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 문명기 5권--
모자이크로 읽는 그리스 로마 문명
(Art of Mosaic and Greco-Roman Civilization)
--고대의 삶과 사랑--
1장. 모자이크의 역사
1. 콘 모자이크
2. 페블 모자이크--오늘 이야기
3. 오푸스 시그니눔
4. 오푸스 테셀라툼
5. 오푸스 섹틸레
6. 오푸스 무세움
7. 흑백 모자이크
8. 북아프리카 모자이크
9. 기독교 모자이크
10. 모자이크 기법
2. 페블 모자이크(Pebble Mosaic)
◆1. 페블 모자이크 (자갈 모자이크, Pebble Mosaic).
콘 모자이크가 선을 보인지 천 5백여년을 흘러 그리스에서 페블 모자이크(자갈 모자이크, Pebble Mosaic)가 나타난다. 자갈 모자이크는 기본적으로 흑(黑)색과 백(白)색의 자갈을 깔아 바닥 포장으로 활용했다. 그러다, 유채색 자갈을 섞어 원하는 무늬를 만들어 내면서 예술로 발전한다. B.C 348년 마케도니아의 침공으로 멸망한 에게해 북단의 그리스 도시국가 올린투스(Olynthus). 유적지 저택 구석구석을 자갈 모자이크가 뒤덮는다. 장식미를 더하기 위해 표현된 내용에는 다양한 그리스 신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벨레로폰이 불사(不死)의 말 페가수스를 타고 키메라를 죽이는 장면. 날개 단 디오니소스가 표범 마차를 타고 가는 장면. 요정 테티스가 여동생과 함께 아들 아킬레스에게 트로이 전쟁에 나가 싸울 전투장비를 건네주는 장면등이 묘사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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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무늬 자갈 모자이크. 포장이 주목적이었던 모자이크여서 굵직한 자갈로 만들어 투박해 보인다. 펠라는 마케도니아 왕국의 수도였다. 펠라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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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슴사냥 자갈 모자이크. 펠라 유적지 바닥에 원형대로 남아있다. 헬레네 납치의 집(House of the Abductionof Helen, 파리스의 납치가 아니라 아테네 테세우스가 어린 헬레네를 납치하는 장면이 묘사된 집)에 있는 작품이다. 제작연대는 B.C 325-320년 사이로 추정된다. 섬세한 채색돌을 사용해 완성도가 높다. 도끼와 칼로 사슴을 내리치고 개까지 달려들어 물어뜯는 장면에 소름이 돋는다. 펠라. ⓒ김문환 |
자갈 모자이크의 면모를 좀 더 손쉽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곳은 그리스 북부의 중심지 테살로니케 근처에 있는 마케도니아의 수도 펠라(Pella). B.C 6c 이후 마케도니아 지방의 중심도시로 성장한 펠라는 20c 들어 조직적인 발굴을 벌인 결과 아주 번성했던 도시였음이 밝혀졌다. 유적지에 비교적 큰 규모로 남아있는 B.C 4c 작품은 자갈 모자이크의 진수로 손색없다. 표범을 탄 디오니소스, 사자 사냥이 사실적인 정경처럼 그려진다. 그리스군과 아마존간에 벌어진 전쟁, 스파르타에서 12살 짜리 헬레네를 납치하는 테세우스의 모습도 담았다. 펠라 박물관에도 디오니소스의 집(House of Dyonysos)에서 출토한 디오니소스의 사자사냥 자갈 모자이크를 전시중이다. 펠라의 자갈 모자이크는 올린투스 것보다 색도 다양하고, 실물크기의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자갈을 좀더 잘게 갈아 사용한 결과다. 이런 자갈 모자이크는 당시 그리스 문명권 최대강국으로 떠오른 마케도니아의 위세에 힘입어 알렉산더가 원정한 오리엔트 전역으로 퍼졌다.
◆2. 헬레니즘권 자갈 모자이크
자갈 모자이크가 어디까지 전파됐는가를 알려주는 흥미로운 사례가 눈길을 끈다. 강대국 소련과 미국의 포탄 아래 큰 피해를 입은 아프가니스탄이라면 약간은 놀랄 일이다. 사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중앙 아시아 지역은 오늘날 그리스와 너무 멀리 떨어져 전혀 다른 세계 같이 느껴지지만, 알렉산더가 원정하고 그 후예들이 현지 정착하면서 헬레니즘 문명을 꽃피우던 곳이다. 헬레니즘 문명의 영향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를 꼽으라면 부처를 그리스의 신처럼 조각으로 표현한 간다라 미술이 떠오른다. 이 지역에서 태어난 예술 장르다.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한 조각 작품도 다수 발견된다. 여기에 자갈 모자이크도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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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라(Scylla) 자갈 모자이크. 키프러스 파포스 모자이크 유적지 디오니소스의 집에 있다. 이 모자이크에서 스킬라는 젖가슴 불룩한 여인상체, 허리에 붙은 개 3마리, 용꼬리를 갖고 있다. 또,방금 삼킨듯한 배의 돛대를 들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 나오는 바다 괴물 스킬라는 지나는 배와 선원들을 집어 삼키는 공포의 존재지만, 원래 괴물이 아닌 아리따운 여인이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암피트리테 사이에서 태어난 바다괴물 글라우쿠스(Glaucus)가 스킬라를 사랑한 나머지 바다의 요정 키르케에게 다리를 서달라고 부탁했다. 여인네 질투를 몰라보고... 스킬라에게 질투를 느낀 키르케는 오작교를 놓기는 커녕 마법의 약을 써 스킬라를 괴물로 만들어 버렸다. 파포스.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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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돌고래 자갈 모자이크. 앙증맞은 모습의 돌고래 2마리다. 스킬라와 함께 가로 1.3m, 세로 1.2m의 같은 공간속에 그려져 있다. 1977년 발굴됐다. 헬레니즘 시대인 B.C 4c말 작품으로 추정된다. 지중해와 에게해라는 바다가 있어 모자이크에 돌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파포스. ⓒ김문환 |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의 국경을 이루는 아무다리아 강변의 아프가니스탄 땅 아이하눔. 지금은 80 고령으로 미국이 탈레반을 몰아낸 뒤 형식적인 국왕으로 복귀한 쟈히르 샤가 아프가니스탄 왕국의 실권 국왕으로 있던 1961년. 아이하눔 근처로 사슴사냥을 나갔다. 당시 아이하눔은 강변 모래사장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우연히 그리스 시대 기둥조각이 눈에 띄었다. 이를 단초로 1964년부터 프랑스의 뽈 베르나르 박사팀이 발굴을 시작했다. 기록에는 알렉산더 원정시 중앙아시아와 중동지역에 알렉산더의 이름을 딴 수십개의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한 것으로 돼 있다. 지금은 모두 폐허로 변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를 제외하고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하눔도 혹시 그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굴은 학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었다.
발굴결과는 놀라웠다. 알렉산더 사후 B.C 3c 초 중앙아시아에 성립했던 그리스계 박트리아 왕국의 수도로 추정되는 대규모 유적지로 밝혀졌다. 도시의 윤곽은 동서 1.5km, 남북 1.5km. 이를 12m 높이의 성벽이 둘러쌌다. 6천여명의 주민이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됐다. 여기서 찾아낸 숱한 유물 가운데 자갈 모자이크가 우리의 관심사다. 필자는 2004년 KBS가 제작한 [유라시아 로드]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눈이 번쩍 뜨이는 경험을 했다. KBS 화면에서 뽈 베르나르 박사팀이 채증한 사진자료가 흐르는데, 여기에 자갈 모자이크가 나오는 게 아닌가! 펠라등에서 보던 자갈 모자이크와 동일한 기법이었다. 알렉산더가 정복한 지역의 그리스계 도시들에서 본국의 자갈 모자이크 이식되고, 널리 활용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러나, 계속해서 전파를 타고 흐른 내용은 주위를 안타깝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아이하눔 유적발굴이 14년여 진행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중단된 것인데,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고. 이후 종파간 그리고, 민족간 지긋지긋한 내전에 이어 2001년 미국의 공격까지 겹친 것. 수십년 전쟁판에 유적지가 완전히 폐허로 변해 버렸다. 이럴수가! 카불 박물관에 보관중이던 관련 유물도 혼란중에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소중한 인류문화유산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KBS 취재팀이 현장을 찾았을 때 확보할 수 있는 화면은 황량한 모래벌판과 강물, 박물관의 텅 빈 전시관 뿐이었다. 우리의 주제인 자갈 모자이크도 발굴팀의 빛바랜 사진첩에서나 접할 수 밖에 없으니...
◆3. 지금도 이어지는 자갈 모자이크
자갈 모자이크는 고대사회 유물만이 아니다. 지금도 에게해 섬들에 가면 자갈을 활용한 바닥 모자이크를 어렵지 않게 목격한다. 물론, 유물이나 유적이란 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사용하던 시설이나 물건이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까지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으면 그게 유물이요, 유적이 된다. 자갈 모자이크란 것도 따지고 보면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일상에서 쓰던 것이다. 오랜 시간 폐허 속에 묻혀 있다 발굴돼 희소가치를 인정받고, 존귀한 유물 대접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로도스섬의 린도스라는 고대 그리스 로마 도시.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양아들이자 로마 2대 황제인 티베리우스가 잠시 정계에서 은퇴해 살던 곳으로 아크로폴리스에서 바라보는 에게해 푸른 물결이 일품인 곳이다. 바다를 굽어보는 린도스 유적지 아래 관광마을에는 자갈 모자이크가 2천 5백여년을 이어 내려온다. 주택 현관 앞에 깔아놓고 누구나 밟고 다닌다. 이것도 다시 2천 5백여년 지나면 유물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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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 자갈모자이크. 터키 남부에 있는 헬레니즘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이자 로마와 동로마를 거치면서 가장 중요한 동방의 도시였던 안타키아(안티오크) 모자이크 박물관에 남아있는 자갈모자이크다. 안타키아.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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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자갈 모자이크. 헬레니즘 시대 모자이크의 중심지이던 로도스섬의 고대도시 린도스에는 요즘도 주택 입구등을 자갈 모자이크로 장식한다. 린도스. ⓒ김문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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