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동유럽 이민자 물결
밀입국도 문제지만, 합법적인 이민자 물결에 영국사회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아니 긴장 정도를 넘어 이대로는 안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영국 내무장관 존 리드(Jonh Reid)가 "우리는 현재 2차 세계 대전 이후 가장 큰 사회적 위협에 직면해 있다(We face the biggist threat since the war)"고 다소 과장된 표현을 하는 것도 영국사회의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실제, 런던의 식당가, 술집, 호텔등에서 일하는 종업원의 상당수는 이민자이거나 외국인 체류자다. 서툰 영어나 외국 억양의 종업원을 만나는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이민자 가운데 절대다수는 동유럽의 과거 공산권 출신이다.
영국에 동유럽 이민자 물결의 파고가 높아진 것은 2004년 5월. 동유럽 8개국이 유럽 연합(EU)에 가입하면서부터다. 유럽연합에 가입돼 이민이 쉬워지자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에 있는 동유럽 사람들이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으로 몰려드는 것이다. 지난 6월까지 영국에서 취업허가를 얻은 사람은 무려 42만 7천명이나 됐다. 취업허가가 필요 없는 자영업자를 포함할 경우 지난 2년간 영국으로 온 동유럽 이민자는 60만 명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1년으로 나눌 경우 이주민 30만명, 등록된 취업자 21만명을 기록한 것인데, 이는 당초 예상을 크게 뛰어넘는 수치다. 동유럽 국가들의 EU가입을 맞아 매년 2만 6천명 정도가 영국에서 일자리를 구할 것으로 예측됐다. 그러나, 무려 10배나 초과한 수치다. 나라별로 살펴보면 일자리를 얻은 42만 7천명 가운데, 폴란드인이 26만 4천명으로 62%나 됐다. 발트해에 붙은 소국 리투아니아 이주민도 5만명을 넘었다.
2) 보수당, 대책 요구. 정치쟁점화 시도
이민자 문제가 불거지는 것은 가뜩이나 일자리가 부족한데 이민자들이 기존 영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민자를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유럽 연합 가입국 간에는 이주에 제한이 없다. 육로로는 국경도 없고, 비자도 필요없이 얼마든지 자신이 원하는 나라에 가서 살수 있다. 문제는 장기 거주를 위해 취업허가를 얻어야 하는 것. 그래야, 정식으로 취업하고 각종 사회보장 혜택과 자녀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이 취업허가에 제한을 가해 이민자 숫자를 조절하자는 것이 이민자 규제를 요구하는 측의 주장이다. 주로 보수당에서 이런 요구가 많이 나온다. 전통적으로 노동당은 외국인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관대한 반면 보수당은 배타적인 특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보수당 뿐 아니라 노동당 일부 의원들도 보수당의 이민 규제정책에 동조할 만큼 심각한 사회분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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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자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무엇보다 내년 1월 유럽연합에 가입하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에 대해서는 취업신청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수당은 이를 정치 쟁점화 하려는 시도가 분명하다. 정권을 노동당에 넘겨준 지 벌써 10년째. 정권을 찾기 위해 뭔가 노동당을 공격할 소재를 찾아야 하는데, 이민자 문제를 긁어 흠집을 내보자는 계산이다. 어느 나라나 자기 땅에 외국인이 들어와 자국민 일자리를 빼앗는 다고 생각하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극우적인 정당은 이를 정략적으로 악용해 정치적 세를 넓히는 데 사용한다. 경제가 어려울 수록 이런 주장이 먹혀 든다. 외국이민자에 가장 관대한 정책을 펴는 프랑스에서 극우적 시각을 가진 국민전선의 르뺑 당수가 지난 대선에서 현직 총리 죠스뺑 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좋은 사례다.
외국인 이민자의 범죄도 정치공방으로 비화됐다. 현 존 리드 내무장관의 전임인 노동당 찰스 클라크(Charles Clarke)가 그 주인공이다. 클라크는 내무장관 재임 시절 외국인 범죄자 1천 여명을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는 대로 방면해 줬다. 외국인 인권을 고려한 것인데... 야당의 공세와 여론이 들끓었다. 가뜩이나 갈수록 치안이 불안해지는 상황에서 국외 추방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히 제기됐다. 영국사회 범죄증가를 막아야 할 입장에서 오히려 조장했다는 것이다.
3) 국제적 역학 관계
2차 세계 대전 이래 가장 큰 위협이라고 주장하는 내무장관 존 리드도 야당이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데는 반대한다. 특히, 외무부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는다. 하나되는 유럽을 지향하자면서 외국인 이민자 좀 들어 온다고 이런 저런 규제를 가하게 되면 지도적인 강대국으로 인정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친미적인 터키를 유럽연합으로 끌어들이려 애쓰는 블레어 총리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한편으로 가맹국을 늘리자면서 자국에서는 이민자 안받겠다면 모순되기 때문이다. 더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영국 정부가 검토중인 정책이 기술 이민제. 내년부터 가입대상이 된 불가리아와 루마니아의 이민 희망자는 기술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만 취업허가를 내주겠다는 것이다. 신생 가입국에 대해 최초 가입이후 7년간은 노동력의 이동을 제한할 수도 있자는 EU 규정을 적용하자는 것인데...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앞서 제기된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의 형국. 이민자 문제를 능숙하게 처리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로부터 자칫 신임을 잃을 수 있어 영국 정치권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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