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민주주의창-영미 정상회담:푸들논쟁
레바논 소식으로 가득한 영국 언론
지금 영국언론은 레바논 전쟁으로 가득 차 있다. 뉴스 시간마다 레바논과 이스라엘을 생방송으로 연결해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 소식과 파괴의 현장에 신음하는 레바논 국민들의 비극을 전한다. 또, 세계 여론에도 굴하지 않고, 공격 지속의지를 천명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부의 방침을 들려준다. 키를 쥐고 있는 미국도 가끔 연결해 미국 정부의 입장도 전달한다. 뉴스만이 아니다. BBC 1의 경우 일요일인 30일에도 [Breakfast, (오전 6시부터 9시까지 3시간 동안 일주일 내내 진행하는 아침뉴스와 정보 프로그램)]에 이어 9시 [News 24 Sunday(일요일 오전 시사 진단 프로그램)], 10시 [Heaven & Earth( 일요일 오전 시사와 문화 심층 프로그램)]까지 계속해서 레바논을 다뤘다.
너무 지나친 것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다. 국내 문제도 많은데... 제 나라 일도 아닌 문제에 뭐 그리 요란하게... 그러나 곰곰 들여다 보면 생각이 바뀌면서 영국이 이해되고 나아가 영국의 역할을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왜 그럴까. 흔히 영국을 아주 오래 전에 해가 져 어둑해진 [59년 왕십리]쯤으로 기억한다. 물론 20c 전반까지 다시 말해 2차 세계 대전까지 누리던 세계 경찰(警察)의 지위를 잃어버린 것은 널리 알려진 대로다. 그러나, 표현이 적절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해를 돕기 위해 굳이 표현하자면 경찰을 돕는 방범대원(防犯隊員)의 역할까지 손에서 놓은 것은 아니다. 유심히 세계 정세를 들여다 보면 이해할 수 있다.
관심이 높은 이유
현재 미국이 벌이고 있는 세계 전쟁의 큰 축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견하고 있다. 영국이 미국에 이어 그렇게 많은 군대와 장비를 보내지 않는다면 미국도 쉽사리 세계 전체의 여론(유엔과 유럽연합이 주가 되지만)을 무시하고 전쟁을 치르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영국의 역할이 여기 있는 것이다. 상당한 국가 예산을 미국과 함께 세계 전쟁에 쏟아붓고 있고, 영국의 국민이 전장에서 죽어나간다. 그러니, 영국의 역할에 대한 언론의 관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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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초토화된 레바논의 건물 |
두번째, 역사적 맥락이다. 서양의 역사는 우리처럼 특정국가 혼자 단절된 역사의 경험이 드물다. 유럽과 중동은 B.C 2천 5백년전의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부터 출발해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는 물론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도 기반을 달리하는 숱한 국가들이 전쟁과 협상, 그리고 제 3자 개입을 통해 욕망을 충족시키거나 조절하면서 생존해 왔다. 이런 현상은 근대 들어 더욱 고착됐다. 특정 2개 나라만의 전쟁이나 협상에 멈추는 일이 없다. 중세 동양의 앞선 문화를 접하는 게기를 이뤄 유럽의 변화를 가져온 십자군, 교황이 중재한 16c 식민지 전쟁, 17c 유럽을 초토화 시킨 종교전쟁, 18c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9c 치열했던 식민지 쟁탈전, 20c 2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 예외가 없다. 모두 당사자간 대결에서 국제문제로 비화되거나 국제협상으로 해결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영국은 16c 이후 이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가장 강력한 힘으로 문제를 참여해 왔다. 영국의 언론 전체가 레바논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전통이자 현실적으로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블레어 영국 수상이 평화를 찾아보겠다고 애써 미국까지 날아가는 이유도 이해된다. 그러나, 이번 영미(英美) 정상회담은 특별한 성과가 없었다. 우리도 한미 정상회담 하면 늘 대통령이 도마 위에 오른다. 경우는 다르지만 이번에 블레어 수상도 비슷한 신세가 됐다. 미국에서 부시 대통령과 유엔의 힘으로 사태를 해결해 보자는 데는 합의했지만, 눈앞의 비극을 해소할 휴전 대책을 바랐던 여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영국 언론은 블레어의 미국행이 완전 실패했음을 지적한다. 노동당 안에서도 그를 지지하던 의원들의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갈수록 영국 안에서 블레어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 전략에 밀착돼 간다는 소리가 높아진다.
블레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더욱이 미국이 이스라엘에 레이저 유도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영국 북부 스코틀랜드의 항구도시 글래스고(Glasgow)에 있는 프레스트위크(Prestwick) 공항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영국의 여론은 더욱 나빠지고 있다. 비록 블레어가 부시의 유감표명을 받아냈다고 설명했지만 충분치 않아 보인다. 이스라엘에게 지금처럼 멋대로 공격할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 없다는 지적이다. "국민은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일이 도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것임이 좀 더 명확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알란 심프슨 하원의원은 이제 정상회담 뒤 극장의 컴컴한 무대에 부시와 블레어만 남게 됐다고 말한다.
성급하지만, 부시와의 회담이 오히려 블레어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더 타임즈(THE TIMES)는 29일 "휴전이 연기되는 것에 대해 블레어가 국내에서 갈등에 봉착하게 됐다" 는 소식이 그 예다. 다른 신문들도 비슷한 논조다. 한 발 더 나가 자칫 레바논 사태가 블레어 수상의 실각(失脚)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노동당 안에서 점쳐질 정도다. 앞서 밝혔듯이 유럽과 영국의 역사가 그렇다. 국제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지 못한 정치인에 대해 국민들은 냉철한 결정을 내린다. 유화정책으로 영국수상이 실각한 예를 보자.
푸들은 이제 그만...
뮌헨 회담(1938년 9월)과 체임벌린 수상이 그렇다. 1938년 나찌독일은 욱일승천하는 기세로 같은 게르만 민족인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폴란드의 단찌히 지방을 합병하고, 체코의 수데텐 지방도 독일인이 많이 사는 독일땅이라는 이유로 요구했다. 체코는 강력히 반발했다. 그러나, 약소국 체코는 할말이 없고, 선진 강대국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인이 나섰다. 독일에 비해 군사적으로 열세여서 제어하기 어려웠던 이유도 있고, 민주적인 국가 분위기상 어떻게든 평화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측면도 있다. 결과는 뮌헨회담을 통해 수데텐 지방을 넘겨줬는데도, 히틀러가 야욕을 확대하면서 체임벌린의 외교는 결국 실패하게 된다. 그가 실각하고 처칠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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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이 더이상 미국의 푸들이 돼서는 안된다는 더 타임즈 보도 내용 |
이스라엘과 미국은 문제의 원인을 헤즈볼라에서만 찾는다. 당분간 전쟁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이는 부시에게 휴전 일정을 잡아 보자고 찾아간 블레어 수상. 그의 모습에서 전쟁을 꿈꾸고 있는 히틀러에게 평화를 논하러 찾아간 체임벌린의 모습이 겹쳐진다. 강력한 네오콘들의 기세를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제어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으로 보인다. 그런 만큼 영국 여론은 이제 미국과 특별한 관계의 우정이 영국의 일방적인 착각일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영국과 블레어가 부시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 가고 있다. 경찰과 방범대원의 관계가 아니라 경찰 따라다니는 애완견 푸들(poodle)의 관계가 아니냐는 자조와 이제 더 이상 푸들 강아지가 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글이 신문에 오르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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