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지금 2주째 방학이다. 아이들 방학 때는 학원, 스포츠 센터도 모두 문을 닫는다. 그러니 집에서 심심해서 죽을 지경인 아들은 애꿎은 할머니만 괴롭히고 있다.
도대체 프랑스 학교는 왜 이렇게 방학이 많은 지. 개학한 지 2달만에 돌아온 이 방학은 "聖者의 날" 방학이다. 다시 한 달 반쯤 지나면 성탄절 방학, 2월에는 스키 방학, 4월이 되면 부활절 방학, 다시 두 달 쯤 뒤에는 여름 방학이다.추우면 춥다고 방학,더우면 덥다고 방학, 날씨가 좋으면 놀러가야 하니 방학,이런 셈이다. 이렇게 방학을 자주하니 일하는 엄마로서 보통 고민스러운 것이 아니다.
지난 주말 방바닥만 긁고 있던 아이를 데리고 파리 근교에 있는 보르비콩트(vaux-le-vicomte) 성에 갔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곳이지만 프랑스에 와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성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기도 하지만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을 지냈던 성주 푸케가 철가면을 쓰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죽어갔던 이야기 등이 무척 흥미로운 곳이다. 방학때는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있다고 해서 데려간 거다. 하지만 예약 문화에 익숙치 않은 나는 미리 신청을 못했고 결국 우리 아들은 그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가 없었다.
프로그램은 라퐁텐 우화속의 의상을 입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성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것이다. 우화 작가 라퐁텐은 보르비콩트성 주인이었던 푸케의 후원을 받은 작가다. 그래서 성에서는 해마다 라퐁텐과 관련된 행사들을 하고 있다.
거짓말장이 엄마가 되기 싫어서 아이 손을 잡고 어설프게 내가 가이드를 해야 했다.아이에게 베르사유 궁의 시초가 된 이 성의 주인이었던 푸케 백작에 대해 설명해 주고 그가 지원했던 극작가 몰리에르와 라퐁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들은 몰리에르는 모르지만 라퐁텐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는 모양이다. 정작 문제는 나였다. 라퐁텐이 어떤 우화를 썼는지 하나도 생각이나질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정공법을 쓰는 수 밖에 없다.
"준우야,라퐁텐이 어떤 이야기를 썼는지 아니?" 하고 물으니 뜻밖에도 준우는 "알아 .Le Renardet Le corbeau(여우와 까마귀)야."하고 대답한다. 학교에서 배운적이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스토리는 생각이 나질 않는단다. 나도 생각이나질 않아서 집에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와 준우에게 슬쩍 물어봤다."준우야, 여우와 까마귀 이야기 찾아봐야지."그러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준우가 방으로 달려가 서울에서 가져온 라퐁텐 우화집을 들고 온다. 책은 파리로 올 때 이삿짐에 넣어 온 것 같은데 아직도 새 책 그대로다. 라퐁텐 이야기를 듣고 직접 가 봤기 때문일까? 1년이 지나도록 책장하나 넘기지 않았던 책을 단숨에 읽어 내려간다. 방학 때 체험에 대한 글짓기 숙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프랑스의 방학 때는 이렇게 각종 유적지와 박물관 등지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또 시청, 구청에서 마련하는 각종 캠프는 거의 무료에 가깝다.결국 프랑스의 방학은 보통 때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가정과 사회가 나눠서 가르치는 또다른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우와 까마귀>는 이솝 우화였다. 우화 작가라고는 이솝 밖에 몰랐던 준우가 착각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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