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심가 도로변 한켠에 세월에 밀려서 사라져가는 고전음악 감상실이 있습니다.
어두운 감상실에서 오페라곡에 몰입한 초로의 신사들처럼 고객들 대부분 오랜 단골들입니다.
독일어로 '고향'을 뜻하는 상호처럼 반세기 가까운 세월동안 클래식 애호가들의 안식처로 남아있습니다.
[김현철/단골손님 : 젊은 시절 마음의 고향이었고 고전음악의 아름다움을 배운 곳이다.]
[정영철/클래식 단골고객 : 음악을 듣고 사람 만나고 문화적인 갈증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감상실 한켠 전축실에서 세월의 연륜이 묻어나는 낡은 음반을 손질하는 김순희 씨.
37년전 , 부친이 작고한 뒤 외동딸인 그녀는 가게를 물려받았습니다.
클래식 애호가였던 부친 김수억 씨는 한국 전쟁이 터지자 서울에서 대구로 피난을 왔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귀향길에 소장하던 음반 수천장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대구 중심가에 고전음악 감상실을 열었습니다.
[김순희/2대째 대물림 : 나는 빵가게를 하자고 했지만 부친은 영혼의 양식인 음악을 전하는 일을 해야한다면서 고전 음악 감상실을 열었다.]
삭막했던 전후시대에 문화적인 갈증을 푸는 오아시스였던 고전 음악 감상실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김순희/2대째 대물림 : 순경이 지휘봉으로 교통정리를 할 정도로 손님들이 가게앞에 줄을 섰다.]
창업초 호황을 누렸던 감상실은 오디오와 레코드판이 대중화되고 대중음악이 밀려들면서 눈에 띄게 손님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고전음악 감상실들이 고객 유치차원에서 팝송과 경음악을 곁들일 때도 오직 클래식만을 고집해오고 있습니다.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번화가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지만 세월의 변화를 피해갈 순 없었습니다.
대중음악의 홍수속에서 감상실은 클래식 동호회를 중심으로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주부 클래식 동호회는 일주일에 한번, 소녀시절의 추억이 깃든 이곳에서 감상회를 갖습니다.
[이춘희/클래식 동호회원 : 집에서는 접할 수 없는 곡과 소리가 좋은 음악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헨델의 '메시아'를 관속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음악을 사랑했던 부친은 힘겹지만 가게를 이어온 버팀목입니다.
[김순희/2대째 대물림 : 음악을 전하기 위해 아버님이 가게를 내신만큼 단 한사람이 오더라도 그 손님을 위해 이 가게를 계속 지켜가고 싶다.]
할아버지의 손때가 묻은 전축실은 올 여름 프랑스에서 음악을 전공한 손자가 돌아오면 3대째 불을 밝힐 것입니다.
손자세대까지 대물림을 한 뒤 가게는 백년의 전통을 이어갈지도 모릅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옹골차게 순수음악만을 고집해온 아름다운 전통은 그 희소성 때문에 더욱 값지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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