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페블 모자이크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오늘 이야기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기법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North-African Mosaic)
◆1. 북아프리카 모자이크의 등장
오늘날 튀니지를 중심으로 하는 북아프리카 지중해안의 심장부에는 카르타고가 멸망한 뒤 암흑기를 거쳐 로마 문명이 꽃피면서 새로운 모자이크 시대가 열렸다. 로마 제국 본토 특유의 흑백 모자이크와는 일정거리를 두고, 헬레니즘권의 화려한 테세라 모자이크를 발전시켰다. 이는 북아프리카의 특성, 즉 다양한 색상의 원석들을 구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렇다고, 원석들을 쉽게 구한다는 자연적인 이유만 거론하면 허전하다. 컬러 모자이크가 화려하게 꽃필 수 있었던 진짜 숨은 이유는 무엇일까?
북아프리카 지중해안의 꽃 카르타고(튀니지). 이곳은 B.C 9c 이후 카르타고 문명(그리스인들은 B.C 6c 이후 오늘날 리비아 동부지역인 키레나이카를 중심으로 정착)의 중심지였다. 주변 여건이 좋았다. 연중 온화한 기후, 비옥한 토양, 지중해 각지로 연결되는 항로의 중심... 비록 B.C 146년 로마에 초토화돼 잿더미로 변했지만, B.C 1c 말 옥타비아누스 황제시절 재건돼 제모습을 되찾았다. 재건된 카르타고는 나일강 삼각주의 알렉산드리아(이집트)에서 키레나이카(리비아 동부), 트리폴리타니아(리비아 서부), 누미디아(알제리), 마우레타니아(모로코)로 연결되는 북아프리카 해안의 중심지로 번영을 이어갔다. 로마, 안타키아,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제국의 중추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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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의 장원과 사냥준비. 거대한 빌라를 배경으로 집주인이 사냥을 준비하는 장면이다. 지방 귀족의 사냥은 주요한 일상사로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소재의 특징이다. 북아프리카는 로마제국시절 뛰어난 기후조건, 비옥한 토양, 뱃길에서 유리한 지리적 이점을 활용해 크게 번영했다. 번영의 결과로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헬레니즘풍의 테세라 모자이크를 발전시킬수 있었다.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
북아프리카가 더욱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된 축복이 이어졌다. 193년 트리폴리타니아 지방 렙티스마그나 출신의 ?W티무스 세베루스가 황제에 오른 것이다. 고향발전에 앞장서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요즘도 변함없는데... 3c 말 이후 유럽에 있는 로마제국 영토가 게르만족의 침입에 휘둘린 것과 달리 북아프리카는 이들의 침략 발길에서 한발 비켜 있어 상대적인 안정 속에 번영을 누렸다. 이런 경제적인 부흥의 배경아래 잘사는 상류사회의 화려한 저택과 공중 목욕탕등의 공공시설에 헬레니즘의 전통을 이은 테세라 모자이크가 어김없이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5c 이베리아 반도를 돌아 침략해온 게르만의 일파 반달족이 북아프리카를 싹쓸이하면서 모든 영광이 사막아래 묻혔지만...
◆2. 특징(Characteristic) 1. 화면 분할
북아프리카 모자이크는 컬러 테세라 방식에서 헬레니즘 전통을 따랐지만, 표현소재와 기법에서는 지역적인 특성을 가미했다. 우선 기법적으로 헬레니즘 전통과 2가지에서 차이를 보인다. 첫째, 화면을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서 2-3칸으로 나눈 점이다. 한 화면에 한 장면을 넣는게 아니다. 화면을 2칸이나 3칸으로 갈라 각 칸에 다른 소재를 넣는 방식을 취했다. 같은 소재라도 내용을 달리해 좀더 다양한 장면을 담아냈다. 둘째, 흰색을 바탕 배경으로 삼고, 그 위에 각종 대상물을 컬러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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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행렬. 3칸으로 나뉜 전형적인 북아프리카 모자이크다. 맨위에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를 표현하고, 가운데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의 행렬, 맨아래 바다의 요정인 네레이드들의 모습을 담았다.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
◆3. 특징(Characteristic) 2. 표현소재--자연과 일상사
표현 소재도 독특했다. 헬레니즘 세계에서는 그리스 신화를 주요 소재로 다뤘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모자이크는 식물이나 꽃같은 자연을 주로 묘사했다. 포도덩굴과 아칸투스, 월계수는 대표적인데, 이들을 기하학적 무늬로 배치하는 방법이 널리 인기를 모았다. 식물로 계절을 나타낼 때 올리브는 겨울, 장미는 봄, 옥수수는 여름, 포도는 가을식이었다. 이런 식물 취향의 모자이크 기법은 특히 누미디아 지방(알제리) 팀가드의 모자이크 학교를 중심으로 널리 퍼졌다. 1년 12달을 인물로 상징화해 표현하는 기법도 선보였다. 그리스 신가운데서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주로 등장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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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의 주택과 농경 준비. 농경같은 장원에서의 일상사도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소재의 한 특징을 이룬다. 바르도 박물관. ⓒ김문환 |
2c를 넘으면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난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주요 소재로 떠올랐다. 시골에 장원을 소유한 부유층의 생활상 즉, 연회, 농경, 가정사를 담았다. 요즘으로 치면 이는 사진이나 사진첩이다. 각종 기념사진 찍어 걸어놓듯이 집주인의 일상사를 모자이크로 만들어 바닦에 설치했다.
오락과 레저도 빼놓을 수 없다. 우선 검투경기가 그랬다. 검투경기야 말로 헬레니즘권에서는 볼 수 없던 로마 고유의 문화적 창조물로 북아프리카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프로야구나 축구 장면 사진을 걸어두는 요즘 사회상을 생각하면 검투경기를 모자이크로 만들어 놓고 보는 풍습을 이해하기 쉽다. 그리스시절부터 로마시대까지 대중을 열광시켜온 전차경주도 마찬가지다. 전차경기장인 키르쿠스의 전경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박진감있는 전차경주 모습을 마치 공중에서 내려다본 조감도처럼 묘사한 작품들이 돋보인다. 사냥도 3c 북아프리카에서 나타난 모자이크 소재다. 사냥은 처음 산토끼나 사슴, 멧돼지같은 지배계층의 취미생활 차원에서 펼쳐지는 내용을 소재로 다뤘다. 그러다 차츰 원형경기장에서 희생될 타조나, 사자, 곰같은 이국적인 짐승들을 잡아들이는 상업적인 사냥으로 확대돼 모자이크에 그대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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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차 경기장. 로마 세계 최대의 인기 흥행공연. 전차경기장면이다.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아 시칠리아에서 만들어진 모자이크다. 피아짜 아르메리나.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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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조 사냥. 1976년 요르단의 네보산 교회 유적에서 발굴된 디아코니콘(Diaconicon)작품의 한장면이다. 흑인이 타조를 잡아 끌고 가는 장면이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당시 타조나 호랑이, 사자, 표범같은 야생짐승을 잡아 원형경기장 검투경기용으로 파는 사업이 크게 번창했다. 이런 소재가 북아프리카 모자이크에 이용됐다. 요르단은 북아프리카가 아니지만, 북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아 이런 소재가 모자이크에 사용됐다. 네보산. ⓒ김문환 |
◆4. 북아프리카 스타일의 전파
북아프리카의 독창성을 지닌 모자이크는 로마제국내 타지역으로도 퍼져 나갔다. 일명 북아프리카 스타일의 유럽 전파다. 카르타고에서 뱃길로 이틀이면 닿는 시칠리아에서 이를 먼저 받아들인 것은 당연한 결과. 시칠리아의 피아짜 아르메리나 빌라에 남아있는 거대한 모자이크는 북아프리카 기법을 채용한 모자이크의 전형으로 꼽힌다. 지브롤터 해협 건너 이베리아 반도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이탈리아 반도와 동방의 안타키아 모자이크에서도 흰색 바탕에 이국적인 동물을 사냥하는 북아프리카 스타일이 나타난다. 북아프리카 모자이크가 로마 제국내 지중해 연안 전역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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