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론과 정치의 상하관계
2006년 7월 30일. 샌프란시스코 1백30 마일 남단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페블 비치(Pebble Beach)에서 머독 소유의 뉴스 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이 거대한 행사를 개최했다. 클리턴, 블레어, 고어 전 미국 부통령... 쟁쟁한 인물이 연사로 참석하고... 이런 국제적 행사에 참석해 널리 이름을 알리고 싶어 몹시 조바심을 냈던 사람이 있다. 영국 보수당(Convervative)의 당수 카메론(Cameron)은 대표적 인물이다. 2007년 5월 총선을 앞두고 재집권을 노리는 보수당의 당수 카메론은 득표에 도움이 될 것 같은 행사에는 모조리 참석 중인 카메론.
머독은 그러나,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솔직히 카메론 보다 카메론의 가장 강력한 차기 총선 경쟁대상인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을 더 높이 친다. 물론 고든 브라운 보다 블레어를 최고로 인정하지만... 머독은 페블 비치 행사에 참석하고 싶어한다는 카메론의 제안에 한순간 고민했겠지만, 이내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 현직 총리인 블레어만 부르고, 차기 주자들 그러니까,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장관과 보수당의 카메론은 부르지 않은 것. 카메론 입장에서는 몹시 서운한 일이지만, 현직 총리만 부른다는 데야... 고든 브라운으로서도 조금은 떨떠름한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리 보면 머독이 정치인 위에 군림하는 상전(上典)으로 비친다.
2) 노동당 : '더 선' 취재금지
그러나, 영국정치인들이 언제나 이렇게 재벌 언론에 휘둘려 오락가락 한 것만은 아니다. 앞선 글에서 블레어가 등장하기 전 노동당과 머독 소유 언론의 관계가 껄끄러운 것이었는데, 블레어가 오면서 부드러운 관계로 바뀌었다고 살펴봤다. 사실 이념적 지향점으로 볼 때 노동당과 머독은 껄끄러운 관계가 일견 정상적으로 비쳐진다. 블레어라는 인물이 워낙 독특한 카리스마가 있고, 정치적 술수가 다양한 사람이어서 정략적으로 머독과 밀월관계를 빚어낸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노동당의 전통적인 가치관에서는 벗어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블레어 이전에 노동당과 머독 소유 언론의 관계는 어땠다는 것일까. 쉽게 말해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지금처럼 머독 소유 언론이 블레어 정부의 대변지 비숫한 상황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밀월은 커녕 노동당과 머독 소유 언론 특히 '더 선'의 관계는 한마디로 견원지간(犬猿之間)을 넘어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앙숙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노동당은 '더 선(The Sun)'지의 기자들에게 노동당의 기자회견이나 정례 브리핑 등에 일체 취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서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거부하는 작태라고 물볼기를 얻어 맞을 일이다.
3) 닐 키녹: "선거 패배원인은 보수언론"
우리도 참여정부 들어 특정 정치단체를 노골적으로 지지했던 특정 신문사들과 불편한 관계가 두드러졌었다. 취재에 응하지 않겠다는 등... 그러나, 결국 참여정부도 특정언론과 적당히 타협하는 선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리고도 계속 맞으니 바보스러운 것이지만... 아무튼 보통 배짱이 아니고서는 특정 언론이 노골적으로 자신을 비난하고 상대 정치단체를 옹호한다고 해서 취재금지 조치를 취한 뒤 지속적으로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던 정치인이 있다. 영국에서 언론과 정치인과 관계가 상전벽해로 변하기 전 머독의 언론을 향해 "나쁘게 쓰려면 얼마든지 써라. 너희랑 상종 안한다"는 식으로 언론에 상전 역할을 주지 않겠다고 작심했던 이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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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닐 키녹 전 노동당수. 80년대 노동당을 이끌었던 그는 머독 소유 '더 선'지 기자들의 노동당 취재를 금지했다. |
블레어에 앞서(정확히 한 사람 건너) 노동당을 이끌었던 전 노동당수 닐 키녹(Neil Kinnock)이다. 닐 키녹은 1970년 처음 국회의원이 된 뒤 1983년 노동당이 65년만의 최악의 참패라는 굴욕적인 패배로 보수당에 진 뒤 당수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1992년 선거에서 다시 보수당에 패해 정권탈환에 실패한 뒤 이틀만에 당수직을 물러났다. 그 자리는 스미스(Smith)가 이어받았다. 닐 키녹은 물러나면서 총선 패배의 원인이 보수당에 일방적을 기울어 편파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에 있다면서 화살을 언론으로 돌렸다. 닐 키녹이 당수직을 떠나면서 이런 말을 한데는 단순한 분풀이가 아니라 이유가 있었다.
4) 보수당, "승리 공신은 보수언론"
보수당 내부에서 조차 보수언론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보수당의 전 재정 책임자 매칼핀(McAlpine) 경(卿)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선거 뒤 선데이 텔리그라프(Sunday Telegraph)와 가진 인터뷰에서 총선 승리는 보수당에 우호적인 여러 언론사 덕분이라고 말했다. 당시 보수언론들이 일치 단결해 보수당을 밀었다는 얘기인데... 매칼핀은 있는 힘을 다해 보수당을 밀어 준 언론인의 이름까지 거명했다. "이번 선거의 영웅들은 데이비드 잉글리시, 니콜라스 로이드, 켈빈 맥켄지, 그리고 보수당에 우호적인 신문 편집자들입니다.(The heroes of this campaign were Sir David English, Sir Nicholas Lloyd, Kelvin MacKenzie and the other editors of the grand Tory Press.)" 당시 데이비드 잉글리시는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편집인이고, 머독의 밑에서도 오랫동안 일했던 니콜라스 로이드는 데일리 익스프레스(Daily Express)의 편집인, 켈빈 맥켄지는 머독 소유의 '더 선(The Sun)' 편집인이었다. 매칼핀 경이 거명한 3명 가운데 2명이 머독 영향권에 있던 사람들일 만큼 머독과 노동당은 가는 길이 달랐다.
닐 키녹은 물러나면서 승리에 도취한 보수당에 경고했다. 매칼핀의 언급은 선거 승리가 어떻게 얻어진 것인지 보여 준다면서 "만약 지금 승리의 시간에 도취된 정치인들이 언론의 도움으로 얻은 승리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 정말 어려움을 겪을 것"(This was how the election was won and if the politicians, elated in their hour of victory, are tempted to believe otherwise, they are in very real trouble next time)이라고. 그는 "또 다른 보수당 정부의 선거(the election of another Conservative Government)" 즉 보수언론을 보수당 정부와 동일시 했던 것이다. 우리 정계에서도 이름 높은 1,2중대 론이랄까. 닐 키녹이 보수언론의 도움으로 승리를 구가하던 보수당은 참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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