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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비엔느 1-프랑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i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4,15)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16)리용(Lyon)

17,18,19,20)비엔느(Vienne)--오늘 이야기

21)오랑쥬(Orange)

22)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3,24)님므(Nimes)


17. 비엔느(Vienne) 1

◆ 1. 비엔느의 역사

 

비엔느(Vienne). 리용 갈로-로망 박물관의 '술취한 헤라클레스'는 물론, 셍제르망 앙 레 박물관의 '로마시대 생활 풍속' 모자이크가 발굴된 도시라면 이해하기 쉽다. 리용 남쪽에 위치하는데, 대도시 리용에 붙어있는 위성도시라고 할까? 리용에서 아름다운 론느강을 따라 내려오면 강변에 아담한 모습을 드러내는데, 한 손에 들어온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산아래 강변으로 아늑하게 자리를 틀었다. 비엔느라는 이름은 B.C 2c 갈리아(골)족의 일파 알로브로쥬 부족의 중심도시 비엔나(Vienna)에 뿌리를 둔다. 갈리아족이 켈트족의 일파이고, 켈트족이 중부유럽에서 이동해 온점을 감안하면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Vienna)와 어원적으로 관련 있을 듯 싶다.

 

비엔느 신전--로마에서 유행한 코린트 양식의 신전이다. 비엔느 구시가지, 그러니까 론느 강의 동안(東岸)에 자리한다. 내부 신상실(神像室)은 복원했지만, 나머지 윤곽은 로마시대 그대로다. 비엔느 ⓒ김문환

 

비엔느는 갈리아를 정복한 카이사르에 충성을 바치며 협력한 덕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근처 루그두눔(리용)을 속주 수도로 결정한 데 힘입어 작은 로마로 칭송될 만큼 번영을 누렸다. 이를 반영하듯이 지금도 극장을 비롯해 로마시대 유적이 시가지를 가득 메운다. 산자락에 붙은 거대한 극장, 신전, 성문, 도로... 비엔느의 로마유적은 구(舊)시가지, 그러니까 론느강 동안(東岸)에 밀집해 있다. 기차역에서 내려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을 만큼 손에 잡히는 구시가지는 로마가 멸망한 뒤에도 땅속에 묻히지 않고 중세를 거쳐 살아 남았다. 유적도 마찬가지여서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은 로마시대 시가지가 론느강 동쪽에만 형성돼 있던 것으로 여겼다.

 

비엔느 극장. 로마시대 비엔느에 만든 극장이다. 그리스 양식을 모방해 산을 깍아 그 언덕을 관중석으로 꾸몄다. 오늘날 비엔느 시가지 규모과 달리 극장은 규모가 무척 커서 로마시대 크게 번성한 도시임을 알 수 있다. 비엔느 ⓒ김문환

 

◆ 2. 셍로망 앙 갈 지구

 

그러다, 1967년 고등학교를 짓기 위해 강 서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거대한 로마 유적이 발굴됐다. 로마시대 론느강 서안(西岸)에도 시가지가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다. 강 서쪽에서 발견된 로마시대 유적지를 셍로망 앙 갈(Saint Romain en Gal)이라고 부른다. 발굴결과 로마시대 강의 양쪽에 오늘날 서울의 강남북처럼 시가지가 조성돼 있었고, 로마말기 게르만족의 침략이 시작된 뒤 쇠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강서쪽 시가지는 폐허로 변해 공동묘지로 용도가 바뀌었고, 중세 동쪽 시가지만 살아 남았다. 학교를 짓다 이런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고 소중한 유적지도 발굴했으니 학교는 자꾸 지을 일이다. 우리는 아파트 짓다가 백제초기 소중한 풍납토성 터를 발견했는데... 역시 부동산 투기의 나라답다.

 

도로. 비엔느 신시가지 그러니까, 론느강 서안(西岸)에 학교를 짓다 발굴된 로마유적지 셍로망 앙 갈의 로마도로. 도로를 포장하기 위해 깔았던 커다란 돌이 로마시대 이후 그대로 남아있다. 비엔느 ⓒ김문환

 

셍로망 앙 갈 지구에는 도로와 상하수도, 주택, 저장고를 갖춘 상점등의 로마유적이 눈길을 끈다. 특히, 화장실이 인상적이다. 바닥에 물이 흐르는 수세식에 벽면을 프레스코로 장식해 요즘 개념으로도 호화롭다. 복원된 화장실은 로마시대 위생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귀중한 역사 자료로 손색없다. 우리의 탐방주제인 모자이크와 관련해서도 흥미진진하다.

 

복원한 화장실. 로마시대 일상생활의 특징은 무척 위생적인 상하수도 화장실 시스템을 갖추고 살았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수세식이며 목욕탕등에 여러명이 사용하는 공중 화장실 형태로 만들었다. 물이 흐르고 멀리 벽에는 장식용 프레스코가 보인다. 비엔느. ⓒ김문환

 

발굴과정에서 다양한 소재의 모자이크가 햇빛아래 다시 제모습을 드러내 준 덕분이다. 다수는 이웃 박물관으로 옮겨졌는데, '술취한 헤라클레스'는 리용으로 '4계절 생활 모자이크'는 빠리 옆 셍제르망 앙 레로 갔다. 남아있는 작품은 셍로망 앙 갈 고고학 지구 강가에 바짝 붙여 지은 현대식 2층 건물 박물관에 휴식을 취하며 전시돼 있다. 유적을 처음 발견한 1967년부터 1981년 사이에 새생명을 얻은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작품은 살아 움직이듯 선명한 색상으로 탐방객을 신비한 모자이크의 예술세계로 안내한다. 그만큼 작품 수준도 빼어나고 아름답다. 일부는 야외 유적에 그대로 남아 로마인이 모자이크를 어느 장소에 어떻게 설치하고 살았는지 보여주는 희귀한 체험의 장을 제공한다.

 

셍로망 앙 갈 박물관. 론느 강가에 현대식으로 지었다. 셍로망 앙 갈에서 발굴된 댜양한 프레스코와 모자이크가 전시돼 있다. 비엔느 ⓒ김문환

 

비엔느에서 이렇게 로마의 문명상을 들려주는 모자이크가 많이 발견된 이유는 이곳에 모자이크 기술자 양성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리용과 비엔느가 모자이크 산업의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셍로망 앙 갈은 기차에서 내려 구시가지를 가로지른 뒤 강을 건너면 도착하는데, 천천히 비엔느 시가지 풍경을 살피며 걸어가도 30분이면 충분하다. 리용을 찾는 탐방객은 기차로 비엔느에 들러 놓치지 말고 꼭 찾아야 할 유적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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