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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민주주의 창-신문의 보수화③ 역사

1) 민주화 과정…언론과 민주주의 한 배

유럽에서 B.C 6c 그리스에서 꽃피운 민주 공화정의 전통은 카이사르가 로마의 공화정을 붕괴시키면서 자취를 감췄다. 선출직 정부 관료 시스템을 1인 종신 지배체제로 전환했던 카이사르에 이어 정권을 잡은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을 폐지하고 세습왕정 시대를 열었다. 형식적으로나마 원로원의 지위를 인정하던 로마가 멸망한 5c 이후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철저한 1인 지배 왕정 체제로 바뀌었다. 국민 주권이나 민주주의 같은 제도적 장치들은 더 이상 찾을 길이 없었다.

서유럽 사회에 강력해진 왕의 권한을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시 나타난 것은 1215년 영국 존왕 때다. 1066년 프랑스 북구 노르망디 지방에 거주하던 덴마크 출신 바이킹 윌리엄이 영국을 정복한 뒤 세운 노르만 왕조의 존왕은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를 인정하며 왕권의 제한을 요구하는 귀족사회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왕도 일정한 법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는 법치주의의 회복이었다. 이후 영국에서는 더디지만, 조금씩 왕이 갖고 있는 권한을 제한하며 다수의 권한을 확대하게 된다. 왕이 독점하던 권한을 귀족에게 다시 경제적 상류층으로 이어 국민 다수가 평등하게 나눠 갖게 됐다. 민주주의에서 권한과 자유의 평등한 점유는 공직을 선출하며 그 공직에 누구나 입후보 할 수 있고, 누구나 선출권을 동등하게 갖는 데서 보장된다. 영국은 1832년 선거법 개정을 통해 돈을 많이 가진 사람만이 갖던 참정권의 문호를 점진적으로 개방한 데 이어, 마침내, 1884년 모든 남성에게, 1918년 여성에게 동등한 투표권을 줬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큰 틀에서 완성된 것이다.

민주화 과정에서 언론은 가장 강력한 추진동력이자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다. 언론은 개인 자유의 확대와 정치체제 민주화를 요구했으며 시민들에게 그 긍정적 결과물을 안겼다. 그러면서 언론 스스로도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 통제받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권리를 쟁취했다. 민주주의와 언론의 자유는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동반자적 관계였다. 영국 민주주의 발전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이 1215년 존왕의 마그나 카르타 수용이라면 언론 자유의 역사에서 상징적인 사건은 1644년 밀턴의 저서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출판이다. 당시 횡행하던 출판물 검열을 비판하면서 자유로운 출판 즉, 자유언론을 주장한 소책자다. 출판을 규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언론자유의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영국뿐 아니라 근대 사회 민주적 언론관에 큰 영향을 끼쳤다. 

17c 밀턴은 왕정 대신 공화제를 주창한 사람이다. 그만큼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던 밀턴이 당시 청교도 혁명을 일으켜 왕정을 타파하고 국왕 찰스 1세를 처형한 공화주의자 올리버 크롬웰의 비서로 일했던 것은 당연한 결과다. 자유언론을 주창하고 나아가 왕정대신 민주주의 공화제를 원했던 밀턴의 행보에서 민주주의와 언론의 관계가 읽힌다. 지난 90년대 초반까지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하던 한국 현대사를 돌이켜 봐도 언론의 자유가 민주주의를 확대하며 함께 발전해온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 민주화 이후 언론 위상 변화


그러나, 상황이 바뀐다. 민주주의와 언론이 반드시 동반자 관계가 아니라는 점이 새로운 역사발전 단계에서 부각된다. 정치체제가 특정인이나 특정 집단에 의한 과두적 지배 아래 놓였을 때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과 언론은 한배를 탈 수 있지만, 민주화 이후에는 질적으로 갈라진다. 쉽게 영국에서 공화제가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왕정제를 다시 택하지만, 그래도 실질적으로 왕을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게 할 때 언론과 국민의 이해관계는 같았다. 1707년 이후 영국 왕은 정부의 새로운 입법과정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없다. 지금도 법적으로 영국에서 입법권의 최종 권한은 왕이 갖지만, 왕이 이를 부정적으로 행사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국에서 1884년(남자), 1918년(여자)의 완전한 참정권이 실현된 뒤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관심은 민주주의 확대가 아니라 확대된 민주주의 공간에서 누가 권력을 쥐느냐로 관심사가 바뀌었다. 전통적인 보수당과 자유당에 이어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노동자들의 이익을 대변할 노동당이 등장해 정권을 다퉜다. 국민과 언론이 참정권을 달라고 외칠 때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정의(正義)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나, 어느 정치집단 간에 정권을 잡기 위한 경쟁은 정의(正義)의 문제와 꼭 일치하는 게 아니다. 가치관, 신념에 따른 선택의 문제로 격하된다. 인권을 확대하고,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방법론에 절대적인 기준의 선(善)과 악(惡)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 즉 신문사 별로 가치관에 따라 논조가 갈리고, 논조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갈린다. 여론(輿論)의 분화(分化)다.  

3) 언론 분화…계층, 정파적 매체


정권을 잡는다는 것은 법에서 정한 권력을 갖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국가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각종 법을 제정하고, 정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수반된다. 여기서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사람들이 양산된다. 계층(階層)이다. 과거 비민주화 시절 계급과 거의 동일하면서도 좀더 완화된 형태로 나타난 사회적 가름현상이 바로 계층분화다. 정책과 법률은 계층의 집단적인 지지나 비판을 받게 마련이다. 이는 정치적인 자유와 함께 인간의 궁극적인 행복을 구성하는 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경제적 이권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라는 정치 단계에서 분배라는 경제 단계로 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정치문제 가려져 있던 경제문제가 전면으로 나서는 동시에 거꾸로 정치현상까지 지배하는 측면으로 나타난다.

언론도 마찬가지 변화를 겪는다. 언론 특히 신문의 모습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쟁취하던 시절 자유언론과 민주주의 선도자로서의 긍정적인 언론의 역할과 큰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 정의의 문제를 벗어난 가치관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선악(善惡)의 정치 민주주의를 다루는 공익(公益)적 정의(正義)의 매체에서 사회적 이권 즉 경제 현안(국제정치를 비롯한 많은 연한이 결국은 기저에서 경제 문제와 결부됨)에 호오(好惡)를 표현하는 정파(政派)적 선전(宣傳)매체 즉 프로퍼갠더(properganda)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물론, 정책에 대해 사안별로 지지나 비판을 가하며 언론의 고유의 비판과 사회감시 기능을 어렵게 이어 가는 고귀한 언론도 있다. 하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신문은 민주화 시대 이후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가에 진실을 숨기거나 아니면 의식조차 못한 채 정파적 선전매체가 된다. 때로는 적극적이면서 주도적으로 정파를 견인하기도 한다. 가치관의 문제를 선과 악의 문제로 둔갑시켜 마녀사냥식으로 현실 정치에 뭇매를 가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더 심화되는 추세다. 민주화 시대 신문의 현주소다. 영국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2006년 10월 영국 런던과 대한민국 서울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신문)과 정파적 갈등은 이런 범주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신문은 어떤 정파나 계층을 대변할까. 이것이 신문판매와 무슨 관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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