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한민족의 운명을 고난과 역경이 점철된 역사였다고 말하지만지구상에는 우리보다 훨씬 불행한 역사를 안고 사는 민족이 적지 않다.
슬픈 마야의 후예들이라는 김수현 기자의 블로그글 처럼 과테말라 원주민들의 삶이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싶다.산사태 취재에 겸해 마야 문명의 발상지를 직접 밟아 본다는 과테말라 출장의 은밀한 기대가 씁쓸한 입맛으로 마감될 수밖에 없었던 것도이 때문이었다.
마야라는 발음이 주는 신비감 넘치는이미지는 이제 과테말라에는 없었다.
옛 문명의 잔해가 일부 남았고 그 문명의 피를 이어받은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지만 과테말라는 이미 무심한 자연과 잔인한 신문명에 치이고 짓눌린 상처가 너무 깊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화산 폭발과 지진으로 수도를 세번이나 잃어야 했던 것은 차라리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하자.
땅과 자원에 굶주린에스파니아 제국주의가 민족을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린 역사를 들여다 보면 일제 36년을 말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일본 제국주의가 아무리 한반도를 유린했다고 해도 어쨌든 우리는살아 남아남부럽지 않은 현대사를 재건했다. 마야의후예들은모든 것을 잃어 버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마야인의 원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과테말라 시티의 빈민가나 해발 3천미터를 오르내리는 산간 벽지의 원주민촌에서나만날 수 있을 뿐이다.
마야 문명의 발상지를 제외하고는 나라 전체에서 내세울 수 있는 역사 관광거리라고 해봐야 화산 폭발로 땅에 묻혔다발굴된에스파니아 지배 시절의 수도 안티구아 뿐이라는 게제국주의의 독성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
멸족을 피하려는 마야인들은 깊은 산골에 숨어 근대 문명의 혜택을 포기한 채 그들만의삶을 꾸려나갔지만 신은 그런 고단한 운명마저 허락하지 않고 지진과 화산폭발, 그리고내전을 통해 끊임없는 불행을 강요했다.
일곱시간의 곡예같은 운전 끝에 도착한 파나바 마을도 그런 경우였다.
허리케인이 불러온 산사태로마을 전체가 땅속에 묻혀 버려 구조나 시신발굴은 엄두도 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오죽하면부통령이란 사람이 "마을 전체를 그대로 공동묘지화 하는 문제를 검토하겠다"는, 동네 사람 들으면 울화가 치밀 발언까지 해야 했을까.
길을 지나다 마주치면 남자든 여자든엷게 웃으며 길을 비켜주는데 나도 눈웃음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맑다'.
우리로 따지면 북한산 입구 쯤 되는 길목에서 토르티아를 구어 파는 아가씨에게 돼지고기와 쇠고기 가운데 어느 것으로 만든 토르티아가 맛있냐고 묻자 역시 수줍은 미소만큼이나 수줍은 대답이 돌아온다."잘 모르겠어요."
값비싼 SUV 차량에 고급 방송 장비를 잔뜩 싣고 나타나 주머니에서 토르티아 한개 값의 백배는 될 법한 돈뭉치를 꺼내 밥값을셈하는 우리 역시 그들이 보기에는화려한 유럽식 제복을 입고 이 땅을 처음 밟은에스파니아 탐험대와 다름 없을지 모른다.
그때도 처음에는 이렇게 순진한 미소를 지으며 맞았겠지.
원시적인 것들은뭐든지 아름답고 고귀해 보이는 착각현상을 지칭하는용어다.
나도 그런 오류에 빠진 건지는 몰라도 마야의 후예들이 던져준 미소가가슴을 저리게 만드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다.
그 천진한 미소 속에 대를 이어 재해와 핍박과 가난을 참고 받아들여야 하는 체념의 유전자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파나바 마을에 들어갔을 때 (차라리 마을이 있던 흔적이라고 하는게 옳겠지) 마치 가축우리처럼 나뭇가지를 엉성하게 이어 만든 집에서 잠자다 산사태로 남편과 아이 셋을 잃은 아줌마를 만났다.며칠 밤낮을 통곡하며 시신을 찾아 다녀도 모자란데 표정이 그렇게 덤덤할 수가 없다.
인터뷰 하자고 카메라를 들이대니 마치남 얘기 하듯 당시상황을 차분히 설명해준다.
이건 차라리 무기력이다.
그런 원주민들을 두고 "좀더 참담하고실감나는 인터뷰 없을까?"라고 묻는 서울의 전화를 받고 나니 손에 든 마이크가 자꾸 옛에스파니아 군대의 총 같아 보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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