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주 헌팅턴 비치에 살던 12살 현이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동네 유소년 농구 리그의 올스타에 뽑혔기 때문이죠. 대학 시절 포인트 가드로 활약했던 아버지의 피를 물려 받아서인지, 농구에 입문한지 2년만에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딱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올스타전이 역시 현이가 속해 있던 리틀 야구 리그의 경기 시간과 겹친다는 점이었죠. 현이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야구냐 농구 올스타전이냐. 현이의 선택은 야구였습니다. 아버지는 섭섭해 하시겠지만, 현이 본인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야구가 더 재미있는 걸 어쩌겠습니다.
그렇게 '동네 올스타'의 영광을 포기하고 야구장으로 달려간 현이는, 6년 뒤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되는 더 큰 영광을 안게 됩니다.
행크 최현 콩거.
다섯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된 한국인 아버지 최윤근 씨는, 메이저리그 신인 드래프트 신청서를 제출하면서 가운데 이름으로 행크의 한국 이름을 빠뜨리지 말 것을 강조했습니다.
최현의 정체성의 절반이 '한국인'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놀라운 타격 실력을 겸비한 대형 포수 유망주라는 겁니다.
아마추어 시절, 최현은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13살 때부터 해당 연령대의 미국 대표팀에 뽑혔고, 고교 시절엔 '베이스볼 아메리카' 선정 전미 고교 최고의 포수에 선정됐습니다. 헌팅턴 비치 고등학교 야구부의 각종 타격 기록을 모조리 갈아 치웠고, 지난해엔 23번의 도루 시도 가운데 22번을 아웃시킨 엄청난 어깨까지 자랑했습니다. 때문에 고교 시절 최현의 집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왕래로 현관이 닳아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최윤근 씨의 기억에 의하면 메이저리그 30개 팀 가운데 28개 팀의 스카우트 디렉터와 인사를 했다는군요.
명문 USC의 장학금 제의마저 뿌리치고 프로로 입문한 최현(때문에 최현의 어머니는 지금도 대학에 가지 않은 것에 대해 섭섭해 하고 있답니다. 최현의 고교 시절 학업 성적은 올A였다는군요). 불행히도 최현의 프로 인생의 출발은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애리조나 루키 리그가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15일에 오른손 뼈가 부러진 거죠. 놀라운 건 겨우 19경기를 뛴 최현을, '베이스볼 아메리카'가 이번 애리조나 루키 리그의 최고 유망주로 선정했다는 점입니다. (부상 전까지 최현의 성적은 69타석에서 타율 0.319, 출루율 0.382, 장타율 0.522였습니다)
전통적인 야구계와, 새로운 통계 분석 '세이버메트릭스' 진영의 평가가 일치하는 유망주는 성공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엔 세이버메트릭스계의 대표적인 사이트 Baseball Prospectus의 최현에 대한 평가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나는 야구 분석이 직업이지만, 유망주와 드래프트에 관한 한 때로는 본능을 앞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 친구(최현)에게 매력을 느낀다. 그는 포지션을 바꿀 수도 있지만, 맥스 샙(휴스턴 애스트로스가 전체 23순위로 지명한 고졸 포수)보다는 포수 자리를 지킬 가능성이 높다. 최현은 뛰어난 파워를 가진 스위치 히터이다. 그가 16순위 정도에 어느 팀에도 지명되지 않았다는 건 놀라운 일이다. 에디 베인(에인절스의 스카우트. 대학 선수처럼 어느 정도 검증된 선수보다는, '천부적인 재질’을 잘 찾아내기로 유명합니다-역주)의 또다른 걸작 드래프트 픽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전에 쓴 것처럼, 나는 아직도 최현이 왜 15순위에서 20순위 사이에 지명되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 최현보다 앞서 다른 선수를 선택한 몇몇 팀들은 후회할 거라고 생각한다.]
-Kevin Goldstein의 마이너리그 분석 칼럼 ‘Future Shock' 중에서.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된 것처럼, '행크'라는 최현의 미국식 이름은 할아버지 '콩거' 씨가 가장 좋아하던 야구 스타 '행크 아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일단 프로 인생의 출발만 놓고 보면, 최현은 행크 아론보다는 올시즌 메이저리그 전체 타율 1위가 유력한 미네소타의 고졸 출신 전천후 포수 조 마우어를 더 닮았습니다.
사실 이번에 애리조나 루키 리그에서 만난 최현은, 위에서 쓴 '메이저리그 슈퍼 유망주'보다는 평범한 미국의 18세 소년에 가까웠습니다. 135만 달러의 사이닝 보너스로는 생애 첫 자가용을 샀고, 밤이면 애리조나 루키 리그의 숙소에서 룸메이트인 광주 진흥고 출신의 투수 정영일과 비디오 게임 'NCAA Football'에 몰입하는 18세 소년 행크 최현 콩거. 언젠가 스카우트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인 '킹콩'처럼 메이저리그를 평정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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