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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시헌, '태극마크 달고 싶어요'

92년 8월말.목동 야구장에선 OB 베어스기 유소년 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늦여름 더위 만큼이나 뜨거웠던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고, 결국 화곡초등학교가 연장 9회 끝내기 안타로 성동초등학교를 누르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지요.당시 화곡초등

92년 8월말.목동 야구장에선 'OB 베어스기 유소년 야구대회' 결승전이 열렸습니다. 늦여름 더위 만큼이나 뜨거웠던 승부는 연장까지 이어졌고, 결국 화곡초등학교가 연장 9회 끝내기 안타로 성동초등학교를 누르고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지요.

당시 화곡초등학교 우승의 주역은 결승전에서 9이닝을 혼자 책임진 6학년 에이스 권오준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경기를 지켜본 OB 베어스 팀관계자들의 머리 속에 더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는 2루수를 보던 꼬마였죠. 140cm도 안되는 조그만 키에 헐렁한 유니폼을 입고, 좌우로 빠지는 공을 잘도 쫓아다니던 똘망똘망한 아이. '많이 먹고 키 커서 나중에 꼭 우리 팀 와라'는 덕담을 한몸에 받은 귀염둥이였습니다.

10년 뒤 겨울, 두산 베어스 사무실에 막 대학을 졸업한 연습생 선수가 계약을 위해 들어섭니다. 낯익은 얼굴에 한참 기억을 떠올리던 프런트 사람들은 똘망똘망한 눈망울에 이내 이름을 떠올렸죠.

"시헌아! 여기 왠 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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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팬들에게, '손시헌'이라는 이름은 '안쓰러움'과 동의어일 겁니다. 입단 과정부터가 그랬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도 대학을 졸업할 때도 어느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결국 계약금도 없이 '야구 인생의 마지막 동아줄'이라는 연습생 신분으로 프로입단.조금씩 야구 선수로 꽃을 피울 때쯤, 대한민국 모든 야구선수들을 삼키려 도사리고 있는 병역 문제에발목을 잡혀 신문 사회면을 오르내림. 최고의 팀공헌도를 기록한 2005 시즌,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수비의 귀재'라는 명성에 맞지 않는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함.

"땅볼을 잡아서 2루에 송구하려 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이 뒤에서 팔을 잡아당기는 것 같더라구요.2루로 가야될 공이 1루로 가대요. 다음에 준혁이 형 홈런이 터지는데,앞이 캄캄하더라구요."

지난해 병역 문제로 가을 잔치를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던 한을 우승으로 풀려고 했지만, 손시헌에게 성공은 언제나 그렇듯 '쉽게 오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이 힘겨운 성공도 '행운'이라고, 자신은 '행운의 사나이'라고생각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운이 좋았어요. 신인 때 2군에서 타율이 1할대를 오르락내리락 했었는데, 선수층이 얇아서 계속 출전 기회를 잡았거든요. 그러다 2003년 7월에 1군에 처음 올라 갔죠. 타격은 제가 생각해도 형편없었기 때문에 잘해야 대수비로나 들어가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코치님이 라커룸에서 '긴장하지 말고 잘해' 하시더라구요. 놀라서 뛰어나가서 전광판을 봤더니 선발 라인업에 제 이름이 있는 거에요."

"그날 저쪽 선발이 문동환 선배였는데, 데뷔전에 4타수 3안타를 쳐버린 거에요. 다음날엔 4타수 2안타. 이틀 연속 소 뒷걸음하다가 뭐 잡은 거였는데, 감독님 인상엔 깊이 남으셨나봐요. 그 두 경기에서 잘못 쳤으면 지금쯤 옷 벗었을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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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지금 두산팬들에게 '다른 팀에 빼앗기기 싫은 선수' 설문조사를 한다면 손시헌은 홍성흔-김동주 같은 대스타들과 함께 상위권에 랭크될 겁니다. 준수한 타격도 타격이지만(사실 손시헌은 올시즌 8개 구단 유격수 가운데 기아 홍세완에 이어 두번째로 높은 OPS를 기록했습니다. 잠실구장과 광주구장의 파크 팩터를 감안하면, 손시헌은 올시즌 최고의 '공격형 유격수'라 부르기에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손시헌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수비이지요.

예전에 팀의 수비 효율성 'DE : Defensive Efficiency'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팀 수비의 목표는 '인 플레이된 공을 아웃으로 연결하기'이지요. DE는 바로 '인플레이된 타구 중에 얼마나 아웃으로 연결시켰나'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즉 수비시 '아웃/인플레이'의 비율이 DE입니다. DE가 높을 수록 팀 수비력이 좋은 팀이고, 낮을 수록 나쁜 팀이지요.

올시즌 두산 베어스의 DE는 0.693입니다. 1위 삼성(0.715)과 2위 SK (0.703)보다는 낮지만, 다른 팀들에 비해선 현저하게 앞서는 DE이지요. 두산의 높은 DE는, 기아가 쫓아낸 리오스가 극적으로 부활하는 데 1등 공신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를 참조)

그런데 재미있는 건, 두산의 주전 수비수들을 살펴보면 수비를 잘 하는 선수가 딱히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겁니다. 좌익수 최경환은 송구의 정확성, 중견수 전상열은 어깨, 나머지 야수들은 수비 범위에 문제가 있다는 게 야구인들의 평가이지요.

그렇다면, 두산의 좋은 팀 수비력은 손시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결론이 가능합니다. 팬들이 보는 그대로, 손시헌은 두산 팀 수비의 핵이었던 거죠.

손시헌 본인은 자신의 수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박)진만이 형이 저보다 잘 하죠. 자세에 군더더기가 없어요. 딱 필요한 동작만 간결하게 하니까 실수할 가능성도 적은 거죠. 저는 몸이 작아서 송구할 때 온몸으로 전력을 써서 던져야 하거든요."

"하지만 수비 범위는 제가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아직 후배고, 돈도 더 벌어야 하니까^^ 더 열심히 움직여야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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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손시헌의 병역 문제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내년 시즌에 뛸 수 있을 지, 뛰면 언제까지 뛸 지도 아직 미정입니다.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너무 어린 나이에 너무 무겁게 인생을 살고 있는 손시헌. 그에게 가장 아쉬운 건, 내년에 잃어버릴 지도 모를 소중한 기회입니다.

"태어나서 태극 마크를 달아본 적이 없어요. 청소년 대표건 대학 대표건... 국가대표는 말할 것도 없구요. 야구를 못했으니까. 그래서 내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정말 뛰어보고 싶어요. 병역 면제 안시켜줘도 좋아요. 태극 마크 한번 달고, '대한민국 대표 유격수' 한번 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될 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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