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진의 존재는 늘 고소영에게 묻혔다.
영화 제작발표회 때부터 시사회를 열기 직전까지.
그러나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공개된 후 장희진은 출연배우 중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공포영화 '아파트' (감독 안병기, 제작 토일렛픽쳐스·영화세상)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평범하고, 가장 현실적인 공간인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다룬다.
오후 9시56분만 되면 몇몇 집의 불이 꺼지고 그중 한 곳에서 자살 또는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영화에 첫 출연하는 장희진은 '토지'에서 봉순의 딸 양현으로 등장해 극 종반부를 이끌었고 이후 '건빵선생과 별사탕'에 출연하며 CF 스타에서 연기자로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왔다.
아무래도 신인이기에 음악프로그램인 KBS 2TV '뮤직뱅크'를 진행하며 딱딱한 표정을 털어냈다.
영화 도전은 정경호·이태성과 주연을 맡은 '폭력써클'로 시작했지만 이 영화 촬영 도중 시작한 '아파트'가 먼저 개봉하는 바람에 바깥에 드러나는 데뷔작은 '아파트'가 됐다.
여기서 그는 하반신 불구인 유현 역을 맡았다.
유현은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고 혼자 살지만 언제나 웃음을 잃지 않는다.
회사 일로 우울해하는 세진(고소영 분)에 게 먼저 다가가 용기를 북돋워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세진이 이웃 주민에게 학대받 는 유현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유현은 사건의 중심에 선다.
이런 캐릭터인 까닭에 장희진은 영화 내내 휠체어를 타고 있어야 하며 바닥을 기어다니기도 했다.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연기의 폭이 적은 까닭에 오히려 더 풍부한 표정 연기가 숙제였을 터.
신인에게는 상당히 어려운 주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토지'에서 지적받았던 주눅 든 것 같은 연기에서 벗어나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느끼려 했고, 꽤 다양한 얼굴 표정 속에 감정의 명암을 싣고자 했다.
"사실 전 영화 도입부 잠깐 카메오로 등장하는 유민 씨 역할을 맡기로 했는데 대본 연습을 하러 간 날까지 유현 역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감독님이 저보고 대신 대본을 읽어달라고 하셨고, 그 후 유현 역을 맡게 된 거죠."
그는 "지금 생각해보면 감독님도 반신반의하셨던 것 같다. 이미지가 유현 역에 맞기는 한데 연기력이 미지수라고 생각해 테스트를 해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더 유현을 잘 표현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 발가락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촬영장에서도 늘 휠체어를 타고 지 냈고, 밤에는 다리를 묶고 잠을 자기도 했다.
다리를 묶은 채 기어다니는 건 기본.
이런 육체적인 노력과 함께 유현의 슬픈 감정을 담기 위해 애썼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아이가 학대를 받는 슬픈 상황이잖아요. 유현이 당하는 아픔이 시나리오상에서 잘 느껴졌기 때문에 연기할 때 유현의 생각 자체에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안병기 감독이 촬영 때마다 '네가 잘해야 영화가 산다'는 말을 해 중압감을 느꼈다.
현장에서 힘들어 할 때마다 선배 고소영이 큰 힘이 돼줬다.
대사를 맞춰주고, 긴장을 풀 수 있도록 배려했다는 것.
"촬영했던 장면 중 꽤 편집돼 잘려나가는 바람에 제대로 관객에게 상황 설명이 되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면서도 "그렇지만 '아파트'는 제게 첫 영화라는 큰 의미가 있으니 잘됐으면 좋겠다"는 감정도 숨기지 않았다.
첫 영화를 객석에서 보는 심정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었다.
민망함, 창피함, 아쉬움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제대로 화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영화 '폭력써클' 촬영과 '뮤직뱅크' 녹화와 병행하며 찍는 바람에 개인적으로는 정신이 없었어요. 아쉬움도 크지만 일단 영화배우로서 시작을 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보다 조금이나마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한다는 말밖에는 나오지 않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장희진이 얼마나 부단한 노력으로 관객 앞에 서는지 지켜보자.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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