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논평] '국민화가'의 슬픔

이중섭 선생의 50주기 기일이 되었어도 추모행사가 초라해 아쉬움이 큽니다.

망우리 묘소에서 유족과 몇몇 지인들이 가진 조촐한 추모제가 전부였습니다.

루오나 고호와 비견되는 국민화가에 대한 예우로는 한없이 초라했습니다.

해마다 그랬었지만 올해 더더욱 추모행사가 없는 까닭은 최근의 위작논란 영향 탓입니다.

경매에 나온 이중섭의 그림들이 계속해서 위작논란에 휩싸이고 심지어 유족의 소장품까지 진위가 불투명해지면서 추모분위기는 움츠러들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낳은 큰 예술가를, 그 정신을 돈만 밝히는 화단주변의 사람들 탓에 제대로 추억하지도 못하게 된 것입니다.

회고해보면 이중섭은 위대한 예술정신을 가졌었지만 한 평생을 불우하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사망하기 1년 전인 1955년, 일본에 가 있던 가족들과의 재회를 꿈꾸며 가진 전시회는 대성공이었지만 수익은 모두 중간상이 가로채 버렸습니다.

절망한 그는 부산 광복동 찻집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으로, 대폿집 변소에서 흐느껴우는 모습으로 목격되었습니다.

주변은 그의 순수하고 여린 심성을 이용하려고만 들었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끝내 가족곁에 못간 채  비극적으로 생을 마쳐야했던 국민화가가, 사후에도 그를 이용하려는 잡인과 소인배들 탓에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년 병석의 그에게 담배 은박지를 모아 갖다 주던 여학생들보다도 우리는 못한 것입니다.

감정제도의 권위를 확보하고 위작범죄를 엄정 단속함으로써 가짜가 발붙일 데가 없도록 하는 것이 그를 더 이상 외롭지 않게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