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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철거민들의 '우울한 추석'

판교신도시 개발이 한창인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 운중천 옆을 지나다보면 30여개 컨테이너 박스가 무리를 이룬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언뜻 보면 건설공사용 막사로 보이지만 철제 울타리 안쪽으로 발길을 옮기면 마주치는 빨랫줄에 걸려 있는 옷가지와 땅바닥에 널려 있는 살림 잡동사니가 달동네 풍경으로 다가선다.

여섯 살 어린이부터 여든 노인에 이르는 90여 명의 판교 철거민들이 언제 강제 철거될지 모르는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이 컨테이너촌에서 추석을 말하는 것이 오히려 사치였다.

서 너평짜리 컨테이너에 부엌과 화장실이 따로 있을 리 없고 전기와 수돗물을 인근 학교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 그나마 다행으로 보였다.

고고 3년생 손자와 함께 살고 있는 남수금(83) 할머니는 7년 전부터 바로 옆 판교동에서 월 10만원짜리 셋방에 살다 지난해 8월 집이 철거되면서 도로변(너더리길) 공터에서 추석을 보냈다고 한다.

남 할머니는 "(지난해 추석 때에는) 공터에 텐트를 치고 살던 터여서 맨 땅에 상을 차려놓고 남편과 조상 3대 일곱 분의 차례를 지냈다"며 "올해는 그래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제사를 지내 다행이지 않느냐"며 씁쓸한 농담을 던졌다.

그러나 할머니는 이내 눈시울을 훔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추석이 더 서럽다"면서 "다섯 살 때부터 키운 손자녀석이 대학이라도 갈 수 있도록 조상님들이 보살펴 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남 할머니는 세입자들에게 주어지는 임대아파트 신청대상이지만 임대보증금(주공 4천여만-1억4천여만원, 민간 1억6천만-2억4천만원)과 임대료(주공 31만-58만원, 민간 35만-59만원)를 감당할 수 없어 아예 포기한 경우다.

8년전 판교지구내 삼평동에서 살다 아들 내외와 이 곳으로 옮겨온 최고령 김다희(86) 할머니는 "설이나 추석이나 명절은 잊은지 오래"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아들 손 모(50)씨는 "정부가 서민을 위한다고 하더니 결국 판교는 있는 자들을 위한 잔치였다"면서 목소리를 높이다가 "그래로 명절이니 주민들끼리 조촐한 명절 분위기라도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웃음을 지었다.

철거민들의 표정은 침울했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무허가 주택에 살다 철거돼 이 곳으로 이주한 김 모(56.여)씨는 "푹푹 찌는 날씨에 좁은 컨테이너 속에서 지옥 같은 지난 여름을 보냈다"면서 "주민들이 때를 쓴다고 여기지만 말고 진정으로 우리의 현실에 눈과 귀를 열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성남=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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