과 힘있는 타이트샷(하얀거탑), 서정적인 발라드(연애시대)- 웅장하고 클래시컬한 배경음악(하얀거탑) 등이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잘 섞이면서 시청자들을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스타일 측면에서 얼핏 보자면 서로 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두 드라마지만 같은 호르몬을 분비하고 있는 겁니다.
또 두 드라마 모두 '일본스럽게 탄탄한' 스토리를 깔고 가지만 이야기 자체의 힘보다는 강력한 캐릭터를 구축하고 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연애시대'의 캐릭터들이 상처받기 쉽고 섬세한 편, 개인적 성향을 띤다면 '하얀거탑'의 캐릭터들은 장준혁처럼 공격적이고 출세의 야망을 품은, 사회성 짙은 캐릭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둘 다 결국은 사람에 대한 얘기라는 점에서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이 감정 이입은 '파리의 연인'류의 환타지적 감정이입과는 많이 다릅니다. '하얀거탑'과 '연애시대'는 '저게 나라면 얼마나 좋을까'가 아니라 '저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감정이입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죠. 이런 강력한 감정이입의 드라마들이기 때문에 모든 계층의 시청자를 확보하는 무리가 따를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연애시대'의 캐릭터들은 내면적 자아가 중요하고 '하얀거탑'의 캐릭터들은 사회적 자아가 중요합니다(심지어 '하얀거탑'에서 가장 섬세하고 개인적인, 그래서 가장 '연애시대'적인 캐릭터인 최도영 또한 사회적 자아를 중요시하죠)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소하고 개인적인 데서 삶과 존재의 이유를 찾는 사람과 사회적 지위, 명예 등에서 삶과 존재의 이류를 찾는 사람. 자신 안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과 자신 밖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사람.
전자의 삶을 바람직하게 여기면서도 살다보면 후자의 삶을 지향하며 사는 게 보통 사람입니다. 자신 안에서 자아를 찾는 사람은 '혹시 내가 틀린 게 아닐까, 나만 잘못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렵고, 지위와 명예에서 자아를 찾는 사람은 '과연 내 사회적 지위가 진정한 나, 자아와 연관이 있을까', '내가 이 지위를 잃는다면 그 때도 사람들이 나에게 아부못해 안달일까' 불안해 합니다.
'연애시대'는 은호가 이렇게 읊조리며 끝납니다.
행운과 불행은 늘 시간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달려든다.
우리의 삶은 너무도 약하여서 어느날 문득 장난감처럼 망가지기도 한다. 언젠가는 변하고 언젠가는 끝날지라도 그리하여 돌아보면 허무하다고 생각할 지라도 우리는 이 시간을 진심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슬퍼하고 기뻐하고 애닯아 하면서 무엇보다도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고통으로 채워진 시간도 지나고 죄책감없이는 돌아볼 수 없는 시간도 지나고 희귀한 행복의 시간도 지나고 기억되지 않는 수많은 시간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우리는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은 격렬한 미움을 느끼기도 하고 또 가끔은 지루해 하기도 하고 자주 상대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간다.
시간이 또 지나 돌아보면 이 때의 나는 나른한 졸음에 겨운 듯 염치없이 행복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가 내 시간의 끝이 아니기에 지금의 우리를 해피 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얀거탑'은 누가 어떤 말을 하며 끝날까요. 장준혁, 그의 독백이 기다려집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