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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런던 7--영국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6.영국

1)영국

2,3,4,5,6,7,8,9)런던(London)--오늘 이야기

10)배스(Bath)

8.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British Museum)

서쪽 계단(West Stairs) 좌측 3

     계단에 전시중인 모자이크 작품의 마지막 편이다. 계단 중앙의 모자이크를 보고, 계단을 오른쪽으로 돌아 걸어 올라가면 벽면에 흥미로운 작품이 탐방객을 기다린다. 로마 모자이크의 최후 단계인 5-6c 작품으로 추정된다. 북아프리카 특유의 사냥 장면 모자이크인데, 등장인물들이 로마인이 아니다. 게르만족(Germans). 로마 제국은 476년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물론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로마 제국(비잔틴 제국)은 15c 까지 천년을 더 살아 남지만, 서유럽에서 로마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로마 제국은 이미 4c 말부터 서서히 영토를 잃기 시작했다. 게르만족이 로마 제국 판도 안으로 대이동을 해오면서 야금야금 땅을 빼앗긴 결과다. 북아프리카의 경우 5c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Vandals)이 점령했다. 북아프리카 주둔 로마군을 몰아내고 반달왕국(Kingdom of Vandals)을 세운 것이다.

     카르타고에서 발견된 이 모자이크들은 5-6c 이 지역을 통치했던 반달족이 남긴 유물이다. 게르만족(반달족) 귀족의 복장을 한 남자들이 수렵에 열중하는 장면을 그렸다. 수렵 모자이크는 이미 반달족이 들어오기 전에 뿌리를 내렸지만, 군사적 무용(武勇)을 중시했던 점령자 반달족의 취향과도 맞아 떨어져 모자이크로 제작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먼저 반달족 귀족이 말을 달리며 밧줄을 사슴에 거는 그런 장면이다. 우리네 고구려 무용총(武勇塚)의 수렵도를 보는 느낌. 제작연대 역시 비슷하다. 다음은 창을 맞고 피를 흘리며 쓰러진 사슴이다. 이어 말을 탄 반달족 귀족. 생김새나 복장이 중세 많이 보게 될 게르만족(프랑크족)의 모습과 비슷하다. 로마군을 몰아내던 당당한 기세가 엿보인다.        

   게르만족은 문자가 없어 스스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질 못했다. 적대관계에 있던 로마인의 기록을 통해 그들을 들여다 봐야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타키투스의 '게르마니아(Germania)'와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기(戰記)'가 대표적이다. 얘기를 종합해 보면 게르만족은 키비타스라는 소단위로 나뉘어 있었다. 

게르만족 귀족 수렵. 카르타고 출토. 5-6c 작품.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통치 방식은 세습 왕이나 선거로 뽑힌 군사 책임자의 2종류다. 중요한 사안을 자유민의 민회(民會)에서 결정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고대 그리스 이후 내려오는 민주주의 전통이다. 또,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경제적인 부양을 받는 독특한 사회관계를 형성했는데, 중세 게르만 국가에서 널리 행해진 봉건제(封建制)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문자가 없는 대신 영웅의 용감한 싸움을 기리는 시를 좋아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검소하며 용감한 기풍, 공동체 의식이 유달리 강했다. 오늘날 독일인을 보는 듯하다. 훗날 훗날 점령군인 로마인이 야만적인 행위 몇 가지를 들어 게르만족을 야만인 취급했고,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일본 제국주의자가 한민족을 바르게 표현한 적이 많지 않은 점이나 일본을 물리치고 한국에 주둔한 미국이 한국에 대해 무지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여기서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차지하게 된 역사전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보자.

반달족 기사의 창을 맞고 피흘리는 사슴.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B.C 146년 여신(女神) 타니트(Tanit)와 남신(男神) 바알(Baal)을 숭배했던 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찬란했던 문명의 모든 흔적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미국의 가공할 폭격에 6.25 직후 북한에서는 지상의;북한이 석기시대로 돌아갔다"는 평가를 내렸다. 카르타고에는 석시시대라고 표현할 그 무엇도 없었다. 카르타고인 자체를 인종 청소해 버렸기 때문이다. 나찌만이 인종 청소를 시도한 게 아니다. 로마 역시 마찬가지. 카르타고인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노예가 된 여성들을 통해 흔적을 남겼겠지만, 그 특징과 후손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문명으로 카르타고는 사라졌지만, 도시로서 카르타고는 재건됐다. 아프리카와 유럽을 잇는 가장 짧은 지리적 이점. 비옥한 북아프리카 농경지대의 중심지로 카르타고를 그냥 폐허로 두는 것은 로마를 위해서도 결코 이로운 일이 아니었다. 백여년 지나 로마의 공화정에 종지부를 찍고 독재정을 가져왔지만, 혜안(慧眼)이 있었던 카이사르는 카르타고 재건에 나섰다. 카르타고는 1c 이후 로마제국의 경제중심지이자 학문파된 뒤로는 기독교의 중심지로도 떠올랐다. 카르타고(페정의 번영을 누렸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카르타고에 새로운 시 로마제국 심장부가 이미 이민족(게르만족)의 침략으로 유린된지는 오래. 지리적으로 떨어져 있어 상대적인 안정을 누리던 북아프리카에도 전운이 몰려왔다. 도전장을 내민 것은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 439년 반달족이 카르타고를 점령했다. 6백년 전 로마인들의 야만적인 파괴행위로 벽돌 한장 남기지 않고 폐허로 변했던 상황이 되풀이 됐다. 달라진 것은 파괴의 주체. 로마에서 반달족으로... 카르타고는 다시 한번 잿더미로 변했다. 역사는 이래서 흥미롭다. 카르타고를 유린한 뒤?족의 일파 반달족에게 점령당하고 말았으니...

   인류역사상 천년왕국이란 없었다. 물론 천년이상을 지속한 나라는 있지만, 세계 최고의 권세를 천년이상 누린 민족이나 국가는 없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세계 최강으로 올라온 것은 이제 겨우 60년 지났을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문명파괴의 야만적인 행위를 가리킬 때 쓰는 반달리즘(Vandalism)이란 용어. 반달족(Vandals)이 로마제국의 카르타고를 파괴한 뒤 다시 제국의 심장부 로마를 파괴하면서 보여 준 비문명적인 행위를 지칭한 것인데... 사니 전쟁 뒤 B.C 146년 카르타고를 파괴한 쪽이 훨씬 더 잔인하고 야만적이었다. 로마니즘(Romanism)이라 불려누구인가? 이를 알려면 게르만(German)족부터 살펴야 한다. 인도-유럽어족(語族) 가운데 그러니까 백인이라고 지칭하는 코카서스 인종 가운데, 게르만어(語)를 사용하는 민족을 게르만이라 한다. 게르만이란 이름의 원조가 된 독일(Germany)를 비롯해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영국(앵글로 색슨), 아이슬란드 사람을 가리킨다. 키가 크고 흰 피부에 금발, 푸른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오늘날 국경 개념으로 독일 북부, 덴마크의 유틀란트 반도, 스칸디나비아 반도가 주 거주지역이다. B.C 2c 에서 B.C 1c 사이에  동남쪽으로 이동해 내려와 흑해(黑海)연안에서 라인강(江) 유역까지 퍼져 나갔다. 크게, 3분류 된다. 북(北)게르만(덴마크족, 후에 바이킹이 된 노르만족), 서(西)게르만(앵글로족, 색슨족, 프랑크족), 동(東)게르만(동고트족, 서고트족, 반달족, 부르군트족).  

말을 탄 게르만족 귀족.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당초 게르만족이 로마인과 처음으로 접촉한 것은 B.C 2c 말. 오늘날 프랑스땅까지 내려온 게르만 족 일파가 로마의 손에 격퇴됐다. 문제는 4c 생겼다. 서역(중앙아시아)지방에서 한나라에 쫓긴 훈(Hun, 흉노)족이 동유럽으로 들어오면서 이에 밀린 동게르만의 고트족이 이동을 시작했고, 순차적으로 게르만 여러 민족이 서쪽으로 밀려났다. 쫓기던 게르만족은 결국 로마 국경을 넘게 됐다. 375년 대대적인 이동 때 이들은 쇠잔해진 로마의 지방 권력을 무너트리고 각지에 게르만 왕국을 세웠다. 북프랑스와 독일에 걸쳐 프랑크 왕국, 중프랑스에 부르군트 왕국, 이베리아 반도에 서고트 왕국, 이탈리아 반도에 동고트 왕국, 영국에 앵글로색슨 왕국. 스칸디나비아 반도에서도 훗날 바이킹이 돼 유럽사회를 뒤흔들 노르만족등이 왕국을 세웠다. 이때, 반달족은 어디 있었나? 이베리아에 먼저 왕국을 세웠다가 서고트족에 밀려나면서 북아프리카로 들어갔다. 이때 카르타고를 침략해 로마군을 밀어내고 반달 왕국을 세웠으니 카르타고는 반달 왕국 수중으로 떨어졌다.

   반달족의 이동경로를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반달족은 1c 오데르강 상류에 거주하다 훈족의 침입을 받고 3c 도나우강 하류로 이동했으며, 4c 이후에는 로마 영토 판노니아(루마니아, 알바니아)에 정착했다. 그러다, 민족 대이동시기인 409년 이베리아로 머나먼 유랑을 떠났다. 몽골이나 중앙 아시아에서 조선땅으로 들어온 것보다 더 먼거리를 이동한 것이다. 그러나, 운명은 반달족을 이베리아 반도의 주인으로 남겨두질 않았다. 뒤이어 서고트족이 들어와 반달족을 밀어낸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를 내준 반달족은 429년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북아프리카로 넘어갔다. 로마 총독 보니파키우스를 죽이면서 로마군을 물리친 뒤 439년 카르타고를 수도로 북아프리카 로마땅을 아우르는 반달왕국을 세웠다. 반달족은 여세를 몰아 거꾸로 지중해를 거쳐 이탈리아 반도로 침략해반달리즘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반달왕국은 부흥에 성공한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때인 534년 벨리사리우스가 지휘하는 동로마군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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