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민주주의와 언론, 정치
블레어가 당장은 물러나지 않겠다고 발표했지만, 영국 노동당내 소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영국정가는 당분간 더 혼란스러울 전망이다. 특정 정치인과 특정 언론의 밀월은 민주주의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있기 마련이다. 민주사회에서는 다양한 정치인이 다양한 정견으로 다양한 정치세력을 형성한다. 또 다양한 언론인(언론사주)이 다양한 언론사에서 다양한 기사와 논평을 낸다. 그러니, 개인적인 감정의 호오(好惡)를 떠나,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과 발전 방향을 놓고 가치관이나 철학에 따라 짝짓기가 이뤄지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언론이 정치세력과 같은 방향성을 가질 수 있느냐의 문제제기는 합리성이 결여된 주장이 되고 만다. 지난 날, 한국사회에서 군사 독재정권이나, 권위정부에서 비민주적인 방법(강제적 물리력, 금력, 이권)으로 언론과 유착되던 상황에서는 그런 문제의식과 비판이 가능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리도 이제 벗어날 때가 됐다.
문제는 정치와 언론의 밀월이나 대척관계 자체가 아니다. 동일한 방향성을 갖고 미래사회를 지향하든, 문제점을 지적하는 관계이든 양자의 관계가 민주적인 질서와 틀 안에 있는 지, 이성적이고 지적인 활동범위 안에 들어 있는지 여부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하나 뒤따른다. 정치와 언론의 결합이 앞서 언급한 틀과 범주를 벗어날 경우 시민사회의 준엄한 심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와 정의에 충실한 민주적 시민들이 건전한 상식과 이성으로 시대정신에 벗어나는 권언밀착(權言密着, 유착이 아닌 밀착)을 감시한다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건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부적절한 관계가 일상적인 범주를 벗어났거나, 진실이나 정의로운 사회 추구에 방해가 된다면 언론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다음 선거에서 그런 사이비 언론과 손잡은 정권을 심판하면 간단하다. 안정된 민주사회에서 보여주는 평화적인 민주 사회 운영 원리이다. 그러면 언론이나 정치세력에 대해 상식 이하의 급진적이거나 과격한 접근을 할 필요성이 사라진다. 모든 상대를 인정하는 포용력. 그러면서도 국민의 상식으로 바른 길을 선택해 나가는 지혜랄까...
지금 블레어와 머독의 밀월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영국 국민들은 내년 총선에서 블레어 정부를 심판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실제로는 특정 이념이나 가치관에 경도돼 있으면서(심지어 특정 정치집단을 음성적으로 지원하면서) 중립인 척 가장하는 언론의 위선이야 말로 진실을 병들게 하는 민주주의의 암초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권과 언론이 밀착하라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견제 균형을 이루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이제 언론과 정치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이야기다.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보다 앞서 이런 문제들로 고민하던 영국에서 느끼는 단상이다.
2)블레어, 주요 정책 머독과 상의
일부 전문가나 블레어의 측근들은 머독의 가치관이나 머독 소유 언론의 논조가 블레어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또, 반대로 머독 소유 언론이 블레어의 정책방향을 전달한다는 주장이 너무 과장됐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총리 관저에서 커뮤니케이션 업무를 담당했던 랜스 프라이스(Lance Price) 같은 이의 말을 들으면 그렇지 않다. 그는 "머독이 블레어 내각에서 24번째 각료(the 24th number of the Cabinet)"라고 단정지어 말한다. "다우닝가 10번지 수상관저에서 그 어느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자리에도 3명의 의견이 꼭 고려 대상이 된다. 노동당의 2인자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 노동당의 존 프레스콧 부총리, 그리고 루퍼트 머독.(No big decision could ever be made inside No 10 without taking account of the likely reaction of three men- Gordon Brown, John Presctt and Rupert Murdoch. 인디펜던트 7월 29일자 보도)."
머독의 '더 선'은 보수당의 대처 총리 시절 일방적으로 대처를 지원하던 언론이다. 노동당과는 앙숙이었다. 그러다, 블레어가 등장하면서 노동당과 관계를 개선했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머독과 블레어의 돈독한 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했는데, 머독은 블레어가 야당인 노동당 당수 시절 1995년 자신이 주최하는 호주의 행사에 블레어를 초청하면서 돈독한 관계의 초석을 다졌다. 이듬해 1996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고 블레어가 총리가 되면서 '더 선'은 블레어 정부와 밀착한다. 이런 언론을 영국국민이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는 영국 국민 몫이다.
블레어는 공식적으로 1년에 2~3차례 머독을 만난다. 그러나, 앞서 랜스 프라이스의 회고처럼 주요한 사안이 있으면 은밀한 만남이 수시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 일각이나 다른 언론에서 둘의 관계를 곱게 보아줄 리가 만무하다. 그래도 지금껏 아랑곳 없는 분위기였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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