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차 세계 대전
지구촌 경찰에서 자유민주진영의 수호자, 나아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으로 모습을 바꿔가며 미국이 치른 전쟁과 전비를 들여다 보자. 미의회 예산처(Congressional Budget Office) 의회 연구 서비스(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가 낸 자료를 영국의 더 타임즈(THE TIMES)가 인용한 기사를 보면 미국이 1차 세계 대전(1917년~1918년)을 치르면서 사용한 전비는 2천50억 달러다. 이는 2005년 달러 가치로 환산한 돈이다. 세계 대전이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유럽에서 전쟁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인 1917년 개입해 1918년까지 2년만 전쟁을 치렀기 때문이다.
원래 1차 세계 대전은 1914년 벌어졌다. 지구촌을 뒤흔든 파멸적 전쟁이라도 작은 사건이 도화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1차 세계 대전이 그렇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황태자가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의 범 슬라브주의 비밀결사대원에게 암살당하자,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게르만족인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하면서 중립국 벨기에를 침공하고, 이에 영국이 중립국 침공을 문제 삼아 독일과 전쟁에 들어갔다. 일본은 영국과 동맹이란 이유로 독일에 선전포고를 했다. 러시아는 슬라브민족 지원을 위해 독일과 맞섰다. 이리 얽히고 저리 설킨 전쟁이 1917년 미국으로 번진 배경은 영국에 군수 물자를 조달해주는 미국 상선을 대서양에서 독일 잠수함이 공격한 것. 미국의 가세로 우세해진 연합국은 1918년 11월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독일제국이 전쟁에 실패해 붕괴되면서 탄생한 정권)의 항복으로 승리를 거둔다.
2) 2차 세계 대전
1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국제연맹에도 참여하지 않고 전통적인 중립 고립전략으로 돌아갔다. 세계 문제에 관여하지 않고 미국문제에만 전념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던 중 2차 세계 대전이 터졌다. 전쟁은 동양에서 먼저 시작됐다. 1932년 이미 만주를 빼앗아 괴뢰국 만주를 세운 일본 군국주의는 1937년 중국 전역을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서안사건을 계기로 중국의 국민당과 공산당이 합작해 강하게 저항하자 전쟁은 장기화 됐다. 이 무렵 1939년 유럽에서는 나찌 독일이 오스트리아를 합병하고, 폴란드와 체코의 영토를 삼키면서 야욕을 확대해 나갔다. 이를 더 이상 방관하지 않고 영국이 개전을 선언하면서 유럽도 전쟁에 휘말린다. 전쟁 초기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이 틈을 타 일본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인도차이나를 차지한 뒤 영국의 식민지와 미국의 보호령으로도 침략의 범위를 확대해 나갔다.
미국은 중립이었다. 1차 세계 대전 뒤에 자국 내 방위로 물러난 뒤 그것도 모자라 1935년 중립법(中立法, Neutrality Acts)을 만들었다. 전쟁상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대통령이 선언할 경우 미국 국민은 교전국에 대해 군수품을 매각, 수송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 법이 아직도 존재한다면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시 그 엄청난 살상무기를 미국은 이스라엘에 수출하지 못한다. 70년 전 미국의 모습은 이랬다. 미국은 중립법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1936년 교전국에 대한 차관 제공을 금지하는 조항을 추가했다. 다시 이듬해 1937년에는 전쟁뿐 아니라 내란에도 이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이 법대로라면 미국은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의 내전에 대해 간섭할 수 없게 된다. 미국은 1939년에 침략국과 피침략국을 구별하는 내용을 추가해 중립법을 완성했다. 1차 세계 대전 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시한 민족 자결주의 원칙과도 부합하는 정책이다.
그러나, 독일과 이탈리아(이디오피아 침공)의 침략행위가 노골화되면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마음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침 1941년 6월 22일 독일이 독소 불가침 조약을 깨고 소련을 침공했다. 이에 대통령 3선 연임에 성공한 루스벨트가 8월에 영국의 처칠과 대서양 군함에서 회담을 열고, 대서양 헌장을 발표했다. 국제 연합(UN) 창설 등을 골자로 하는 전후 세계 질서 운영 구상이다. 미국이 이제 중립국의 모습이 아님을 보여 준 첫 사건이었다. 같은 해 무기대여법을 만들어 중립에서 벗어날 여지를 마련하고, 이어 12월 7일 일본이 미국의 경제제재에 맞서 하와이를 공격하자 전쟁에 돌입했다. 교전국이 된 것이다. 12월 9일에는 독일과 이탈리아가 미국에 선전 포고를 하면서 미국은 유럽전선에도 발을 들여놨다. 중립법은 더 이상 의미를 잃고, 미국은 고립주의에서 나와 세계로 향했다.
미국이 진주만 공격을 구실로 1941년 12월 2차 세계 대전을 시작한 뒤 1945년까지 태평양의 일본 전선과 유럽의 독일전선에서 쏟아 부은 돈은 자그만치 3조 1천1백50억 달러(2005년 달러 기준)다. 1차 세계대전 보다 15배나 많은 액수다. 미국의 군수산업체는 이때 양성됐다. 3년 9개월 동안 무려 3천1백15억 달러. 연간 1천억 달러 가까운 천문학적인 돈을 사용했고, 이 가운데 상당수는 군수산업체 주머니로 들어갔다.
3) 한국전(6.25)
세계로 나온 미국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새로운 적 소련과 대치했지만, 이젠 냉전으로 더 이상 추가적인 전쟁은 없는 듯이 보였다. 노다지가 사라진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이 느꼈을 위기감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이 무렵 미국 국무장관 애치슨의 애치슨 라인(Acheson line)이 발표됐다. 1950년 1월 12일 미국 신문기자협회에서 '아시아에서의 위기'라는 연설을 하면서 미국의 태평양 방위선이 알류샨 열도에서 일본을 거쳐 오키나와, 필리핀으로 이어진다고 말한 것이다. 한반도와 대만이 쏙 빠졌다.
북한이 5달 뒤 6.25를 일으키며 한민족의 재앙을 가져온 것은 애치슨 라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 때문에 애치슨 라인이 북한의 남침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인 발언이었다는 분석이 수정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곤 했다. 진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전쟁이 끝나 어려움을 겪던 미 군수산업은 다시 호황을 맞았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계기도 됐다. 미국은 한반도 6.25에서 3천6백억 달러(2005년 달러 기준)를 사용했다. 1차 세계 대전 보다 많은 돈이다. 2차 세계 대전에 비하면 10분의 1 규모지만 그래도 가뭄의 단비같은 돈이다.
4) 베트남전
1953년 한국전이 끝 난 뒤, 자유진영의 보루 미국은 다시 1964년부터 베트남전쟁에 개입했다. 애치슨 라인 선언이 북한의 공격을 유도해 전쟁을 치르기 위한 작전 아니었느냐는 의혹만 제기된 것과 달리 베트남 전쟁은 명백히 미국이 전쟁을 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해 시작한 전쟁이었다. 미국은 1964년 공산주의 북베트남이 통킹만 중립 지역에 있던 미국 함정을 공격했다는 구실로 북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훗날 미국이 고의로 북베트남 영해를 침범해 북베트남의 공격을 유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통킹만 조작사건이다.
섬뜩하다. 아이젠하워가 전쟁에 굶주린 군산 복합체의 위험성을 경고한지 3년 만의 일이다. 이제 지구촌에서 전쟁은 미국이 필요로 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전환되는 전쟁이었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쟁 위협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이 한 축을 형성한다. 1964년 부터 1972년까지 미국이 사용한 돈은 무려 5천3백억 달러(2005년 달러 기준). 베트남전에서 미국이란 국가는 명분도 실리도 다 잃었다. 그러나, 미국의 군산 복합체는 큰 이익을 챙겼다.
5) 걸프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전
이 3개의 전쟁은 명백히 미국이 주도해 벌인 전쟁인 데다, 앞서 다른 글에서 상세히 들여다 봤으므로 더 이상 고찰이 불필요하다. 전비만 살펴보자. 1990년 발생한 걸프전에서 미국은 8백억 달러를 썼다. 2001년부터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는 지금까지 8백80억 달러를 사용중이다. 2003년 시작된 이라크 전에서는 현재 2천9백억 달러를 넘겨 올해 안에 6.25에서 사용한 돈을 넘어설 전망이다. 현재 미국이 이런 엄청난 전비를 펑펑 쓸 만큼 경제가 건실한가. 그렇지 않다. 국가 경제발전이나 국민복지, 인권 향상에도 모자라는 돈이 군산복합체 살찌우는 데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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