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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민주주의창-정치와언론②블레어 진퇴와 머독

1) 노동당 의원들, 블레어 퇴진 요구 봇물

영국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난데 없이 더운 계절을 만났다. 관측 역사상 가장 무더운 7월의 기온을 보이는등 무더웠던 여름이 추억의 한 페이지로 넘어간 지가 꽤 됐건만... 무슨 사연일까. 정치판이 불덩이처럼 달궈져서 그렇다.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에서 현실 정치의 실권은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수상)가 갖는다. 우리의 대통령에 해당하는데, 블레어 총리의 사임문제를 놓고 영국 정계가 조금 심한 표현으로 발칵 뒤집혔다. 신문마다 1면으로 다루고 BBC를 비롯한 TV 뉴스도 장시간 이 문제에 시간을 할애한다. 그런데 묘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 물러나라는 소리를 통상 야당에서 한다.

그런데, 영국은 지금 여당, 다시 말해 블레어가 당수로 있는 노동당(Labour)안에서 불거져 나왔다. 쉽게 자중지란(自中之亂). 정권 탈환을 노리는 제 1야당 보수당(Conservative)은 느긋하게 강건너 불을 지켜보고 있다. 히드로 공항에서 미국행 비행기 여러 대를 동시 납치하려 했다는 테러 음모를 적발했다고 요란하게 발표하고, 그래서 정부가 초 긴장 상태에 있는 데, 이 무슨 내우외환(內憂外患)이란 말인가. 원인은 나중에 다시 자세히 들여다 보겠지만, 한마디로 정리하면 블레어의 대국민 지지도가 현저히 떨어진 것이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레바논 전쟁을 둘러싸고 재연된 부시의 대미 외교 추종정책과 이에 따른 전쟁정책이 결정타였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레바논도 레바논이지만, 무엇보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영국 병사들의 희생소식이 들려 오고, 국내외에서 영국인들을 향한 테러가 점증하니... 이제 '전쟁', '테러와의 전쟁'에 신물을 내는 것이다. 특히, 노동당내 소장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의 정체성(Identity)마저 혼란스럽게 만드는 블레어의 대미 추종 전쟁정책을 더 이상 간과했다가는 내년 총선에서 패배와 함께 보수당에 정권을 내줄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2) 블레어, "1년은 더한다" 기자회

레바논 전쟁이후 간헐적으로 터져 나오던 블레어 총리에 대한 불만과 퇴진 요구가 하루 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세를 더하더니 급기야 6일에는 톰 왓슨(Tom Watson) 국방차관을 비롯해 내각(Cabinet)안에서 무보수로 정부 장관 보좌역을 맡고 있는 노동당 의원 7명이 한꺼번에 블레어의 퇴진을 요구하며 자진해서 관직을 내놓았다. 8명 모두 30,40대의 노동당내 젊은 피다. 이들은 사임에 앞서 블레어 총리에게 수상직에서 내려오라고 요구했던 노동당 의원 15명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영국언론에서는 이들 8명이 사임한 수요일을 좀 과장해서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이라고 표현했다. 한참 후배들한테 이런 대접을 받은 블레어. 집안단속 못한 모습으로 비쳐 몹시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 붉히며 무례하다는 표현과 함께 사표를 모두 수리했다고 한다.

노동당내 다수 의원들 요구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먼저 블레어가 사임하고, 당 총재직과 수상직을 고든 브라운(Gordon Brown)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에게 넘겨주라는 것. 애써 태연한 표정 지으며 무시하던 블레어는 심각한 기류를 감지했는지 7일 지방 순시를 하는 도중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번져 가는 자신에 대한 퇴진 요구를 더 이상 방치할 경우 수상 입지는 물론, 국정마저 위태로워 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블레어가 내놓은 해답은 너무 싱거웠다. 노동당 내분사태를 빚은 데 대해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여러 상황적 변수가 있지만, 1년 더해야하지 않겠느냐는 것. 그 동안 사석에서 밝혀 왔던 내용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3) 한 신문기사가 사택 확산

블레어의 조기 퇴진문제와 노동당의 내분이 어떻게 전개될 지, 블레어 총리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내년까지 갈 수 있을 지의 문제는 다음 기회에 다루기로 하고, 정치와 언론이라는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블레어와 머독의 관계를 들여다 보는 지름길이다. 먼저 이번 '검은 슈요일'의 발단이 된 한 신문 보도. 무슨 내용이 신문에 보도됐길래 그런 것일까. 블레어가 내년 5월 31일 당수직에서 물러난다는 기사다. 안팎에서 점증하는 요구에 따라 조속한 시일 안에 블레어가 물러나기를 기대했던 소장파 의원들은 이 보도에 크게 실망했고, 블레어에게 좀더 강한 충격요법을 가하기 위해 8명이 방울을 들고 고양이 목으로 간 것이다.

여기서 좀 의아해 진다. 블레어가 공식 발표한 것도 아니고, 신문에 기사 난 것 갖고 의원들이 방정맞게 무슨 일인가. 이렇게 생각하는 게 이성적이다. 그러나, 이는 블레어와 영국언론과의 관계를 잘 파악하지 않은 데서 오는 오해다. 일단 그런 기사가 어느 신문에 났는지 보자. 영국의 권위있는 일간지들 가운데 하나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가디언', '인디펜던트', '데일리 텔리그라프', 머독 소유의 '더 타임즈', 모두 아니다. 머독 소유의 또 다른 신문, 타블로이드 황색 언론의 선두주자, 더 선(The Sun)이다. 옐로우 저널리즘을 표방하지만, 그런 만큼 영국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대중지, 선. 

4) 블레어, "호랑이 등에 올라타 이용할 줄 알아야"

선은 블레어 정부의 대변지(代辯紙, mouthpiece) 역할을 맡아 왔다. 노동당의 정책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블레어 정부의 특색이었다. 아무리 블레어가 미국 부시정권의 전쟁정책을 추종한다고 해서 실오라기 정도 걸친 여인이 매일 등장하는 신문과 정치적인 결탁을 할 리는 없을 텐데... 머독의 의지라고 봐야 한다. 블레어를 지지하는 머독의 가치관을 반영해 '더 선'이 시종일관 블레어의 입 역할을 해준 것이다. 우리로 치자면 뭐랄까. 한때 김영삼 대통령 정부 시절에 조선일보가 정권 깊숙한 곳에서 나오는 특종을 도맡아 하며, 그 소유주는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린 시절이 있었다. 조선일보 역시 국내 최대의 발행부수를 자랑하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더 선은 대중지이고, 조선일보는 정론을 표방한다는 점.

사실 블레어 이전에 머독이 소유한 언론과 노동당은 앙숙지간이었다. 블레어가 총리가 되면서 노동당 정부와 머독 소유 언론이 찰떡 궁합으로 변한 것이다. 머독 입장에서 보면 민주국가에서 언제 집권할지 모를 정치세력과 노골적으로 척을 져서 득 될 게 없다. 영국 언론 장악이라는 포부가 있는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 긴장 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머독은 블레어에게 접근했고, 1979년 대처의 보수당에 정권을 내준 뒤 야당 신세에만 머물던 노동당의 블레어로서는 1994년 당수가 된 뒤 재집권을 위해 언론과의 관계 재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머독과 한배를 탄 것으로 분석된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의 노동당과 머독 소유 언론이 블레어 집권시 사이 좋은 이웃사촌으로 바뀐 이유다.

블레어는 자신이 머독의 언론과 밀착, 즉 권언유착이 된 게 아니라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표현은 이렇다. "호랑이를 다루려면 목의 가시 같은 존재로 여겨 이를 떼내려 할 것이 아니라 등에 올라타 이용할 줄 아는 것이 현명한 것.(It's better to ride the tiger's back than let it rip your throat out)". 블레어 철학의 단면과 함께 블레어의 언론관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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