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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안에 목마를 들여놓다
트로이는 안도와 혼란에 빠졌다. 먼저 안도. 트로이 사람들은 그 지긋지긋한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들이 눈앞에서 사라진 것에 대해 크게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이제 10년 끌던 전쟁이 끝을 보는 것인가.' 하는 희망을 조심스럽게 품었다. 다음은 혼란. 안심이 되면서도 목마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가려면 조용히 갈 것이지 왜 이런 골치 아픈 것을 만들어 놓은 것일까? 트로이 사람들은 고민에 빠졌다. 목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어제까지 적군이던 시논의 말을 믿어야 옳은가? 시논의 주장처럼 들여놓아야 할까? 그러나,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처리하기 전에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시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카이아 연합군에 배신당해 진정으로 마음을 돌려 트로이에 전향하는 것인가? 아니면 음흉한 간계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정말 미친 사람인가?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려야 다음으로 목마 처리에 대한 바른 결론이 내려질 참이었다.
시민들의 의견은 크게 둘로 갈렸다. 대다수 트로이 사람들의 생각은 시논을 죽여버리자는 것이었다. 횡설수설(橫說竪說) 자꾸 아카이아 연합군을 깍아 내리며 트로이를 들먹이는 것이 불순해 보였기 때문이다. 뭔가 흉계를 갖고 트로이 사람들을 속이려 반은 미친 척 하면서 아카이아 연합군을 고의적으로 비난하는 것이란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결론을 내렸다. 트로이 사람들이 바보는 아니었다. 그러나, 일이 꼬이려면 늘 반대편 주장이 득세하기 마련. 일부에서 시논을 신뢰하자는 주장을 폈다. 모든 아카이아 병사들이 철수를 하고 혼자 남았는데, 버림받은 자로서 능히 전향할 수 있다는 해석이었다. 현실이기도 했다. 눈앞에 아카이아 연합군과 관련된 그 어느 흔적도 사라졌으니 말이다. 결정권자는 프리아모스. 노년기의 그는 큰아들 헥토르를 보낸 뒤 총기마저 잃어버린 상태였다. 프리아모스는 시논을 죽이라는 의회의 즉 국민들 요구를 무시하고 시논의 말을 믿기로 결정했다.
시논을 살렸으니 이제 목마를 처리할 단계다. 트로이 시민들의 의견은 다시 둘로 갈렸다. 먼저, 목마가 트로이 역사에 있던 적도 없고 불길해 보이니 없애자는 주장이다. 국민 대다수가 지지한 안이다. 미치광이 시논 하나 살려주는 것은 그렇다 쳐도 목마만은 절대 받아들이지 말라는 의견이었다. 불에 태워 깨끗이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거나, 산중으로 끌고가 낭떨어지에서 밀어 버리자는 거친 말이 쏟아졌다. 그러나, 반대편 사람들은 생각이 달랐다. 시논을 믿고 살려줬으니 그의 말을 끝까지 믿어 보는 게 유리할 것이란 입장이었다. 목마를 성안으로 가져가 잘 모시면 아테나 여신의 보살핌이 있을지 모른다는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테나는 전쟁 내내 아카이아 연합군 편이었으니 이제 아테나 여신에게 바치는 목마를 잘 돌보면 혹시 은총을 내릴 지 모른다는 착각을 일반인들이 하면 관계없다. 결정권을 가진 지도자가 하면 나라의 운명은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조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렸는데 트로이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불행을 스스로 불러 들였다. 목마를 들여놓기로 한 것.
시논의 선전전이 주효했지만, 목마를 들여놔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강력했었다. 특히 프리아모스의 딸이자 예언능력을 가졌던 공주 카산드라나 아폴론 신전의 신관 라오콘 같은 선각자의 안타까운 울부짖음이 두드러져 보였다. 그러나, 목마를 흉계로 본 이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로 사그러 들었다. 목마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책략이며, 목마의 뱃속에 무엇인가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을 거라는 경고의 메시지는 프리아모스와 시민들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했다. 더욱이 라오콘이 커다란 바다뱀에 휘감겨 죽자 이는 신이 노한 것이라고 여겨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들여놓는 일에 더 적극적이 됐다. 마침내 트로이 사람들은 목마를 성안으로 가져가기 위해 견고한 성을 일부 헐어냈다. 아! 신이 만들어준 난공불락의 성벽을 허물다니... 트로이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기울어 감을 느낄 수 있다. 목마는 프리아모스의 궁전 앞에 놓였다. 오늘날로 치면 세종로 경복궁 광화문 앞에 세워 둔 것이다.
◆2. 목마의 문을 연 안테노르
카산드라와 라오콘의 절규를 소귀에 경 읽기로 무시해 버리고 목마를 받아들인 트로이 사람들. 이들은 어쩌면 마음속 한구석에서 시논과 목마를 의심할 겨를도 없이 그냥 무조건 믿고 받아들이라는 충동에 사로잡혔을지 모른다. 10년간 시달린 전쟁. 트로이 사람들은 지쳐 있었다. 파리스 왕자가 스파르타 왕비를 들쳐 업고 오면서 시작된 연애전쟁은 양국의 자존심, 나아가 운명을 건 대결로 바뀌었다. 주변 모든 나라들이 아카이아 연합군과 트로이 연합군 두패로 갈렸고, 천상의 신들마저 평상심을 잃고 응원석에서 갈라졌다. 그들이 알고 있는 세계라는 인식의 지평만으로 본다면 현대의 1,2차 세계대전과 같은 개념의 지구전쟁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치열한 대규모 전투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는가? 동서고금을 떠나 전쟁은 비극이다. 승리한 자도 돌아보면 상처 투성이다. 이라크전에서 부시는 승리를 선언했지만, 지금도 거의 매일 가엾은 미군이 죽어 나간다. 미국을 틀어쥐고 흔드는 군수 자본과 석유자본 그리고 이들의 이익을 대변하며 정치적 잇속을 챙기는 정치인들을 위해... 그러니, 비극이다.
트로이 사람들은 전쟁이 끝났다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끝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예지자들의 경고를 애써 무시하고 모든 것을 잊고 싶었던 게 그네들의 솔직한 속내가 아니었을까? 내일 망하더라도 오늘 전쟁을 잊고픈 마음. 시논이 첩자이고, 목마를 들이라는 그의 말이 거짓일수록 거꾸로 그 말을 빨리 믿고 현실을 잊어버리려는 욕망의 포로가 됐을 것이다. 해로운 줄 알면서도 통증을 줄이려 일단 아편이나 마약에 의존하는 심정에 비길 수 있을까? 목마를 들여 놓으니 이제 전쟁을 잊고 즐기고 싶은 게 당연지사.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한 뒤 자신들의 승리를 축하하며 하루종일 잔치를 벌였다. 먹고 마시고 즐겼다. 하루해가 모자라 밤이 늦도록 그칠 줄 몰랐다. 남녀노소 부둥켜 안고 오랜만에 해방과 자유를 만끽했다.
그렇게 밤이 깊어 갈수록 잔인한 결과, 파국의 종말은 점점 더 가까이 트로이 사람들 곁으로 다가왔다. 긴 밤이 지나고 새벽녘이 다가올 무렵이 돼서야 트로이 사람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먹고 마시고 흥청망청 댔으니 이제 곤히 떨어져 아침해가 창문 높이 솟아 코앞을 찌를 때까지 단잠에 푹 빠질 참이었다. 물론 다시는 그런 여유를 부릴 시간도 없이 처절한 종말을 맞고 말지만... 종말은 목마에서 시작됐다. 트로이 시가지가 태풍전야의 정적과 고요에 잠긴 새벽녘. 누군가 한사람이 살금살금 집밖으로 나오더니 목마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마로 다가간 그는 목마 밑으로 가 암호를 대며 신호를 보냈다. 목마의 문을 열고 나와도 좋다는 통보였다. 그의 이름은 안테노르. 트로이 사람이다.
아! 트로이 사람이 조국을 배신하고 적군 아카이아 연합군과 내통했단 말인가? 그렇다. 안테노르는 일찍부터 아카이아 연합군 장군들과 교류를 가졌으며 특히 오디세우스와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일찌기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로 전쟁을 종결짓자는 중재안을 내놓는등 프리아모스의 친구이면서도 아카이아 연합군과도 통한 사람이다. 좋게 표현해 모두와 대화가 되고, 나쁘게 얘기해 또랑에 든 소 즉 양다리 걸친 인물이다. 그는 목마의 문을 열어준 공으로 트로이 함락때 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다. 트로이 약탈 기간동안 그의 집에는 약탈하지 말라는 표시로 표범 가죽이 내걸렸다고 한다. 트로이가 파괴된 뒤에는 이탈리아 반도로 가서 살 수 있었다.
◆3. 대학살
잠시라도 평화를 누리고 싶어 시논과 목마를 들인 다시말해 환각제를 복용한 트로이 사람들에게 내려진 부작용 즉 형벌은 가혹했다. 운명의 여신은 잔인하리만치 냉정하다. 잠시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다. 트로이 사람들이 최후의 만찬에 탐닉하던 그 시각에도 전쟁은 진행중이었다. 트로이 사람들이 무기 내려놓은 손으로 술잔과 여인네 허리 부여잡은 사이, 아카이아 연합군 쪽은 두 손 가득 활과 창칼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승패의 길은 그렇게 엇갈리고 있었다. 천지만물이 어둠 속에 고요해지고, 안테노르가 목마로 가던 그 때. 신들마저 숨죽인 새벽. 미친 척 하고 돌아다니던 시논도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슬그머니 아킬레스가 묻힌 무덤위로 올라갔다. 활시위에 불화살을 걸고, 있는 힘을 다해 쏴 올렸다. 잔뜩 당겨진 시위를 떠난 화살이 힘찬 울음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밝히며 솟았다. 공격신호였다. 이 화살을 누가 봤을까?
테네도스에 숨어있던 아카이아 연합군은 고대하던 불화살이 하늘 높이 솟아오르자 기다렸다는 듯 숨 죽여 일제히 배의 닻을 올렸다. 매복해 있던 트로이 함대가 트로이 항으로 밀려들었다. 목마 안에 숨어있다 안테노르의 도움으로 비밀통로를 통해 빠져 나온 오디세우스 일행은 트로이 성문으로 갔다. 이들이 성문을 열자 배에서 내려 성문 앞에 당도해 있던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들은 우뢰와 같은 함성을 지르며 트로이 성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아카이아 병사들은 횃불을 들고 다니며 건물에는 불을 지르고,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칼로 베고 창으로 찔렀다. 대학살이었다. 모든 건물에 불이 옮겨 붙어 대낮처럼 밝았다.
학살과 함께 빠질수 없는 단골 메뉴가 약탈이다. 아카이아 병사들은 값나가는 모든 것을 빼앗았다. 약탈이야말로 병사들이 10년 이상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딜수 있도록 해준 희망이었다. 약탈에는 어느 전쟁에서나 그렇듯이 여자가 포함된다. 여자를 찾아 헤매는 야수같은 아카이아 연합군 병사들에게 트로이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비명을 지르는 것뿐. 겁탈 현장 곳곳에서 인간성이 무너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용케 학살을 피해 살아남은 남자와 어린애는 노예로 붙들렸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노예가 되고, 트로이 시가지는 모두 불에 타 한줌 재로 변한채 역사의 무대 저편으로 사라졌다. 신이 만들어 번영을 누리던 그날의 영광만은 오늘날까지 전설로 남아 그리스 신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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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함락과 대학살
BR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5장. 트로이 함락 BR 1.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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