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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4권--
--글 싣는 순서--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오늘 이야기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8. 트로이로스 9.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0. 멤논과 이디오피아 11. 에오스 12. 사르페돈, 돌론 13.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 1. 프리아모스 아킬레스와 만나다
헤르메스가 하늘로 올라가자 프리아모스는 그제서야 전후사정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비장한 자세로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온갖 풍상을 겪고 평생을 살았지만, 이렇게 떨려보기는 처음이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결의를 다진 뒤 헤르메스가 열어준 문틈을 비집고,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쪽에서 아킬레스는 때늦은 저녁식사를 들고 있었다. 그의 곁에서 부하 2명이 시중드는 모습이 보였다. 인기척에 모두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 밤중에 기별이나 기척도 없이 도대체 누가 들어왔단 말인가! 돌아본 모두의 눈앞에 노인 한명이 서있는게 아닌가. 프리아모스를 본 아킬레스와 부하들은 깜작 놀랐다. 누구인가. 어떻게 소리도 없이 들어왔는가!
프리아모스는 헤르메스가 시킨대로 들어서자 마자 바로 아킬레스 앞에 앞드려 무릎을 잡으며 간청했다. "고귀한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여. 그대의 부친도 나처럼 죽음을 막을 길 없는 인생의 황혼 무렵에 들었겠지. 그대의 부친 펠레우스는 그대가 살아 돌아오길 자나깨나 고대하고 있으실 걸세. 아! 나는 얼마나 불행한가. 그대의 아카이아 연합군이 우리땅에 발을 내디딜 때 내자식은 모두 50명이었소. 19명은 왕비 소생. 나머지는 후궁 소생... 그런데, 그들 대부분이 죽고 이제 9명 남았다오. 얼마전 그대 손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 헥토르를 잃었고..." 프리아모스는 말끝을 맺지 못했다. 아킬레스는 놀란 눈을 제대로 뜨지 못했다. '아니 이 노인네가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란 말인가'.
아킬레스가 물었다. "노인장! 어찌 들어왔는지 모르겠으나 프리아모스왕이시오?" 프리아모스가 말을 이었다. "그렇다오. 그대가 죽인 헥토르의 아비. 프리아모스요. 몸값을 많이 가져왔다오. 후하게 쳐 줄테니, 내아들을 돌려주시면 좋겠구만. 그대의 아버지를 생각한다면 늙은 이 몸이 좀 불쌍하게 느껴질텐데... 나만의 착각인가? 여보시오, 젊은 영웅!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오. 자식을 죽인 자의 손에 내 입술을 가져다 대고 부탁을 하는 이 신세...". 말을 잊지 못하고 프리아모스가 흐느끼기 시작하자, 아킬레스의 마음도 아파왔다. 고향에 계신 늙은 아버지를 생각하니 절로 가슴이 저렸다. 자신도 아버지 생전에 먼저 죽어 아버지를 슬프게 할 운명이 아닌가! 헤르메스의 훈수가 적중하고 있음을 독자들은 눈치 챌 것이다.
최고의 용장으로 무지막지하게 칼을 휘두르며 피는 커녕 눈물 한방울도 없는 사람처럼 잔인하게 적군을 도륙(屠戮)할 줄만 알것 같은 아킬레스도 인간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할 줄 아는 효심도 있었다. 부모 생각에 잠시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던 아킬레스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노왕이시여. 모든 게 제우스의 뜻이란 걸 압니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오셔 헥토르의 시신을 돌려주라는 제우스의 뜻을 전했답니다. 아무리 담대한 인간이라도 여기 막사까지 들어올 수는 없지요. 노왕이 들어온 것은 다 제우스의 뜻입니다. 더 이상 부탁일랑 마십시오. 공연히 나의 화를 돋구면 나는 제우스의 뜻을 어기고 노왕을 해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긴 한숨을 내뱉은 아킬레스. "돌려 드리리다."
밖으로 나간 아킬레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가져오고, 하녀들에게 깨끗이 씻어 기름을 바른 뒤 의복을 입히도록 했다. "파트로클로스여! 이해하게나. 후한 몸값을 받고 시신을 돌려주니 말일세." 잠시 숙연해졌던 아킬레스는 프리아모스를 향해 "노왕이시여 동이 틀 무렵 아들을 데리고 가시오. 그전에는 식사나 하시구려. 금강산도 식후경. 예전 니오베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에게 아들 6명과 딸 6명을 잃었을 때도 의연히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까?" 아킬레스의 부하들이 양 한마리를 잡아 맛있게 굽고, 포도주도 한잔 돌렸다. 프리아모스는 늠름한 풍채와 빛나는 용모, 넉넉한 마음 씀씀이의 아킬레스에게 외경심을 품었다. 아킬레스 역시 프리아모스의 기품과 언변에 존경심을 갖게 됐다. 원수지간의 둘이 서로 존경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 그런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밤은 깊어만 갔다.
아킬레스는 최후의 한마디를 던졌다. "노왕이시여.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는데 며칠이 걸릴 것 같소? 그동안 전투를 중단했으면 합니다." 뜻밖의 배려에 프리아모스는 "젊은 영웅이여 고맙소. 화장할 나무를 구하는데도 여러 날 걸리고.. 9일간 집에서 애도한 뒤 10흘째 매장하고 11일째 봉분하려 합니다. 12일 지나면 다시 전투를 할 수 있겠지요." 아킬레스가 받았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전투를 중단 하지요." 참 멋진 협상이다. 전쟁 중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기본 예의가 살아 있다. 말을 마친 아킬레스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가멤논에게서 돌려받은 아름다운 브리세이스를 품고서... 프리아모스에게도 새벽까지 머물라며 잠자리를 마련해 줬으나, 프리아모스는 헤르메스신의 인도 아래 발길을 재촉해 트로이로 돌아갔다.
◆2. 헥토르의 장례
"헥토르의 시신이 돌아왔다. 헥토르의 시신이. 트로이 모든 시민들이여 나오라". 트로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나왔다. 모두의 가슴에 슬픔이 북받쳐 올랐다. 가슴을 치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슬퍼했다. 헥토르의 시신이 궁정 뜰에 안치됐다. 아내 안드로마케가 달려나와 오열했다. "아직 젊은 남편이시여! 젖먹이 아들과 나를 두고 먼저 가시면 어쩝니까? 우리를 지켜주던 당신이 가셨으니 우리는 이제 곧 놈들의 손아귀에 들겠죠. 모두 배에 실려가 채찍 맞으며 일해야 겠지요. 말한마디 없이 이렇게 떠나시다니..." 안드로마케가 자신의 미래를 예견하듯 슬퍼 흐느껴 울다 목이 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다른 여인들도 통곡하는 가운데 어머니 헤카베가 나왔다. "아! 나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아! 이 어인 일이냐! 어미를 두고 먼저 가다니. 아킬레스는 내 다른 아들들도 죽이거나 붙잡아 이리저리 팔아 넘기더니 끝내 너마저 죽였구나. 아! 아킬레스가 너를 그토록 끌고 다녔건만 네 모습은 아침이슬처럼 싱그럽구나. 나뿐 아니라 신들이 보살펴 주신 덕이겠지. 살아생전에도 너는 신들의 큰 사랑과 은혜를 입었었지. 허나 죽음이란 무엇이더냐. 다 끝 아니냐." 헬레네도 슬픔에 잠겨 한마디 거든다. "시아주버님. 제가 고국을 떠나 이곳에 온지 벌써 20년. 그 동안 저를 가장 따듯하게 대해 주시고, 혹 다른 분들이 저를 책망해도 말려 주시던 고마운 시아주버님. 이게 무슨 변고입니까. 더이상 저에게 친절을 베푸실 분이 안계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제가 먼저 죽었더라면 이런 불행이 없었을 텐데요." 애도 행렬과 헌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니... 헥토르에 대한 트로이 사람들의 신뢰와 존경, 그의 위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프리아모스 왕의 지시로 시민들은 산에서 나무를 구해왔다. 장작을 높이 쌓고, 불을 붙였다. 밤새 활활 타오른 장작더미 속의 헥토르. 트로이의 지도자 헥토르가 말없이 제몸을 사른 밤. 긴 밤의 터널을 지나 이제 트로이라는 나라 역시 헥토르의 뒤를 따를 운명이었다. 번영하던 동방의 부국(富國)이 역사에서 이름을 감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를 아쉬워 함인가! 마지막 타들어가던 장작들이 "툭, 툭" 외마디 소리를 내던지며 펼쳐 보이던 붉은 춤사위도 시나브로 힘을 잃고 사그러 들었다. 그렇게 정적 속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갈 무렵 에오스 여신이 아침이슬과 함께 멀리 동쪽에서부터 새벽을 알렸다. 뒤이어 헬리오스가 황금마차를 타고 태양을 실어오자 여명속에 온세상이 금빛으로 물들더니 이내 무채색의 투명하고 맑은 아침이 열렸다.
트로이 시민들은 밝은 광명의 세상이 열리자 하나 둘 밤새 탄 화장 장작더미 주변으로 모여 들었다. 전날 밤 태산같던 장작더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까마귀 울음소리와 함께 얕은 잿더미만 남았다. 붉은 불꽃이 생명을 싣고 사라진 회색빛 잿더미에는 정적과 죽음의 엄숙함만이 감돌았다. 그위로 찬란하게 빛나는 영롱한 아침햇살은 이제 누구의 영광을 위한 것인가! 시민들은 죽음의 잿더미에서 아직도 마지막 사력을 다해 깜빡이는 불씨들을 정리하려 포도주를 부었다. 불씨가 모두 사그러들자 이리저리 재를 헤치며 용장 헥토르의 유골(遺骨)을 골라냈다. 모두들 미래의 제모습에 대한 불길한 예감에 착잡한 심정을 지울 길이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묵묵히 한데 모은 뼛가루를 황금으로 만든 상자에 넣었다. 이어 자주색 비단으로 감쌌다. 그리고 땅에 묻은 뒤 큰 돌을 세워 헥토르의 묘소임을 표시했다. 그렇게 장례절차가 마무리 됐다. 헥토르는 말없이 저승으로 떠났다.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시민들은 장례잔치를 벌이러 성안으로 들어갔다. 최후의 만찬(最後의 晩餐).
◆3. 고대 그리스의 장례
서양 정신세계의 원형(原形)을 이루는 그리스인들의 사후 세계관은? 죽은 뒤에도 또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이집트를 비롯한 오리엔트에서 아주 오랫동안 전해지던 가치관의 영향으로 보인다. 기독교의 내세관도 결국 이집트, 그리스를 거쳐 내려온 종교관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근원을 따지자면 네안데르탈인의 매장 풍습에서 이미 인간은 사후세계에 대해 소박하지만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고 있었던 것 같다. 인간이 만들고 품어온 모든 가치라는 게 결국 독불장군이 아니라 아주 원시적인 차원에 뿌리를 두고, 또 다양한 문화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물론 유일신을 믿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천당과 지옥행을 가른다는 종교관은 그리스 시절 종교관보다 무척 닫혀버리고 만 형태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장례는 몇차례 변화를 겪는다. 유적을 통해 살펴보면 B.C 12c까지 미케네 시대에는 시신을 그대로 묻는 매장(埋葬)이 주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매장은 수혈식(竪穴式)과 횡혈식(橫穴式) 두 종류가 있다. 수혈식은 땅을 세로로 파들어 간 뒤 깊숙이 관을 안치하고 흙으로 메우는 무덤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보는 전통적인 고분이 그렇다. 횡혈식은 땅위에 관을 안치하고 그 위에 돌을 쌓아 현실(玄室)을 만든 뒤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들거나 석재로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형태다. 횡혈식은 따라서, 관이 안치된 현실이 땅속으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다. 무덤 입구에서 옆으로 길게 만든 연도(羨道, 입구에서 현실에 이르는 길) 안쪽에 설치된다. 피라미드를 무덤으로 본다면 횡혈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그리스 미케네 유적지에는 성안에 수혈식, 성밖에 횡혈식의 무덤이 동시에 남아있다.
미케네가 붕괴되고 암흑기를 거쳐 B.C 10c 이후 아르카이크 시기에는 매장이 사라졌다. 시신을 불에 태운 뒤 유골만 묻는 화장(火葬)으로 바뀌었다. 침략과 파괴의 시대를 살면서 시신을 묻고 봉분을 만드는 등의 품이 많이 드는 풍습이 자취를 감춘 것으로 볼 수 있다. B.C 8c말부터 사회가 안정되고 매장이 서서히 살아나 이후 그리스에서는 매장 풍습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는다. 무덤에는 봉분을 하거나 돌로 만든 각종 무덤 장식물을 설치해 고인의 넋을 기렸다. 알렉산더가 연 헬레니즘기에도 매장이 주를 이뤘다. 특히 헬레니즘기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한 거대 석관(石冠)을 사용했다. 로마시대에도 헬레니즘의 풍습을 그대로 이었다.
참고로 짚고 넘어갈 사안 한가지. 트로이 전쟁 시기는 역사적으로 B.C 13c 미케네 시대로 추정되지만, 호메로스가 기록한 일리아드에는 장례풍습이 화장이다. 일반적인 역사 유물로는 매장의 시기인데... 앞뒤가 맡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호메로스가 살던 시기는 B.C 8c기다. 그는 전쟁이 일어났던 B.C 13c가 아니라 자신이 살던 B.C 8c의 풍습을 기초로 트로이전쟁기의 장례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트로이 전쟁만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스 신화는 주로 페니키아 문자를 받아들여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완성한 B.C 8c 에 다듬어졌기 때문에 헤라클레스의 장례를 비롯해 그리스 신화 속 장례 풍습은 화장으로 그려진다. 구전으로 이어지며 그때 그때 시대상이 담긴 기록의 역사와 진실로 실재했던 모습만 그대로 간직하는 유적, 유물의 역사가 보여주는 차이점이다.
무덤속에 넣는 부장품(副葬品)이나 무덤 장식물 역시 장묘 방식처럼 시대에 따라 변화를 겪는다. 초기 미케네 시대 무덤은 발굴 결과 금은 장식과 각종 귀금속 장신구, 칼이나 그릇등 다양한 기념물을 함께 매장했다. 그러나, 고전기에는 무덤에 부장품을 많이 넣지 않았다. 이유는? 쉽게 추측해 볼수 있다. 미케네 시대는 왕정이다. 왕실 가족이나 귀족의 경우 막대한 경제력과 권력을 이용해 무덤을 화려하게 꾸밀 수 있었다. 그러나, 아르카이크기를 거치면서 왕정제가 사라지고 민주 공화정이 들어선다. 고전기에는 민주주의가 만개한다. 권력자가 없어졌다. 자연히 무덤에 절대 권력을 상징할 사람도 없어지고 사회분위기도 바뀌었던 것이다. 또, 호화분묘나 장식을 금지하는 법률을 여러차례 제정해 허례허식을 멀리하도록 했다. 물론 헬레니즘 시기로 들어서면 마케도니아와 동방의 전통에 따라 왕정이 곳곳에 세워지면서 최고의 기교를 넣은 화려한 석관이 등장한다.
이처럼 고전기 이후 그리스에서 장례는 그 절차 자체만을 중요시 해 영혼의 안식을 비는 방향으로 바뀌고, 간소한 부장품이나 기념물을 만드는 방향으로 나갔다. 비석을 만들어 부조로 죽은 사람의 모습이나 슬퍼하는 가족을 부조로 조각하거나 애도하는 절절한 문구를 새겨 넣는 선에 그쳤다. 무덤에는 레키토스(Lecythos, 길쭉하게 생긴 올리브 기름 항아리. 주로 흰색)나 레키토스 모양을 본뜬 대리석 조각품을 놓았다. 망자(亡者)의 넋을 달래고 영혼의 앞길에 신성을 불어넣기 위한 조치다. 고대 올리브 기름은 인간사에 아주 유용한 생활 필수품이면서 신의 축복을 기원할 때 뿌려주는 성스러운 의미를 담고 있었다. 무덤의 레키토스에는 실제 올리브 기름을 약간 담아두기도 했다. 망자가 하데스의 저승세계에 무사하게 도착하라는 노자돈의 개념이다. 저승 노자돈을 위해서는 별도의 안전장치를 또 마련했는데... 동전 몇잎을 넣어둔 것이다.
레키토스 대신에 루트로포로스(Lutrophoros)를 넣어두기도 했다. 이는 신부들이 목욕할 때 사용하는 물단지다. 여기서 눈치챌 수 있다. 무덤에 레트로포로스를 넣어주는 경우는? 결혼도 못해보고 죽은 사람들이 처녀귀신이나 몽달귀신 되지 말라고 빌어주는 기념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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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nsp;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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