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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민주주의 창-정부와 언론, 뒤바뀐 관계

4. 민주주의 창-정부와 언론, 뒤바뀐 관계

이종석 장관 발언 파문

한국에서 집권 열린우리당(과연 집권당인지 따져 볼 대목이 많지만)이 4곳의 재,보궐선거 참패 요인중의 하나로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대북정책 미국 실패 발언"을 꼽았다. 이종석 장관이 SBS 일요 대담 프로그램인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에 나와 미국이 대북정책에서 가장 큰 실패를 한 나라라는 취지의 발언을 해 한국사회를 뒤흔든 것인데... 이런 발언이 나오면 공식처럼 튀어나오는 두 가지 반응이 있다. 첫째, 언론과 대미 의존적인 정치집단이 내세우는 [미국에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식의 무조건 반사(無條件 反射) 반응. 두번째, 이런 무조건 반사에 대해 복잡한 정치적인 수사(修辭)나 에두름 없이 대통령 특유의 [그런말 하면 안되냐]는 2차 무조건 반사 반응.

사실 영국으로 나오기 전까지 [한수진의 선데이 클릭]의 연출을 맡았던 책임 PD로서 착잡한 심정이 더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정도 수준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지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미국은 가만히 있는데 내부에서 자기들끼리 치고 받고 싸우는 모습은 우리사회 언론과 정치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이며 나아가 빈약한 우리 국가의 경쟁력과도 관계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 시절 귀에 못이 배이도록 듣고 배우던 말이 중국의 전통적인 이이제이(夷以制夷). 미국이라는 나라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한국 내부에서 싸워주니... 미국이 힘들여 설명하고 설득해야 할 일을 한국내부에서 알아서 다 해준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참 고마운 혈맹인데, 대개 이렇게 시키지도 않는데 자기가 알아서 기면 나중에 칭찬 받는 게 아니라 대개 토사구팽(兎死狗烹) 당하는 게 동서고금의 관행이다. 국내 정치든 국제 정치든... 개도 무는 개를 돌아본다는 조상님들의 훌륭한 가르침은 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함을 강조한 마키아벨리식 서양 국제정치론과도 맥을 같이하는데... 그 깊이 돌아볼 일이다.

언론은 책략, 정부는 이상... 언론은 이상 정부는 책략

물론 싸움을 해야 한다. 적을 맞아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놓고 싸움의 대의명분, 그리고 실리, 작전에 관해 치열한 논리 다툼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에서 미국이나 북한과 관련된 사안이 나올 때 논리다툼은 보이지 않는다. 감정만 난무한다. 일반 민중들은 그럴 수 있다. 민중은 감정만 갖고도 폭발할 수 있지만, 언론과 특히 정부는 감정만 갖고 폭발해서는 안 된다. 사회에 대한 철저한 책임의식이 필요하다. 책임을 넘어 한가지 더 필요한 것은 역할 분담이다. 정부와 언론이 각자 고유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언론과 정부의 치열한 다툼은 논리 다툼도 아니고, 영역도 없다. 우리사회 민주주의가 아직은 토대에서부터 취약함을 드러내 준다.

영역이란 무엇인가. 언론은 간언(諫言)의 기능을 갖는다. 정부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바른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며 비판해야 한다. 서양의 언론 이론에서 말하는 사회 감시기능과도 일정부분 맥이 닿는다. 언론이 추구해야할 이론과 비판의 토대는 무엇인가. 진실과 정의다. 언론은 진실이 아닌 것을 말해서는 안되며 정부에게 진실과 정의를 수호하도록 비판, 감시하며 견제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집행의 힘(Power)을 가진 정부는 늘 진실과 정의의 반대쪽에 선 사람들의 이권에 유혹당해 오염되거나 현실적인 역학관계상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언론은 진실과 정의에 기초해 당위론적인 명제를 제시해야 하며 정부는 이런 바른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하고 때로는 전략적으로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선진민주사회의 언론과 정부의 상호보완이자 아름다운 공존이다. 시민들도 상식과 합리, 정의와 진실을 귀히 여기는 차원에서 이런 염화시중(拈花示衆)의 관계를 지원해야 한다.

영국언론 미국 문제점 지적,  영국정부 신중

레바논 사태를 보자. 영국의 언론들은 진실과 정의에 입각해 이스라엘 정부의 살인적인 전쟁정책을 연일 고발한다. 블레어 수상에게는 이스라엘에 대한 단호한 조치를 주문한다. 그리고, 측면에서 이스라엘의 만행을 지원(묵인은 더 무서운 지원이다. 혼내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지 않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이다)하는 미국에 대해 좀더 분명한 목소리를 내라고 요구한다. 근거는 진실과 정의다. 테러를 일삼는 집단을 일벌백계(一罰百戒)로 다스리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와중에 테러와 무관한 엉뚱한 민간인 그것도 어린이가 다수 희생된다면 이는 어떤 변설로도 합리화 시킬 수 없다.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막강한 전력을 갖고 싸울 의사나 힘도 없는 정부와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용서한 것일까.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불타는 레바논 도시.

인류 역사에서 제국주의적인 침략 전쟁은 모두 작은 일 빌미 삼아 자신의 더 큰 잇속 채우려 할 때 발생한 것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양심과 진실, 정의는 명약관화 한 것이다. 그러나, 블레어의 입장은 다르다. 영국은 미국과 둘도 없는 혈맹이다. 그러니, 진실과 정의에 기반한 언론의 주장대로 모든 것을 수용할 수는 없다. 아니 거꾸로 블레어는 미국이나 이스라엘 대신 시리아와 이란을 공식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렇게 뜸을 들여놓고 우방 미국의 심기를 정부 대표자로서 불편하지 않게 만든 다음 마침내 블레어도 오늘부터는 미국에 조심스럽게 휴전을 거론하며 언론이 주장해오던 입장을 전달한다. 이게 바로 된 정치와 언론의 역할 분담이다.

언론은 진실과 정의를, 정부는 신중한 책략을   

우리는 반대다. 언론은 자유와 정의, 진실에 기반하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든 이 원칙 아래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언론은 진실과 정의는 뒷전인 채 현실적인 실리와 책략으로 접근하다. 정치권 역시 반대다. 특히 현 참여정부는 원론에 입각하지 않은 언론의 접근에 현실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원론적으로 접근한다. 결론적으로 순수(진실과 정의)를 말해야할 언론은 책략을 말하고, 책략을 말해야 할 정부는 순수(진실과 정의)를 말한다. 뒤바뀐 한국사회. 바로된 언론이라면 북한문제에 대해 미국에게 공정과 진실에 입각한 평화적 접근을 요구해야 한다. 대신 바로된 정부라면 미국에 대해 설익은 발언을 삼가고, 수사(修辭)적으로 신중하게 때를 살피며 접근해야 한다. 얼마든지 미국의 잘못을 얘기하며 정의를 부르짖는 언론. 동맹과 국제 역학관계를 고려해 신중하게 말하고 행동하는 정부. 이런 모습을 되찾기를 한발 앞선 민주주의의 나라 영국에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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