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2장. 테세라 모자이크의 세계
2.이탈리아
1,2,3)로마(Rome) 1,2,3
4,5,6,7)바티칸(Vatican)
8,9,10,11)오스티아(Ostia)1,2,3,4
12)폼페이(Pompeii)
13,14)에르콜라노(Ercolano)1,2
15,16,17,18, 19, 20,21,22, 23,24,25)나폴리(Napoli)1,2,3,4,5,6,7,8,9,10,11
26,27, 28,29)팔레르모(Palermo) 1, 2, 3, 4--오늘 이야기
30,31,32,33,34,35,36,37,38,39)피아짜 아르메리나(Piazza Armerina)
--오늘 이야기
34)피아짜 아르메리나 (Piazza Armerina) 5
◆5. 침실 1
드레싱룸 뒤에 붙어 있다. 로마 건국의 시조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 뒤 배우자를 구하기 위해 근처 사비니 부족의 여성들을 강탈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6쌍이 춤을 추고 3명의 여성이 추가로 등장한다. 큰 숄을 허공에 날리며 우아하게 춤추는 모습에 사비니 여성의 아름다움이 물씬 배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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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 여성 강탈--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뒤 부족의 결혼을 위해 이웃 사비니 부족의 여성들을 강탈해 온다. 아랫부분이 많이 훼손됐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당시 정황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아프로디테가 이다산 양치기 안키세스를 사랑해 얻은 결실 아에네아스. 조국 트로이가 멸망하면서 아에네아스는 아들 아스카니오스와 함께 이탈리아 반도 라티움으로 들어온다. 아스카니오스의 후손 가운데 레아(일리아) 실비아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미모를 탐한 전쟁의 신 아레스(마르스)는 어느 날 숲속에 물을 뜨러 갔던 레아를 슬그머니 범한다. 여기서 쌍둥이가 태어나는데. 로물루스(Romulus)와 레무스(Remus). 로마란 이름의 기원이 되는 로물루스는 형이었다. 로물루스가 아우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를 세운 날은 B.C 753년 4월 21일. 장소는? 로마의 팔라티노(Palatino)언덕이다. 로마를 방문하면 로마 포럼(포룸 로마눔) 남쪽으로, 또, 키르쿠스 막시무스 전차경기장 동쪽으로 솟은 언덕 팔라티노를 만난다. 제국시대 거대한 유적잔해들이 웅장한 모습으로 서있어, B.C 8c경 로물루스가 한가로이 밭갈던 모습을 찾을 수는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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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 여성--당시 복식을 연구하기 좋은 장면이다. 숄을 흩날리며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나라라고 세웠지만, 문제가 있었다. 여자들이 없었던 것이다. 결혼을 해야 하는데... 사비니 부족을 초대한 뒤 슬그머니 여자들만 가로챈 사기극을 벌이는데... 로물루스는 포세이돈 축제 때 사비니 부족을 초청하고, 경주를 벌이는 척 하면서 뒤로 여자들을 납치했다. 빼앗긴 딸들을 찾으려는 사비니 족과 빼앗아 온 아내를 지키려는 로물루스 측의 싸움은 딸이자 아내들의 현명한 중재로 좋게 해결됐다. 결혼동맹이 맺어진 것. 로마는 사비니 부족, 근처 에트루리아족 일부를 합쳐 3개 부족으로 새로운 나라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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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니 여성 얼굴--빼어난 미모를 자랑한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6. 침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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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기잡이 전경--바닷가 호화빌라를 배경으로 에로스 혹은 날개 달린 바다의 소년(폰토스)들이 고기를 잡는다. 위로 두척, 아래로 두척. 합해서 4척의 배로 고기를 잡고 있다. 맨 위에 빌라, 다음 2척, 그다음 2척으로 화면을 분할하는 방법은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양식이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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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와 고기잡이 배--빌라와 첫줄 고기잡이 배만 나와 있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회랑을 끼고 북쪽으로 붙은 방은 모두 침실인데, 그중 고기잡는 소년들의 방 모자이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고기잡이는 북아프리카 모자이크에서 널리 사용하는 주제다. 다시 말해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고기잡는 소년은 바다의 소년(폰토스, Pontos) 혹은 에로스로 보인다. 로마시대 생선은 아주 비싼 음식재료였다. 특수 용기에 넣고 산채로 운반해 팔았기 때문이다. 요즘 횟감을 수조에 싣고 다니며 활어로 파는 것과 마찬가지다. 요즘이야 기술이 발달해 그렇다 쳐도, 로마시대에는 여간 돈드는 작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생선요리는 부와 사회적 지위를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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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 고기잡이 배--노를 젓고 그물을 끌어올린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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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담기--망태에 잡아온 고기를 풀어 정리하는 중이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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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날개없는 소년이 낚시로 잡은 고기를 건네고 있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로마 시대 침실 쿠비쿨룸(Cubiculum)은 요즘 개념으로 집의 전체적인 규모로 볼 때 비교적 작은 편에 속했다. 이유는 첫째 실용적인 난방. 지중해 연안 로마제국에서 겨울에 춥지는 않지만 난방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침실이 클 경우 난방효율이 떨어진다. 그래서 침실을 작게 만들었다. 두번째 로마인의 생활양식이다. 로마시민이라면 남자들은 아침에 집에서 나가 저녁에만 들어왔다. 오전에 공적인 일을 보고 오후엔 목욕탕이나 극장, 경기장등에서 여가를 즐겼다. 집에 있는 시간에는 거실에서 주로 보내고 침실은 잠잘 때만 썼다. 작을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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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올리는 소년.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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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물 줄을 함께 잡아주는 소년.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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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타는 소년.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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