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2. 아에네아스, 트로이 탈출 3. 카르타고와 디도--오늘 이야기 4. 아스카니우스 5. 로물루스와 레무스, 로마건국 6. 부르투스와 공화정 7. 옥타비아누스와 황제정 3. 카르타고와 디도
◆1. 비련의 주인공 디도와 아에네아스
베르길리우스의 신화관을 잠시 들여다 보자. 그는 최고의 여신 헤라가 트로이를 미워한다고 설정한다. 이유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최고 미인 선발대회에서 그녀를 제쳐 두고 아프로디테를 가장 아름다운 여신으로 선정한 일. 그리고, 남편 제우스가 트로이 출신 미남자 가니메데스에게 빠진 것을 질투한 일. 이런 저런 이유로 헤라가 트로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고 베르길리우스는 [아에네이드]에 적는다. 그러면서, 그녀가 지구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로 카르타고를 꼽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트로이를 미워하는 여신이라면 그 후예인 로마를 미워하는 것도 당연한 일. 따라서, 헤라가 로마와 불구대천의 원수관계에 있던 카르타고를 아끼는 나라로 설정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는 로마가 카르타고를 무너트린 역사를 정당화하는 구실로 이어진다.
디도(Dido)라는 인물이 궁금해 진다. 오늘날 레바논 지역의 티레, 시돈, 비블로스등을 중심으로 발달했던 페니키아 출신의 여왕. 카르타고를 세운 창건자라고 흔히 알려져 있다. 좀더 알아보려면 [아에네이드]가 유용한 참고서다. [아에네이드]에는 아프로디테가 방랑중인 아들 아에네아스에게 카르타고 여왕 디도에 대해 들려주는 대목이 나온다. 아프로디테 왈(曰) "아들아! 티레의 여자들은 글쎄 활을 메고, 자주빛 나는 사냥 장화를 신고 산을 누빈단다. 네가 지금 도착한 곳은 카르타고라는 땅이야. 티레 출신 사람들이 만들었지. 디도라는 여자가 이곳을 지배하는데 말야. 그녀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글쎄, 별로 상서롭지 못한 얘기지만 들려주마. 원래 그녀 남편은 삼촌인 시카이우스였단다. 아버지 무토가 죽으면서 왕국을 그녀와 남동생 피그말리온에게 나눠 줬지. 그런데, 피그말리온이 왕국을 통째로 차지할 욕심에 누나 디도의 남편인 삼촌 시카이우스를 제단에서 몰래 죽였어. 불쌍한 디도는 사랑하는 남편 시카이우스가 왜 죽었는지 몰랐지. 그러던 어느 날, 디도의 꿈속에 남편의 유령이 피투성이가 된 채 나타난 거야. 그래서 진실을 알게 된 디도는 두려웠지. 남동생을 피하고 싶었어. 남편이 알려 준 곳에 묻힌 보화를 찾아 싣고, 티레를 떠나 이곳에 온 이유란다. 동조자들을 규합해서 말이야."
이렇게 고국을 등지고 신천지 카르타고를 건설한 디도. 그녀 앞에 아에네아스가 구름처럼 홀연히 트로이 사람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디도는 트로이 사람들을 환대했다. 환영연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 아에네아스는 트로이 전쟁, 그리고 자신이 트로이를 탈출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말해줬다. 점차 아에네아스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 디도. 여기에는 사랑의 화살을 날리고 다니는 에로스의 역할도 컸다. 에로스와 아에네아스는 동복(同腹)형제. 에로스는 디도를 부추겨 전남편 시카이우스를 잊고, 새남자 아에아네스를 사랑하도록 꼬드겼다. 마침내 사냥 대회 날. 비를 피해 동굴에 들었던 둘은 운명적으로 하나가 되고... 디도는 아에네아스에게 "나의 왕국은 젊고, 넓으며 할 일이 많다. 당신들과 우리 사이에 어떤 차별도 없을 것"이라면서 함께 살 것을 권한다. 한때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면서 해외로 돌다 수십조원의 돈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재벌 기업인의 귀국 문제가 요즘 세간의 화제인데... 카르타고에 할 일이 많았는지 몰라도, 아에네아스가 할 일은 다른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라티움. 그것이 비극의 출발점이었다. 너무나 쓰라린 상처를 안겨 줄 사랑인 줄도 모르고, 디도는 아에네아스에게 푹 빠졌다. 디도는 아에네아스를 향한 사랑의 정열로 불타 올랐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뜨거워져 도무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었다. [아에네이드]의 한 구절. "한동안 여왕은 사랑의 열병을 앓았다. 그녀의 영혼을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아에네아스의 모습이며 말투 모든 것이 그녀의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아에네이드]에는 디도가 여동생 안나에게 아에네아스를 향한 미치도록 뜨거운 열정을, 사랑의 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아름다운 디도에게는 청혼자가 많았다. 특히 이웃 나라 왕 이아르바스나 여러 주변국의 왕들이 디도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물론 모두 헛일이었다. 절대 흔들릴 것 같지 않던 디도가 아에네아스에게 깊이 빠질 줄이야... 아에네아스는 디도와 한집에 살면서 실제적인 남편 행세를 했다. 아에네아스가 카르타고의 왕이 된 것처럼 비쳐졌다.
그러나, 둘이 행복하게 살기엔 반대세력이 많았다. 질투심에 불타오른 이아르바스가 제단에 갖은 제물 차려 놓고 울면서 제우스에게 억울함을 호소했다. "전지 전능하신 제우스여! 티레에서 온 디도에게 제 왕국 옆 땅을 떼 주고 나라를 세울 것을 허락했습니다. 그녀를 사랑하고 위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고마움도 잊고, 나의 결혼 요청을 물리쳤습니다. 거기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일인가요! 디도가 트로이의 바람둥이를 남편으로 들였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억울하옵니다. 제가 전능하신 제우스를 열심히 섬기는 동안 이런 비극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에게 벌을 주세요. 통촉해 주십시오." 아! 치졸한 남자. 사랑의 배신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못먹는 감 찔러나 보려는 이아르바스의 이기적인 호소가 제우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제우스는 아에네아스가 카르타고에 머물며 디도와 사랑을 나누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로 했다. 그를 라티움으로 보낸다는 결정을 재확인했다. 아에네아스는 카르타고를 떠나야 했다. 디도가 울며불며 매달렸지만, 아에네아스는 단호하게 그녀를 뿌리쳤다. 그리고, 떠났다. 아! 사랑이란 무엇인가! 신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는 것인가? 신과 인간, 신의 명령과 인간의 사랑 가운데 나약한 인간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그리스 시대 이후로 지금까지도 신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바른 삶의 자세라는 인식이 서양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보다 신이 우선인 가치관. 종교를 내세운 살인 전쟁은 그래서 가능하다. 부시의 이라크 전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이교도 이슬람을 척결하는 전쟁.
아에네아스를 잃은 디도는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 사랑하는 이가 없는 가운데 인생이란 것이 과연 자기 홀로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가? 몸부림치며 울다 괴로워 하는 것도 하루 이틀. 디도는 점점 혼자만의 삶은 죽음과 다를 바 없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적이 있다면, 사랑에 배신당한 경험이 있다면 디도가 겪었을 아픔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죽음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해도... 물론 인생을 포기하는 이도 있지만... [아에네이드]에는 디도가 칼을 세워 놓고 그 위에 쓰러져 죽는 것을 시녀들이 목격했다고 적는다.
[아에네이드]에는 디도와 아에네아스가 한번 더 만나는 것으로 그려진다. 아에네아스가 저승에 들러 아버지 안키세스의 영혼을 만날 때 디도의 영혼도 덤으로 만났다. 사실, 아에네아스는 디도의 애절한 간청을 물리치고 떠나기만 했을 뿐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버림받고 죽은 비극적인 자살소식은 잘 모르고 있었다. 명부(冥府)에서 디도의 영혼을 만나고 나서야 죽음의 내막을 알게 됐다. 아에네아스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때까지도 죽음의 피를 흘리며 괴로워 하는 디도의 영혼에게 아에네아스 왈(曰) "불쌍한 디도여! 그게 사실이란 말이오? 스스로 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는 게? 아! 내가 당신을 죽인 것이로구만. 맹세컨대 나는 당신을 그런 불행에 빠트리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오. 신들이 나에게 정해준 운명의 땅으로 가기 위한 행동이었을 뿐 당신에게 상처를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용서하시오. 볼 낯이 없구려."
사실 사랑의 상처를 주고 떠나는 사람이야 무슨 변명인들 못하랴. 상처 받은 사람의 아픔을 잘 이해 하지도 못한다. 그렇게 사랑했다면 떠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각자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할 뿐 서로의 마음을 영원히 알 수 없을지 모른다. 아에네아스가 말을 이었다. "아! 가지 말아요. 디도! 조금 더 당신을 볼 수 있게 해줘요. 나를 피하지 마시오." 그러나, 디도는 억울하게 죽은 전 남편 시카이우스의 영혼 곁으로 가버렸다. 디도의 처참한 심정을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디도는 죽은 남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에네아스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저승에서 빠져나오기 전 아주 한참 동안 디도를 생각하며 울어 준 것.
◆2. 페니키아의 후예 카르타고
사실, 카르타고와 아에네아스의 사랑 얘기는 베르길리우스가 지어낸 신화여서 역사적인 사실 관계를 따지는 것은 무리다. 시간적으로 성립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트로이 전쟁시기는 대략 B.C 13c. 그렇다면 아에네아스가 살았다는 시기도 그 무렵이다. 그러나, 티레에서 출발한 페니키아인들이 카르타고를 세웠다는 시점은 B.C 9c 초. 아에네아스가 수백년 방랑했을 수는 없는 일. 아무리 신화요 전설이라지만 아에네아스와 디도의 사랑은 마치 고려말 태어난 왕자가 조선말에 태어난 공주와 사랑을 나눴다는 이야기처럼 조금은 허망하게 들린다. 물론 베르길리우스가 [아에네이드]를 적던 시점에는 고고학적 발굴이 이뤄지지 않아 트로이를 전설로만 접할 뿐, 역사적 실체나 존재시기에 대해 정확히 알기 어려운 한계가 있었다.
디도가 세웠다는 카르타고는 어떤 나라인가? 고대 서양사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아도 카르타고나 한니발에 대해서는 막연하나마 귀에 익기 마련이다. 코끼리를 타고 와 로마를 쑥대밭 냈던 고대의 명장 한니발은 더욱 그렇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인들이 지중해 각지를 돌며 만든 무역거점이었다. 오늘날 튀니지인데, 튀니지는 이탈리아 반도에서 시칠리아를 거쳐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아프리카 땅이다. 또, 페니키아의 본거지인 지중해 동쪽 레바논에서 지중해 서쪽 이베리아 반도의 동서 중간지점이기도 하다. 남북으로는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최 단거리. 동서로는 지중해의 중간지점. 이런 지리적 이점은 무역을 생업으로 하는 국가에 필수적인 입지 조건이다. 기후조건 또한 본국 레바논땅보다 좋고, 땅도 더 비옥하며 풍광도 아름답다. 오늘날 튀니지를 방문해 수도 튀니스 옆에 있는 구도심 카르타고를 찾으면 왜 페니키아인들이 이곳에 카르타고를 만들었는지, 왜 카르타고가 지중해 최고의 무역국가가 될 수 있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흔히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전쟁을 포에니 전쟁이라고 부른다. 포에니(Poeni)는 로마인들이 페니키아(Phoenicia)를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그러니까, 로마인들은 비록 본국의 페니키아가 앗시리아에 멸망해 사라졌지만, 카르타고를 페니키아로 보았던 것이다. 포에니(Poeni)는 또 그리스어로 자색(紫色)을 뜻한다. 지금의 레바논 땅은 실크 염색에 쓰이는 고급 자색 염료의 생산지였다. 포에니란 이름이 붙은 이유다. 카르타고(Carthago)의 창건연대에 대하여는 여러 설(說)이 있지만 대개 B.C 814년경으로 신화는 전한다. 그러나, 고고학적 발굴로 보면 B.C 8c 말을 더 거슬러 올라가는 유물이 나오지 않아 정확한 개국 연대를 알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어로 카르트 하다쉬트(Kart-Hadasht, '새로운 도시')다. 그리스인들은 '칼케돈'이라고 불렀다.
카르타고는 본국 페니키아 도시들이 앗시리아에 망한 틈을 타 B.C 7c 이후 서지중해의 무역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카르타고는 코르시카, 사르데니아, 시칠리아등지에서 밀과 소금을 들여왔다. 이베리아 반도와 영국 등지에서는 광물, 대서양 연안 아프리카에서는 상아와 황금을 거래했다. 카르타고는 각지의 이권을 지키기 위해 그리스인과 싸움을 벌였으며, 나중에는 그리스 세계를 정복한 로마와 숙명의 한판 전쟁을 벌였다. B.C 264년부터 B.C 146년 사이에 3차례나. 마침내 B.C 146년 로마에 최종적으로 패하면서 카르타고는 멸망했다. 약 5세기 동안 지중해를 장악했던 카르타고가 영원히 사라진 것이다. 로마는 이후 카르타고에 소금을 뿌려 풀한 포기 나지 않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러나, 카르타고가 갖고 있는 지리적, 경제적 이점을 포기할 수 없던 로마는 B.C 122년 카르타고에 새로운 식민지를 건설하도록 했다. 하지만, 지지부진하다 카이사르때 토지 없는 시민을 보내면서 다시 부각됐다. B.C 29년 옥타비아누스때 아프리카 속주의 중심도시로 개발되면서 카르타고는 로마, 알렉산드리아, 안타키아와 함께 로마제국의 4대 도시로 번영을 되찾았다. 초기 기독교의 중심지로도 발전했지만, 439년 반달족에게 철저히 유린당했다.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이 533년 재정복했지만, 705년에 이슬람군이 점령하면서 서유럽의 역사무대에서 사라졌다. 이슬람 시대에는 근처 신도시 튀니스를 만들면서 카르타고는 바다모래 아래 묻혔다.
지금 카르타고를 찾으면 고대 번영을 누리던 페니키아 출신의 카르타고 유적은 찾기 어렵다. 묘지 등 몇 가지를 제외할 경우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미 2천 2백여년전 로마가 파괴한 탓이다. 로마시대 유적만이 주로 발굴 복원돼 아름다운 해안을 더욱 운치있는 역사공간으로 만들어 준다. 카르타고의 흔적을 더듬어 보려는 관광객은 로마 유적으로 만족해야 한다. 쉽게 차범근 보러 갔다가 최순호, 이미자 보러 갔다가 심수봉 보고 오는 셈이다. 카르타고의 국가형태는 1년 임기인 2명의 행정관, 종신직 원로원, 백인의회, 민회등의 기구를 뒀다. 군대는 용병제도를 채택했다. |
||||||||
100. 카르타고와 디도
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7장. 아에네이드와 로마의 건국 BR 1. 베르길리우스와 아에네이드 2. 아에네아스, 트로이 탈출 3. 카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