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창우와 이스라엘
"휴전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There is no ceasefire, There will be no ceasefire)"
영국의 인기있는 정론지 가디언이 8월 1일자 머리기사 제목으로 올린 글이다. 순수한 어린 학생들 34명을 죽음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뒤 전세계가 이스라엘에게 조속한 휴전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과 이를 지원하는 미국은 묵묵부답(默默不答)이다. "오로지 휴전은 없다. 전쟁만이 있다"면서 내갈길 간다는 녹음기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미국을 보면 예전 시골 살 때 기억이 떠오른다. 시골서 소를 키워 보면 간혹 고집 센 소를 만나게 된다. 주인이 소를 부려 마차를 끌거나 논밭을 갈 때 이리저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주인이 다년간 경험으로 갈고 닦은 요령을 무시한 채 제 고집대로 마차를 끌거나 논밭을 갈 때 제멋대로 고랑을 누비는 그런 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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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소식을 전하는 BBC 생방송 뉴스. |
대개 이렇게 미련해서 일을 망치거나 주인 속 썩이는 소일수록 덩치가 엄청 나게 크고 힘이 억세다. 그러니, 어지간히 힘쓰는 주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다룰 수가 없다. 이런 소의 대명사가 벽창우(碧昌牛)라고 부른다. 암울했던 70년대 한국사회 지식인이자 언론인의 표상으로 불리던 리영희 선생의 고향인 평안북도 벽동(碧潼)과 창성(昌城) 지방에서 나는 소가 그런데, 그래서 앞 글자를 따 그렇게 부른다. 소에 그치지않고 그렇게 행동하는 꽉 막힌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도 사용된다. 일부에서 벽창호라고도 부르는데... 이스라엘이 바로 벽창우다. 세계 수많은 양심과 지성이 그렇게 호소해도 들은 척도 않는다. 자기가 가고자 하는 목표만 있을 뿐이다. 그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 어떤 불행이나 고통이 주변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이는 이기적인 차원을 넘는다. 평화와 공존의 지구촌에 해악이 아닐 수 없다.
위선의 전쟁
고요하게 잠자던 어린 학생 34명을 비롯해 전쟁과 아무 관련 없는 선량한 시민 56명을 저승으로 보낸 일요일 카나(Qana)의 학살 사건 뒤 이스라엘은 처음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비행기 폭격으로 자행된 대량 학살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진상을 조사하겠다는 이례적인 반응을 보였다. 드디어 이스라엘이 휴전을 요구하는 세계 여론에 귀를 귀울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런 희망 섞인 분석이 나올 법도 한 순간이었다. 세계인들이 안도의 한숨을 더 쉬게 하는 조치도 뒤따랐다. 카나 학살에 대한 자숙의 의미로 48시간 동안 공습을 중단한다고 밝힌 것이다. 그 누구 말도 듣지 않던 이스라엘이 스스로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세계인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물론 드 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처럼 "48시간 공습 중단은 부족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벽창우의 변화를 기대하는 의미에서 강경일변도의 이스라엘 전쟁방식. 또, 헤즈볼라의 공격력을 무력화 시킨다는 주장 아래 균형감각을 상실한 과민 무차별 보복 공격의 전쟁 방식이 완화될 기미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전세계인이 분노하는 어린이 대량 학살 앞에서는 이스라엘도 어쩔 수 없을 것이라는 한가닥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너무 순진한 기대였다. 역시 이스라엘은 그만의 길이 있었다. 48시간이 지나자마자 대규모 지상군을 레바논에 투입했다. 지상군의 진격은 전쟁의 전개 과정에서 전면전을 상징한다. 어린이 학살을 불러왔던 부정확하고 부적절한 비행기 공습도 이어졌다. 이런 후안무치의 배짱이 어디서 나오는지... 결국, 48시간 공습 중단이니 하는 유화조치는 무엇이었던가. 어린이 학살 뒤 들불처럼 번지는 세계인의 반전 여론과 휴전 요구를 일시적으로 모면해보려고 쓴 위선(僞善)의 고육지책(苦肉之策)에 불과했던 것이다.
피를 먹고 사는 전쟁광이 잠시 주변 눈치 살피느라 피에 굶주린 배를 움켜 쥐고 발톱을 낮췄던 것에 불과하다. 위선이란 점은 48시간 뒤 공격의 고삐를 더욱 움켜쥐고 비행기 폭격을 강화하며 지상군을 투입한 데서 여실히 입증된다. 과거 수준을 뛰어넘는 공세 강화. 국제사회의 법과 양식, 질서에는 안중에 없이 행동하는 태도는 마치 두목의 교시에만 오로지 목숨 내놓고 악행을 일삼으며 공공의 선이나 도덕 법에는 눈감는 밤의 무법자들을 닮았다. 이들과 어떤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까. 두목이 누구인가 살피기 전에 이스라엘의 이런 48시간의 여유를 주는 듯한 폼은 2003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시작하면서 이라크와 후세인에 내린 48시간 최후 통첩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물론 명분도 없는 거짓 전쟁을 시작하면서 준 그 시간마저도 어기고 더 일찍 공격을 개시한 모습과 48시간 기다렸다는 듯이 더욱 강력한 공격을 퍼붓는 위선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로 겹쳐진다.
역지사지를 모르는 비인도적 침략 전쟁
이름 뿐인 국제기구로 전락하고 있는 UN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이스라엘에게 인도적 지원을 위한 안전통로(corridor)를 확보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이스라엘의 에후드 올메르트 총리는 레바논과 사이프러스 사이 항로를 통로로 연다고 말했다. 이미 이 항로는 전쟁 초기 영국을 비롯한 서양각국이 자국 국민을 레바논에서 철수시킨 통로였는데 새삼 자기 영해도 아닌 지역을 무슨 근거로 안전통로로 만든다는 것인지... 이스라엘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레바논 내 각 도시와 베이루트의 안전통로를 확보해 인도적 지원을 전개해 보려는 유엔의 구상은 이스라엘의 비협조로 탁상공론이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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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페니키아의 터전이던 티레(타이어, Tyre) 유적. 아름다운 바닷가는 지금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폐허와 죽음의 현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에 박격포공격을 일삼는 헤즈볼라를 공격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그런데, 헤즈볼라를 잡는다면서 이스라엘 국경으로부터 20마일 이내에 있는 모든 주민을 밖으로 나가라고 강제로 내쫓았다. 이스라엘의 위선은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시절 71년 반란을 일으켰다가 천혜의 요새 마사다(Masada)를 파괴당했다. 이후, 기력을 회복하더니 135년 로마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 로마의 지배에 다시 반기를 들었다. 그때 로마는 유대인을 진압한 뒤 유대인들을 그들의 조국에서 내쫓는 디아스포라 (Diaspora, 예루살렘에서 추방) 결정을 내렸다. 유대인이 20c 초까지 세계를 떠돌아야 했던 이유다. 그런 역사적인 상처를 간직한 나라가 지금은 그 상처를 다른 민족과 국가에 고스란히 떠넘기고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생각할 지혜가 아쉽다. 불평등한 역사인식은 정말이지 인류사회의 진보에 큰 걸림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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