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136. 독일14-쾰른:철학자 모자이크, 소크라테스

                                                  -- 지중해 문명기 5권 --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7. 독일 

                                                             1)독일

                      2,3,4,5,6,7,8,9,10,11,12,13,14,15,16) 쾰른(Cologne) --오늘 이야기

                                              15,16,17,18)베를린(Berlin)

                                    14) 쾰른 철학자 모자이크: 소크라테스

레바논 전쟁과 영국에서 정치와 언론의 관계를 들여다 보다 그만 8월 10일을 끝으로 [지중해 문명기]에 원래 연재하던 문명기에는 한동안 소홀했다. 앞으로 주중(週中)에는 [민주주의 창]을 연재하고 주말(週末)을 이용해 모자이크 1편을 독일편으로 마친 뒤 새로운 역사 시리즈로 들어갈 계획이다. 앞서 독일 쾰른(로마시대 로마인이 독일에 만든 거점 도시)의 로마-게르만 박물관 소장 모자이크 가운데, 철학자(Philosophers) 모자이크에서 소포클레스까지 살펴봤다. 3명의 현자들이 더 남아있다. 고대 그리스를 대표한다고 할 3명의 학자. 고전기에서 알렉산더의 출현으로 생긴 헬레니즘 전까지 그리스를 대표하던 학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Socrates)

B.C 5c 그리스 고전기(Classic)를 풍미했던 철학자다. 종종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는 언제였을까라는 우문(愚問)을 던지게 된다. 그 때 서슴지 않고, "B.C 5c 고전기 그리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민주주의(Democracy. demo, 시민과 cracy 정치의 합성어)]가 만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전기 그리스에서는 전 세계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고, 또 지금도 찾기 어려운 직접 민주주의를 정치체제를 확립했다. 국가의 중대사를 국민이 직접 투표로 결정했고, 국가를 이끌어 갈 지도자는 1년에 한 번씩 직접 투표로 선출했다. 비록 노예와 여자를 제외한 시민 남자들만의 민주주의였지만... 그리스 시대 민주주의의 영향으로 지금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민주주의 국가들이 간접 민주주의로 대의(代議)제도를 운영하고, 스위스 등에서 일부 직접 민주주의의 원칙을 좀더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다.     

쾰른의 로마-게르만 박물관 '철학자 모자이크' 가운데 소크라테스. 
  

민주주의 아래서 학문과 문학이 만개했던 점도 당시를 인류역사에서 최고의 황금기로 평가하는 한 척도가 된다. 문학의 중심이 앞서 살펴본소포클레스를 비롯한 3대 비극 작가 등에 있다면 학문 정확히인문학(人文學)의 중심에는 소크라테스가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에 앞서 수많은 현자(賢者)와 자연 과학자(自然 科學者)들이 우주와 자연현상(自然現象)에 대해 인간의 본질(本質)에 대해 탐구하며 요즘도 믿기 어려울 만큼의 놀랄 만한 업적을 남겼다. 소크라테스는 자연과학(自然科學)이라는 범주의 학문을 벗어나 인간의 영혼, 내면(內面)을 깊게 성찰한 도덕(道德), 윤리학(倫理學)의 비조(鼻祖)라 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고대와 현대를 합쳐 민주주의의 전형으로 손꼽히는 아테네 출신이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대화를 통해 탐구하고자 했던 것이 그의 학문 방법론이다. 소크라테스가 아고라(Agora, 시장)거리에서 팔레스트라(Paletra, 야외 체육관)에서 청소년이나 사람들과 인간의 행복과 용기, 인생의 가치에 대해 쉽게 진(眞),선(善),미(美)와 그 실천 방법에 대해 나눈 문답이 그의 학문 세계다. 그의 대화는 종종 "아직도 잘 모른다"는 식으로 귀결되는데, 이는 인간이란 무지한 존재인 만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그 자체가 소중하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네 자신을 알라"는 말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생겨났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깨우치려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 시대를 초월해 시사하는 바가 큰 가르침이다.

소크라테스는 툭 불거져 두 눈에 납작코로 못생긴 얼굴이었지만, 그의 말은 만인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학문과 대화가 젊은이들을 타락시킨다는 아테네 시민들의 판단에 따라 재판을 받고, 독배를 마셔야 했다. 우주(宇宙)에서 인간(人間)으로 그리스 학문과 사유의 영역을 확대한 소크라테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 즉 형이상학(形而上學)의 남상(濫湘)이라 일컬을 만 하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쓰지 않았다. 글로 남긴 게 아니라 말로 끝내 버린 그의 학문의 모습은 플라톤 같은 제자나 다른 학자들의 저작을 통해 전해진다.

로마제국이 기독교 세계로 전환되고, 이후 중세 기독교 시대 학자들이 그리스 학문 가운데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문학만에 천착(穿鑿)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의 내면에 대한 고민을 담은 이들의 철학은 기독교적 가치관의 범주안에서 재해석이 가능하다. 신의 전능한 가치관안에 들어있다. 그러니 기독교 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을 기독교적 신관(神觀)과 결부시키려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학문의 또 다른 축이던 자연과학은 중세 내내 잊혀진 존재였다. 우주의 본질을 탐구한 소크라테스 선대나 후대의 위대한 학자들은 기독교 시대 학문의 밖에 방치됐다. 이미 그리스 고대 자연과학자들은 지구와 우주의 본질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지구의 둘레까지 정확히 측정하던 고도의 학문을 발달시켰다. 기독교적 가치관, 신학에서 이는 학문이 아니라 수용해 양립할 수 없는 이단에 불과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의 인문학이나 고대 그리스의 학문을 들여다 볼 때 잊지 말고 들여다 봐야 할 대목이 바로 이런 부분이다. 우리 동양적 가치로 볼 때 인간의 본질이나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있는 동양에도 얼마든지 많았다. 공자, 맹자를 비롯해 소크라테스 동시대에도 이미 무수했다. 그리스 철학 못지않은 빼어난 학문세계를 구축했다. 따라서, 동서양을 떠나 그리스 자연과학자들의 학문세계를 위대하다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탈레스, 데모크리토스를 필두로 한 수많은 그리스 자연과학자들의 학문을 소크라테스와 함께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이유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