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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통신] 축구와 나라사랑

스포츠와 조국애

스포츠를 통해 국가나 민족 구성원들이 마음을 하나로 합쳐 조국애나 민족애를 확인하는 일은 이제 자연스런 현상이 됐다. 지난달 끝난 국가 대항 스포츠제전 월드컵은 스포츠와 애국심의 관계를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국가 규모가 작거나 힘이 좀 모자라고, 살림살이가 넉넉치 못한 국가일수록 스포츠를 통한 자기 정체성 확인 작업이 더욱 강렬해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닫게 된다. 월드컵에서 특정 국가를 불문하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응원의 배경에는 이런 심리적인 요소가 짙게 배어있다. 특히, 한 명의 뛰어난 스포츠 선수가 대외적으로 국가 홍보나 대내적으로 국민 사기 앙양에 기여하는 몫은 자못 크다. 특히 그 선수가 각별한 애국심을 보일 때 그 상승효과는 더욱 커진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홈런왕을 질주하고 있는 이승엽이나 미국 프로야구에서 김병현의 연승, 추신수의 맹타가 국민 사기에 던져주는 의미도 이런 범주에서 해석할 수 있다. 연봉 50억원대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최정상급인 박지성이나 이영표, 설기현의 서전을 기대하는 이유도 다 이런 국가관이나 애국심과 관련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 명의 스트라이커 때문에 생소한 나라이름까지 한 번 더 살펴보게 되는 경우가 있으니, 우크라이나의 세브첸코(Shevchenko)다. 일명 세바 "Sheva".

셰브첸코 "내사랑은 조국 우크라이나"

이번에 3천만 파운드(5백50억원)라는 거액의 이적료로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에서 영국의 첼시로 이적한 셰브첸코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13일 평가전서 첫 골을 터트렸다. 1976년 생이니 우리나이로 31살이요, 축구나이로 환갑을 넘긴 나이지만, 변함없는 체력과 기량으로 정상을 구가하는 셰브첸코. 그가 없었다면 조국 우크라이나의 2006 독일월드컵 8강 진출은 불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그가 일요일 첫 골을 기록한 뒤 득의양양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그가 던진 첫마디는 뜻밖에도 이탈리아 팬들을 향한 일종의 해명성 발언이었다. 나라 사랑과 관련해 생각해볼 점이 적지 않아 옮겨 본다.

"내가 골을 넣고 입을 맞춘 것은 내 조국 우크라이나의 셔츠다. 나에게는 오직 우크라이나가 있을 뿐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골을 넣은 셰브첸코가 삼성전자 상표가 새겨진 유니폼의 첼시 배지에 입맞춤하는 장면이 뜻밖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AC밀란 팬들을 자극했다. "아니 그럴 수가 있느냐, 네가 AC 밀란을 두고 첼시에..." 이탈리아 밀라노의 AC밀란 팬들은 아직도 그가 7년간 뛰어온 AC 밀란을 버리고 영국으로 간데 대해 배신감과 분을 삭이지 못한 상태다. 새장가 들었다고 전처를 한순간에 잊어버리고 새 아내에게 사랑 고백을 하는 모습으로 비쳤던 모양이다.

경기를 앞두고 유니폼을 갈아입는 세브첸코. 뒤에 바락이 보인다.

이탈리아 스포츠 신문 가제따 델로 스뽀르는 셰브첸코가 첼시 배지에 입맞춤한 것을 놓고 긴급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할 정도였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셰브첸코가 급히 불을 끄려 "첼시가 아니라 조국 우크라이나"였다고 해명하는 장면. 아무리 돈에 사고 돈에 팔리는 프로 축구판이라지만, 그래도 사람사는 세상에 인정과 도리, 정리(情理)란 게 이렇게 무섭다. 사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스포츠 영웅이자 조국을 사랑할 줄 아는 분별력 있는 선수다. 그의 말과 행동에 조국사랑이 가득 묻어난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의 비극과 셰브첸코

사실, 우크라이나가 어디 붙어 있는 나라인지 낯설지만 쉽게 1986년 체르노빌 원자력 사고라면 쉽게 기억할 것이다. 당시 구소련 체제 아래서 발생한 비극적인 1986년 4월 26일 사고.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에서 북쪽으로 불과 1백여km 떨어진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로 1992년까지 발전소 해체에 동원된 노동자 5천722명과 민간인 2천510명이 사망했다. 43만 명이 암이나 기형아로 태어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우크라이나 인구의 5분의 1 가까운 9백만명이 방사능 피해를 입은 것으로 밝혀졌다. 원자로 주변 30km 이내에 사는 주민 9만 2000명이 강제 이주됐다. 원자폭탄이 터진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유럽전역과 한국에도 방사능 낙진이 날아왔다. 오죽하면 독일은 향후 모든 원자력 발전소를 폐쇄하기로 결정했을까.

당시 우리 나이로 11살이던 셰브첸코는 인터뷰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체르노빌은 우리 마을에서 130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것은 정말 큰 재앙이었다. 우크라이나 뿐 아니라 지구촌의 재앙이다. 다행이 우리 집안은 큰 피해가 없었다. 난 당시 너무 어려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러나 이젠 나이를 먹었다. 다른 사람들이 지금까지 겪고 있는 고통을 잘 안다." 조국의 고통을 외면하면 진정한 스포츠맨이 아니다. 셰브첸코는 비록 1999년 이후 고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지만, 동생 엘레나를 통해 설립한 재단을 통해 체르노빌 사고 환자들을 돕고 있다. 자신의 입으로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우크라이나 어린이를 위해 많은 자선사업을 하고 있다." 고 밝힐 정도다.

무명에서 노력으로 스타덤에…청소년에 교훈

셰브첸코가 우리의 관심을 사는 이유는 또 있다. 인터뷰에서 그의 입으로 밝혔듯이 그는 어려서부터 촉망받던 화려한 스타 출신이 아니란 점. 끝없는 노력으로 오늘의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에서 많은 청소년들에게 희망을 안긴다. 권투와 레슬링 농구에도 만능이던 셰브첸코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그를 거들떠본 축구구단은 없었다. 기술이 모자란다는 이유로 체육대학 시험에도 떨어졌다. 절망하던 그를 다행히 디나모 키에프의 2군팀이 받아 줬다. 2군에서 그는 6개월만에 1군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후 그가 조국을 떠날 때 까지 5년 동안 소식팀을 우크라이나 국내리그 정상에 올려놨다. 연습생 신화를 일궜다고 할까.

자기의 관심은 조국 우크라이나라고 말하는 셰브첸코.

이탈리아 1부리그 세리아 A. 이탈리아 최대 산업도시 밀라노의 명문 AC밀란으로 옮겨 그곳에서 무려 7년을 머물렀는데... 한 번 정주면 변치않는 우리네 정서를 닮은 모습이 미덥다. 모두 207경기에 출전해 127골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평균 3경기 마다 2골씩을 넣은 셈인데... 러시아의 석유 재벌이자 과거 소련으로 치면 같은 나라이던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3년 전부터 그를 첼시로 불러들이려 애썼다. 그러나, AC밀란은 들은 척도 안했다. 마침내, 이번에 5백 50억이라는 참 거절하기 어려운 거액을 제시받고 AC밀란도 마음이 흔들렸고, 무엇보다 셰브첸코가 움직였다. 모델 출신 미국인 아내 크리스텐 파지크가 원했기 때문이다. 큰 아들(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을 따 조던으로 이름지음)에 이어 둘째애를 가진 그의 아내는 영국 런던에서 정착해 살기를 강력히 희망해 왔다.

골프에 빠진 셰브첸코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 시도하라"

이번주 초 스포츠용품 회사 리복과 수백억원대의 광고 모델 계약을 체결한 셰브첸코. 그는 "누구든 인생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시도해야 할 때 나처럼 그것을 해 보라"고 권한다. 희망을 갖고 자신이 추구하는 길을 가라는 뜻으로 들리는데... 자라나는 청소년들이나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영국에서 가장 놀란 것이 "공원이 많다는 것"이라면서 "지금은 골프라는 새 스포츠에 푹 빠졌다. 우크라이나에는 골프장이 없어 못했는데, 이탈리아와 영국, 미국에 갈 때는 골프에 매진한다"고 말하는 셰브첸코. 183cm로 그렇게 크지 않지만, 다부진 체격의 셰브첸코가 이탈리아 프로리그에 이어 영국 프로리그에서도 성공신화를 이어 갈지는 다음 문제다. 역경을 딛고 노력을 지속하며 늘 자신을 낳아준 조국을 잊지않는 그런 자세 하나만으로도 그는 이미 진정한 스타로서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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