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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민주주의창-정치와 언론⑦:보수당과 노동당2

1) 언론의 닐 키녹 비하

닐 키녹의 사상을 문제 삼으려는 극우 언론들이 그를 어떻게 몰아세웠는지 그 예를 한번 더 보자. 언론에서는 닐 키녹이 실현 불가능한 얘기만 떠벌린다면서 그를 웨일즈의 허풍장이(Welsh Windbag)라고 이름 붙여 개인적인 비하에 주력했다. 여기서 잠깐 "웨일즈의 허풍장이"라는 표현이 갖는 이미를 짚어야 한다. 영국은 인구나 경제규모로 쳐서 1)주류(主流) 잉글랜드와, 2)비주류(非主流) 1. 스코틀랜드 3)비주류(非主流) 2 웨일즈,  4)비주류(非主流) 3 북아일랜드의 4개 영토로 구성된 나라다. 주류 잉글랜드가 실질적인 영국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 정계의 인물을 비하할 때 "웨일즈의 허풍장이"라는 것은 쉽게 우리식으로 바꾸면 "전라도의 허풍장이, 충청도의 허풍장이..." 이 정도쯤 된다.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확히 보자면,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정권까지 한국사회의 주류는 영남이었다. 그러다, 호남의 김대중 정권이 들어서면서 구도가 바뀌었다. 노무현 정권 들어서서 다시 영남으로 갔다. 스코틀랜드는 호남이라고 칠 수 있다. 웨일즈는 세가 작아 우리의 충청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확해 보인다. 닐 키녹에 대한 "웨일즈 허풍장이"는 현 한국사회의 주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충청도 출신 정치인에게 "충청도의 허풍장이"라고 이름 붙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분위기가 언론을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될 때 그 정치인이 전국적 정치지도자로 인정받는데 얼마나 큰 방해가 될 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때 대한민국 사회에서 두개의 딱지가 붙을 경우 정치인으로서 얼마나 치명적이었는지 되돌아 볼 수 있다. "빨갱이"와 "호남".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이런 분류법이 한국사회 극우언론의 지난날 자화상이다. 이런 "딱지"가 한국 민주주의를 수십년 광야에서 헤매게 만들었다. 정치 뿐아니라 사회전반에 퍼져 20c 한국역사에서 6.25 다음가는 범죄인 지역감정을 심화시켰다. 영국이나 한국이나 극우언론의 행태는 비슷했다. 물론 영국의 민도는 우리와 달랐다. 지역감정이라는 게 있지만, 정치현실에서 한국처럼 결정적인 변수가 되지는 않았다. 현 블레어 총리나 차기 총리라는 고든 브라운 재무 장관도 스코틀랜드 출신이다. 

2) 대처의 보수당 퇴조와 닐 키녹의 노동당 부상

그러나, 닐 키녹은 보수 언론들의 이런 공격에도 불구하고 보수화하는 영국 분위기를 대처 집권 이전의 영국으로 되돌리려 애썼다. 이런 닐 키녹의 노력은 영국 국민 다수, 극우 언론의 눈에 가뜩이나 갈수록 힘이 빠지는 영국의 어깨에서 힘을 더 빼는 정책으로 비쳤고, 극우 언론은 그럴수록 더욱 십자포화를 날려 보냈다. 닐 키녹은 이단아처럼 보였다. 80년대 내내 노동당은 야당으로 시련을 겪었고, 당수 닐 키녹은 그의 정책을 수정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바꾸지 않았다. 그렇다고 닐 키녹이 급격한 개혁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다수가 된 뒤 급격한 개혁을 요구하는 노동당내 급진 세력과 싸워야 했다. 1988년 당권 도전에 나선 토니 벤(Tony Benn)의 도전 역시 이런 범주안에 들어있다. 벤의 도전을 물리친 닐 키녹은 다시 한번 전열을 가다듬어 대처의 보수당정권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시운(時運)이 닐 키녹을 도왔다. 대처가 극우적 마인드로 점점 더 기울면서 유럽통합에 반대하면서 영국의 독자적인 길 다시 말해 미국과 동반하는 길에 대한 영국 국민들의 불신이 깊어졌다. 여론조사에서 대처의 인기가 떨어지고 하원에서 닐 키녹이 대처를 충분히 공격할 수 있을 정도로 상황이 바뀌었다. 늘 약세이던 닐 키녹과 노동당은 고무됐다. 집권 12년째의 보수당 대처 정부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도가 올라갔다. 지방 보궐선거에서는 노동당이 승리하는 기쁨도 맛봤다. 정권을 되찾을 것이란 기대감에 가득했다. 이런 상황을 보수당이 가만히 봐줄 리 없다. 보수당 의원들은 대처에 반기를 들고 1990년 대처를 몰아냈다. 당수 선거 표대결을 앞두고 대처는 수상직과 당수직에서 물러났다. 그 뒤를 존 메이저(John Major)가 이어 받았다. 보수당의 침몰을 구할 긴급 대타로 나선 것이다. 

3) 그러나, 1992년 총선 노동당 보수당에 다시 패배

1992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닐 키녹은 이제는 "변화할 때(Time For A Change)"라며 보수당을 몰아 부쳤다. 정권이 교체될 것 같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셰필드(Sheffield)에서 열린 노동당 전당대회(Labour party rally)가 일을 그르쳤다. 2가지가 변수였다. 하나느 닐 키녹의 연설이 기대이하였고, 그런데도 노동당이 마치 승리한양 들떴던 것이다. 유권자들이 이런 노동당의 모습에 실망해 다시 등을 돌렸다. 닐 키녹의 노동당은 1992년 총선에서 보수당과 격차를 21석으로 줄여 보수당 정권에 충격을 안겼지만, 정권 교체에는 실패했다. 여기에 공신이 한 명 더 있다. 극우 언론.

'더 선'지는 대표주자다. '더 선'은 노골적으로 키녹 반대 기사를 선거 당일 날 아침 기사에까지 1면에 대문짝 만하게 게재할 정도였다. 보수당의 패배를 염려해, 노동당을 흠잡기 위해서였다. 한국 상황과 너무 흡사하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후보가 한밤중 노무현 후보 지지철회를 밝혔을 때 다음날 대선 당일, 이를 "정몽준, 노무현 버렸다"라고 쓰면서 반전을 노렸던 신문의 행태와 비슷하다. 이처럼 생각을 함께 하는 정치인과 정당을 향한 언론, 특히 대자본 소유언론의 지극정성은 현대 민주사회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1992년 선거 당일 아침 신문 1면 머릿기사에서 "만약 키녹이 오늘 선거에서 승리하면..., (If Kinnock wins today...,)이라면서 반 노동당 표를 결집해준 '더 선'의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기사는 언론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언론과 정치가 밀월할 때도 원칙이 있다. 정책에서 함께 하는 것이다. 이성과 합리에 기반한 정책이다. 감정이나 이권에 집착한 유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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