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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셍제르망 앙 레4-프랑스

지중해 문명기 5권BR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BR(At of Mosaic and G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BR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5.프랑스

1)프랑스(France)

2,3,4,5,6,7,8,9)빠리(Paris) 루브르(Louvre)

10,11,12,13,14,15)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오늘 이야기

15)리용(Lyon)

16,17,18,19)비엔느(Vienne)

20)오랑쥬(Orange)

21)베종라 로멘느(Vaison La Romaine)

22,23)님므(Nimes)


13. 셍제르망 앙 레(Saint Germain en Laye) 4


여름이 찾아왔다. 여름을 상징하는 어린이가 알몸으로 사자를 타고 나타난다. 여름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더위? 그렇다. 이글거리는 태양은 원시적인 에너지의 상징이다. 봄에 생명력을 되찾은 만물은 여름에 붉은 햇님이 던져주는 영양분을 받아 왕성한 삶을 꽃피운다. 식물은 무성한 나뭇잎을 드리우고 열매를 맺으며 울창한 숲을 이룬다. 동물은 도처에서 꿈틀거리는 먹이를 잡아먹으며 다가올 겨울에 대비해 제몸을 살찌운다. 이렇게 온갖 생명체가 살아 숨쉬는 숲, 그 숲속의 제왕 사자. 사자를 타고 여름이 찾아오는 이유는 이렇게 설명된다.

 

여름이 옴--사자를 타고 알몸으로 나타난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여름철 로마시대 귀족들은 사냥을 즐겼다. 사냥개를 풀어 사냥감을 쫓고, 말을 타고 달리며 창이나 칼을 휘둘러 짐승을 잡았다. 부(富)의 상징이자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던 사냥. 요즘 한국사회로 치면 총리가 구설에 휘말리는 골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사냥에서는 항상 희생제(犧牲祭)를 잊지 않았다. 숲속 사냥의 여신은 달의 여신이기도 한 아르테미스(다이애나)다. 아폴론의 누이이기도 한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무사히 사냥을 마치게 해줘서 고맙다면서 잡은 짐승을 바치고 제를 올렸다. 우리네 심마니들이 산삼을 캐기 전에 산신령에게 치성을 드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희생제--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희생제를 지낸다. 사냥을 무사히 마치게 해줘 고맙다는 뜻을 담는다. 우리네 심마니들의 치성제나 기타 대업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며 천지신명의 보살핌을 비는 마음과 통한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창던지기--산에서 창을 던지며 사냥을 즐긴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신에게 정성스런 인간의 마음을 보여 줬던 로마인들은 조상들에게도 마찬가지 숭배의식을 치렀다. 집안에서 모시는 조상신을 라리(Lari)라고 불렀다. 라리를 모시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놓고 섬겼는데 실내 정원(아트리움, Atrium) 한켠에 마련한 라라리움(Laraium)이 그것이다. 이것 보면 로마인들이나 우리네 조상들이나 사는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로마도 가족과 가문을 지켜주는 조상의 음덕(陰德)을 비는 마음이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 못지 않았다. 로마에서 라라리움은 우리네 사당과 성격이 닮았다. 조상신을 모시는 사당(祠堂). 로마의 라라리움처럼 집 울타리 안에 만들어 신주(神主, 죽은 조상의 위패)를 모셨다.

 

라리에 제사--1월을 상징한다. 로마시대는 집안을 수호하는 수호신과 조상신, 즉 라리(Lari)를 섬기는데 정성을 다했다. 집안 정원 한구석에 별도의 방이나 작은 공간을 마련해 라리를 모셨다. 우리네 집안 뒤켠 사당과 같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사당은 집안에 만들어 가묘(家廟)라고도 부르는데, 근원은 주자가례(朱子家禮)다. 고려 말 유교가 발흥하면서 설파된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삼은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은 주자가례에 따라 어김없이 사당을 만들었다. 조상숭배의 대표적인 징표여서 어길 경우 처벌을 받기도 했다. 양반층이 급속히 팽창하면서 조선 후기에는 양반층은 물론 일반에도 퍼졌다. 새집을 지으려면 먼저 사당자리부터 잡아야 했는데, 집안 뒤켠에 따로 만들 만큼 집이 크지 않을 경우 대청마루 등에 설치하기도 했다. 사당 안에는 4개의 감실(龕室)을 설치했다. 감실은 신주(神主)를 모시는 닫집(작은 모형집)이다. 고조 할아버지까지 4대조를 모시기 때문에 4개의 감실이 필요했다. 감실 밖으로는 휘장을 드리웠고, 그 앞에 제사상을 놓고 촛대를 한 쌍씩 밝혔다. 고조 할아버지 앞에는 향상(香床)을 놓아 향을 피웠다.

 

조상에 성묘--탑처럼 생긴 로마시대 전형적인 가족 무덤에서 슬퍼하는 모습. 아랫부분이 훼손됐다. 로마인들은 무덤을 만들고 조상들을 세심껏 모셨다. 한식날 무덤을 찾는 우리정서와 다르지 않다. 셍제르망 앙 레 ⓒ김문환

 

사당과 달리 우리 전통에서는 집안을 지키는 수호신 즉, 터줏대감(지신, 地神)도 있다고 믿었다. 터줏대감이 사는 공간을 별도로 만들어 놓지는 않았지만, 항아리에 쌀을 담아 놓고 터줏대감으로 여겼다. 이 터줏대감이 집안에 기거하며 집안을 보살핀다는 것이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역시 떡을 빚고 정안수를 떠 놓은 채 터줏대감에게 제를 올렸다. 필자도 대학교 2학년 때까지 음력 9월 보름이면 어머니와 함께 시루떡에 정안수 떠놓고 터줏대감에게 절을 했다. 어머님이야 아들의 성공을 기원하셨겠지만, 철부지 아들은 짝사랑하던 여학생과의 만남이 성공하기를 빌었으니... 아! 어머님의 그런 희생적인 기원이 있었기에 철없는 풋사랑은 실패했어도 자식은 이렇게 오늘까지 큰 탈없이 삶을 이어가는 것인가!

 

로마시대 무덤 1. 폼페이에 남아있다. 모자이크 그림속 무덤과 형태가 비슷하다. ⓒ김문환

 

집안식구들이 건강하고, 재산이 늘어 부유해지는 것도 모두 집안을 돌보는 정령(精靈), 터줏대감 덕으로 봤는데 이와달리 '업'이라는 것도 있었다. 집안 수호신의 한 형태인 '업'. '업'은 발복(發福)할 집안이면 식구중 특정 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는데, 구렁이 형태를 띠기도 하고, 어린 동자(童子) 모습이라고도 했다. 업은 비오는 날 집안으로 들어온다고 동네 할머니들이 말씀하셨다. 그 말이 잊혀지지 않아, 어린 나이에 비오는 날 대문밖을 얼마나 쳐다보았는가? '혹시 우리도 부자가 될수 있을까?' 그러나, 가여운 소년의 간절한 바램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들의 말씀은 끝내 눈앞의 현실이 되지 못하고 말았다.

무덤 2. 폼페이 ⓒ김문환

 

조상의 은공을 잊지 않고 살던 로마인들은 조상의 무덤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짧은 인생 끝에 찾아오는 죽음. 로마인들은 시신을 깨끗하게 닦아 놓고 문상객을 받았다. 우리네와 같다. 우리도 지금까지 시신을 염습(殮襲) 해 관에 넣고 문상객을 받는다. 추모기간이 끝나면 가난한 사람은 목관, 부유층은 석관(Sarcophagus)에 넣었다. 화장한 뒤 유골만 안치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문가족은 주택이나 신전, 석탑모양의 고분을 만들었다. 공동묘지는 지하나 계곡에 석굴을 파 만들기도 했다. 카타콤브(catacomb)다. 카타콤브는 훗날 기독교인들이 감시를 피해 예배를 보던 장소로도 활용됐다. 공동묘지는 항상 도시의 성문 밖 길옆에 만들었다. 도로변에 비석을 세우거나 고분을 만들어 고인을 기렸다. 폼페이에 가보면 도로 옆으로 마치 일반 주민들이 거주하거나 사용하는 건물처럼 조성한 고분군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무덤가. 폼페이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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