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영국언론 노동당 전당대회 조명
요즘 영국 언론은 정치 뉴스로 넘쳐난다. 토니 블레어가 당수로 있는 집권 노동당(Labour)이 축구로 유명한 영국 제 2의 도시 맨체스터에서 치르는 전당대회 소식이다. 26일에는 현 총리이자 당수인 블레어의 연설이 있었다. 이날은 BBC 1TV가 밤 10시 종합 뉴스에서 머릿기사로 무려 13분을 할애해 맨체스터 현지 진행으로 전당대회 소식을 전했다. 그것도 모자라 뉴스 말미에 다시 2분을 연결해 노동당 소식을 다뤘다. 뉴스 시간 30분의 50%를 할애한 것이다. 수많은 노동당 국회의원들이 인터뷰에 나오고... 블레어가 당수가 된지 12년(1995년 당수자리에 오름)을 점검하고, 노동당이 집권한 지 9년(1997년 총선승리)을 돌아보며 블레어 정권의 공과를 짚었다.
평소 부패 스캔들같은 부정적인 내용 이외에는 별로 잘 다뤄지지 않는 정치 관련 소식이 이 날 만큼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왜 그럴까. 의원 내각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서 정당은 곧 국가 정치로 연결된다.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행정부 따로 입법부 따로지만, 의원내각제에서는 당을 기반으로 한 입법부에서 행정부를 구성한다. 집권당 의원들이 장관을 맡는 것이다. 따라서, 영국 집권당의 전당대회는 우리로 치면 실질적인 국가 운영 주체들이 모여 빚어내는 정치 이벤트이다. 특정 정당의 홍보성 행사에 멈추기 십상인 대통령제 아래서의 전당대회와 다른 점이다.
2) 유머와 카리스마로 분위기 장악
블레어가 총리로서 마지막으로 주재하는 이번 전당대회는 무엇보다 당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다. 아울러 최근 블레어의 진퇴를 놓고 불거진 내분을 수습하고 단합을 모색하는 것도 주요 과제다. 그러나, 25일 블레어 퇴진 요구의 배후에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블레어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히 거론되는 노동당 의원이자 재무장관)이 있다는 의심을 풀지 못한 블레어 총리의 부인 셰리 여사가 "브라운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발언한 것으로 일부언론이 보도해 한때 분위기가 썰렁해 지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 오늘 블레어는 전날 터져 나온 아내의 발언을 의식한 것인지, 특유의 진지하면서도 유머있는 말투로 시종 노동당원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이에 잘 웃지 않는 철혈장관(鐵血長官)이자 블레어와 블편할 것 같던 고든 브라운마저 끝내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블레어의 능력이다.
블레어는 이어 고든 브라운 칭찬에 공을 들였다. 브라운에 대한 찬사 일색이었다. 그를 주목할 만한 사람(remarkable man)이요, 주목할 만한 국가의 공복(remarkable servant)라고 분위기를 띄운 뒤, 무엇보다 브라운이 없었다면 1997년 이후 3번의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한 껏 치켜세웠다. 브라운과 자신 사이에 그 어떤 이상기류도 없다는 것을 강조한 대목으로 풀이된다. 블레어는 힘을 모아 카메론이 이끄는 보수당(Conservative)에 승리를 거두자고 다짐했다. 끝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한 노동당원들 "당신들이야 말로 국가의 미래"(You are the future)라는 말로 참석자들의 기립박수를 유도하며 연설을 끝냈다. 1995년 당수 선거에서 블레어와 대결했던 베켓 외무장관은 "대미를 장식했다"(brilliant Finale)라는 말로 전당대회가 성공적이었음을 강조했다.
블레어는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자신이 카리스마를 갖춘 대중 정치인임을 분명히 확인시켜줬다. 이번이 자신이 당수로 치르는 마지막 전당대회임을 강조하면서 자신의 퇴진 문제가 더 이상 불거지지 않게 쐐기를 밖았다. 이어, 고든 브라운을 잔뜩 치켜세워 차기를 불안해 하는 브라운과 그의 측근들을 안심시켰다. 그러면서도 브라운을 직접 후계자로 지목하지는 않아 자신의 권력누수 현상이 조기에 발생하는 것을 차단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단합을 통해 보수당의 도전을 물리치는 것이라는 말로 당분간 자기 중심으로 노동당을 강화시켜야 함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 이런 의도는 노동당내 인사들에게는 일정부분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전쟁정책을 충실히 뒤따르는 푸들정책 이후 그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국민들 마음을 되돌릴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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