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고대의 삶과 사랑--
6.영국 1)영국 2,3,4,5,6,7,8,9)런던(London)--오늘 이야기 10)배스(Bath) 5.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British Museum) |
1. 서쪽 계단(West Stairs) 좌측 벽면 2-2
◆카르타고 대저택 출토 작품 2
서쪽 계단의 좌측 두번 째 벽면 모자이크의 나머지 작품을 살펴본다. 봄의 여신과 꽃피는 봄철, 3월과 4월을 상징하는 여인을 그렸다. 전체가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된 상태가 아니라 훼손된 채 흩어져 있던 것을 한데 모아 놓은 것이어서 얼핏 보면 그림을 이해하기 힘드니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한다. 오른쪽 아래 원 속에 든 봄의 여신은 북아프리카 스타일의 큰 눈과 긴 코, 큼직한 귀걸이가 인상적이다. 3월의 여인은 아프로디테를 기리는 제단 앞에 서 있다. 훨훨 날아갈 듯 예쁜 자태로 무엇인가 예식을 치를 모양인데... 제단 뒤 나뭇가지에는 제비가 앉아 있다. 3월을 상징한다. 강남 갔다 돌아온 것은 아닐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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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여신과 3월, 4월의 여인 전경.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된 상태가 아니다. 훼손된 채 부분 부분 남아있는 작품을 한데 모아 놨다. 오른쪽 아래 원 속에 든 여인이 봄의 여신,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서 4월의 여신, 다시 왼쪽이 3월의 여신.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4월의 여인은 화려하게 치장하고 긴치마를 입었다. 나비처럼 어여쁜 자태로 춤을 추는 모습이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조지훈의 승무(僧舞)를 연상시키는 여인의 옷차림과 춤사위. 덧붙여 인상적인 장면은 손에 든 캐스터네츠. 흥을 돕기 위해 장단을 맞췄을 것이다. 바라를 들고 의식을 펼치던 스님들 춤사위, 가락과 많이 닮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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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의 여신. 북아프리카 스타일의 큰 눈과 긴 코, 커다란 귀걸이가 인상적이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앞서 [111. 런던 3-영국]에서 여름의 여신으로 잘 못 소개됐다. 실은 봄의 여신이다. 여름의 여신은 아래 사진으로 대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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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여신. 보통 여름의 여신은 밀이삭을 머리에 이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르다. 옥수수다. 노랗게 잘 익은 옥수수를 머리에 수북이 얹어 놓은 여신은 커다란 귀걸이와 목걸이로 장식한 빼어난 미인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헬레니즘권 미인의 분위기와 좀 다르다. 눈썹이 짙고, 검은 눈동자에 코가 길쭉하게 높다. 오리엔트와 북아프리카 주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이번에는 2차 포에니 전쟁을 살펴본다.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이라고 하는 불후의 명장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칠리아를 비롯해 여러 영토를 잃고 위축된 카르타고에는 하밀카르 바르카스가 있었다. 애국심에 불타던 이 장군은 지중해 서편에 일찌감치 카르타고의 식민지로 개척돼 있던 이베리아 반도로 갔다. 원주민을 제압해 은광을 개발하고, 부(富)를 축적한 그가 조국 카르타고를 위해 남긴 가장 큰 업적은 따로 있었으니... 아들 한 명을 잘 둔 것. 주인공 이름은? [한니발].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스가 죽은 뒤 실권을 잡았던 매형 하스드루발 역시 죽자 B.C 221년 26살의 젊은 나이로 이베리아 반도 카르타고의 책임자가 된다. 로마에 대한 복수심이 남달랐던 한니발은 B.C 219년 당시 로마의 동맹시(市)이던 이베리아 반도의 지중해 연안 도시 사군툼을 8개월 만에 함락시키고, B.C 218년 로마로 진격했다. 2차 포에니 전쟁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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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의 여인. 제단 뒤에 나무가 서 있고, 나뭇가지에 제비가 2마리 앉아 있다. 3월을 상징한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한니발의 작전은 당시로서는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오늘처럼 육로가 개발돼 있지 않고, 도로망이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 주요 이동 수단은 산이나 강물에 가로 막히지 않는 망망대해(茫茫大海)의 배였다. 최대한 갈 수 있는 데까지 배를 타고 움직인 뒤, 그 다음에 육로 이동을 선택했는데... 한니발은 바다 이동 대신 험준한 산맥이 가로 막고 있는 그리고 언제든 현지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길을 골랐으니... 먼저, 보병 5만명과 기병 9천명, 코끼리 40마리로 피레네 산맥의 고봉 준령을 넘은 한니발은 남프랑스를 손쉽게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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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의 여인-- 화려하게 치장하고 긴치마를 입은 여인이 춤을 춘다. 장소는 아프로디테 여신을 기리는 신전. 캐스터네츠를 들고 춤을 춘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이어 눈 덮인 알프스. 거대한 설산(雪山)에 겁먹고 두려움에 떠는 병사들을 되돌려 보낸 한니발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알프스 통과를 성공시켰다. 이어 B.C 216년 이탈리아 반도 남부의 칸나에에서 로마군을 궤멸시켰다. 로마군 8만 6천명 가운데 겨우 1만 4천명만이 목숨을 건졌다. 카르타고 한니발군의 전사자는? 불과 6천 명. 그러나, 이후 한니발이 결정적인 로마 진격을 늦추며 시간을 끄는 사이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틈을 타 시민과 동맹시의 굳건한 협력 아래 기운을 회복한 로마는 B.C 207년 한니발의 동생 하스두르발의 원군을 무찌르며 불리하던 전세를 역전시켰다.
우위에 있던 한니발군은 이탈리아 반도 남부로 쫓기고... B.C 206년에는 카르타고의 배후기지 이베리아 반도가 로마 수중으로 떨어졌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개선한 로마 장군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의 본거지 북아프리카 진격을 결정했다. 카르타고도 한니발을 본국으로 소환해 결전에 대비했다. 로마는 방비가 튼튼해진 카르타고를 피해 우티카로 상륙했다. 카르타고의 허를 찌른 로마는 B.C 202년 자마에서 최후의 전투를 벌여 카르타고의 무릎을 꿇렸다. 지중해 패권을 둘러싼 카르타고와 로마의 우열경쟁은 이렇게 판가름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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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래--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상징하는 삼지창을 사이에 두고 바다를 상징하는 돌고래 두마리가 마주본다.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15년간 싸울 때 카르타고 본국에서 응원군을 보냈다면, 로마와 카르타고의 운명이 뒤바뀌었을까? B.C 202년 2차 포에니 전쟁 패배이후 새로 집정관이 돼 카르타고의 부흥을 노리던 한니발이 동족의 밀고로 해외탈출하지 않았다면 다시 한번 카르타고에게 기회가 주어졌을까? 가정은 어리석은 일이다. 한니발은 B.C 196년 고국 카르타고를 떠나 이베리아 반도의 지중해 반대편 오리엔트로 피신했다. 그 곳에서 헬레니즘의 시리아 왕국과 손잡고 로마와 싸웠으나 실패하고, 다시 B.C 190년 소아시아의 비티니아로 갔다가 로마군의 추격 속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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