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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3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1(아카이아 연합군)
1. 헬레네 송환 협상 2. 아킬레스 1--성장 3. 아킬레스 2--참전 4. 아킬레스 3--사랑 5. 아킬레스 4--브리세이스 6. 아킬레스 5--헥트르와 대결 7. 아킬레스 6--죽음 8. 고대 그리스의 애정사 9. 파트로클로스 10. 올림픽 1 11. 올림픽 2 12. 올림픽 3 13. 올림픽 4 14. 大아이아스 15.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 16,17,18 민주주의를 이끈 사람들 1,2,3 19. 중우정치와 민주정치 20.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민주주의 21.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 22. 오디세우스--오늘 이야기 23. 小아이아스, 디오메데스 24. 네오프톨레무스, 필록테테스 25. 테티스,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26. 알렉산더와 아킬레스
22. 오디세우스
大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갈등을 병사들의 투표로 해결했다는 점을 이야기하다 그리스 민주주의에서 현대 민주주의에 이르는 방랑을 거쳐 오랜만에 다시 트로이 전쟁 얘기로 돌아왔다. 트로이 전쟁하면 아킬레스를 떠올리지만 진정한 영웅은 오디세우스(Odysseus)였다는 평가가 많다. 트로이 전쟁에 개입한 거의 대부분의 장수들이 죽음을 맞거나 비극적인 결말을 맺지만, 오디세우스만이 예외다. 오디세우스는 용맹과 지략으로 많은 공을 세우며 궁극적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더구나, 10년간 방황도 있었지만,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가 사랑하는 아내, 자식과 다시 만난다. 20년만의 재회다. 호메로스는 그래서 '일리아드'에서 비교적 소홀히 다뤄진 오디세우스를 주인공으로 해서 속편 격인 '오디세이아'(호메로스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유력함)를 지었다. 트로이 전쟁의 진정한 승자로 기억되는 오디세우스를 들여다 본다.
라틴어 이름 '율리시즈(Ulysses)'(사실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가 1922년 펴낸 작품 '율리시즈')로도 많이 알려진 오디세우스. 그가 다른 전쟁영웅들과 달리 홀로 영광을 누렸다면 예사로운 출신이 아님을 눈치채야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이 인간과 만나 자식을 두는 게 당연한 일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속세(俗世)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버지는 이타카(이타케)의 왕 라엘테스, 어머니는 안티클레이아. 라엘테스의 아버지는 아르키시오스. 아르키시오스의 아버지는? 제우스다. 증조할아버지가 최고신 제우스인 셈인데... 제우스가 아니라 케팔로스라는 설도 있다. 케팔로스는 누구인가? 너무 잘생겨 여신의 사랑을 받았던 미남자다. 이 정도라면 제우스가 아니라도 크게 슬퍼할 일은 못된다. 아버지 쪽은 이렇고. 어머니 안티클레이아 쪽은?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 그러니까 아우톨리코스가 올림포스 12신의 한명인 헤르메스의 자손이다. 외가쪽으로도 직접 신과 연결되는 성골(聖骨)이다.
호메로스가 적은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의 아버지로 라엘테스를 자주 거론하지만, 라엘테스가 오디세우스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이설(異說)도 전한다. 어머니 안티클레이아가 라엘테스와 결혼하기 전에 시지포스를 만났고, 그와 사랑한 끝에 시지포스의 아이(오디세우스)를 가졌다는 설이다. 임신 상태에서 라엘테스에게 시집왔으니. 결국, 오디세우스는 시지포스의 핏줄... 코린토스를 건설한 시지포스. 가뭄에 시달리던 코린토스에 샘을 만들기 위해 제우스의 아이기나 납치 사실을 아이기나의 아버지인 강의 신 아소포스에게 알려준 사나이. 그 죄로 바위를 굴려 산위로 올라간 뒤 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다시 굴려 올리는 벌을 받게 된 시지포스가 오디세우스의 친부(親父)라! 자신을 희생해 지역사회를 살린 의인(義人)으로 기억할 만하다.
누가 아버지이든 '오디세우스'라는 이름의 말뜻이 궁금하다. 조금은 뜻밖이다. '노여워 하는 자'. 그의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의 작품 이라는 설인데, 왜 이런 상식이하의 작명(作名)을 했을까? 딸 안티클레이아의 해산 때 방문했다가 주변 사람들로 인해 화가 많이 난 상태에서 지었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그렇지. 딸네집 갔다가 푸대접 좀 받았기로서니, 외손자 이름을 그렇게 지어서야... 오디세우스의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가 비난받지 않을 방법도 있다. 오디세우스의 아버지가 시지포스라는 주장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라는 이름도 시지포스가 지어준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청년으로 자란 오디세우스는 아킬레스처럼 켄타우로스 키론에게 교육을 받았다. 또, 그리스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살았다. 외할아버지 아우톨리코스의 집에 머물 때는 멧돼지 사냥을 벌이다 무릎에 큰 상처를 입기도 했다. 이상처의 흉터는 나중에 오디세우스임을 증명하는 단서가 되지만... 그는 또, 아버지의 도둑맞은 양떼를 찾으러 펠로폰네소스 반도 메세니아 지방에 갔다가 스파르타(라케다이몬)에 들러 에우리토스의 멋진 활을 선물로 받았다. 오디세우스는 이 활로 나중에 트로이 전쟁에서 역경을 딛고 돌아와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며 괴롭히던 남자들을 죽인다. 그 부분은 나중에 다시 살펴보고.
◆2. 결혼
이렇게 각지를 돌다 일찌감치 총각시절 아버지(라엘테스)로부터 이타카 왕위를 물려받은 오디세우스는 스파르타왕 틴다레오스가 자신의 딸 헬레네와 결혼할 구혼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미녀를 좋아하는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음에 낙담한다. 그리스 각국에서 왕자들이나 왕이 구름처럼 몰려 든 것이다. 아무리 따져봐도 승률이 낮고, 냉철히 승산도 없어 보였다. 멀리 타국에 왔다가 빈손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멋진 아내를 데리고 아버지에게 보란 듯이 며느리감으로 내놓아야겠는데... 지략의 대가인 오디세우스는 골머리를 썩다 마침내 대안을 찾았다. 헬레네의 4촌인 페넬로페에게 마음을 돌린 것. 그리고 방법도 생각해 냈다. 틴다레오스를 통하기로 한 것. 당시 틴다레오스는 큰 고민에 빠져 있었다. 헬레네가 누군가의 배필로 낙점 됐을 때 구름처럼 몰려든 구혼자들이 불만을 품고 승복하지 않거나, 헬레네를 납치하는등의 극단적인 일을 도모(圖謀)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걱정이 태산같았다.
시름에 잠겨 있던 틴다레오스에게 오디세우스가 기회를 엿봐 다가갔다. "폐하, 방법이 있사옵니다.", "그래, 무엇인가 말해보거라.", "예,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시키시옵소서. ", "맹세?", "네. 누가 헬레네를 차지하더라도 불만이 없으며, 헬레네 신상에 문제가 생기면 나머지 모두가 힘을 모아 해결한다는 맹세말입니다. ", "그래서?", "맹세에 서명하는 사람에게만 구혼 자격을 주시면, 성려(聖慮)를 거두실 수 있을 줄로 아뢰오.", "오라, 탁견이로고." 오디세우스의 훈수에 틴다레오스는 무릎을 쳤다. "그렇게 하마." 미인을 차지하기 위해 모든 참가자들이 흔쾌히 약속을 했고, 안심한 틴다레오스는 딸을 메넬라오스와 결혼시켰다. 틴다레오스는 헬레네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자 오디세우스를 불렀다.
"그대 덕에 혼사를 잘 치렀는데, 그 덕을 치하하고 싶구나.", "무슨 당치도 않은 말씀을.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이옵니다.", "허허, 예지에 겸양하는 자세까지. 스스럼 없이 말해보거라.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마.", "그렇다면 염치 불구하고 말씀 올리겠습니다. 이번에 빈손으로 돌아가면 아버님을 뵈올 면목이 없사오니, 소인의 처지에 맞는 배필을 구할수만 있다면 아버지의 크신 은혜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길이...", "음. 예지에 겸양, 그리고 효심까지. 알겠노라. 내가 힘을 써보마. 혹시 마음속에 생각해둔 처자라도 있으면 말해보거라.", "천학비재(淺學菲才)의 보잘 것 없는 몸이라 감히 염치 없이 말씀을 여쭙기가...", "괜찮다. 주저말고 어서...", "너무 꾸짖지는 마시옵소서. 폐하의 질녀(姪女) 페넬로페를..." 틴다레오스는 조카딸을 오디세우스에게 즉각 소개시켜 결혼할 수 있도록 뒤를 봐줬다. 일설에는 오디세우스가 페넬로페를 놓고 벌인 경기에서 우승해 얻었다고도 하고...
◆3. 병역기피와 발각
헬레네 못지않은 미녀 페넬로페를 얻은 오디세우스는 꿈같은 신혼생활에 들어갔다. 둘 사이에는 오디세우스의 대를 이을 건강한 사내아기도 태어났다. 그의 이름은 텔레마코스. 텔레마코스는 나중에 아버지를 도와 큰일을 하는 의젓한 어른으로 자라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 얘기고... 텔레마코스가 아직 강보(襁褓)에 쌓여 있을 무렵. 그러니까,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부부가 아들을 낳고 행복한 단꿈에 젖어 살던 바로 그때 어두운 그림자가 몰려왔다. 전운의 먹구름이었고, 오디세우스 일가에 몰아칠 불행의 전주곡이었다. 불길한 곡조를 띤 구름은 멀리 동방에서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동방의 부국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왕비 그러니까 페넬로페의 4촌 헬레네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간 세기의 스캔들이 벌어졌다. 요즘 식으로 영국왕비가 일본 왕세자에게 재가한 셈인데...
헬레네가 파리스와 눈이 맞아 떠난 뒤 메넬라오스는 각지의 왕들에게 구혼당시 맺었던 약속을 되새겼다. 오디세우스는 이때 구혼자가 아니어서 참전의무가 없지만, 제안자로서 도의적인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참전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한순간 의리에 눈감으면 평생 행복이 보장되는데, 냉정하자.' 이유는 앞서 본대로다. 미인 페넬로페와 결혼해 아들 낳고, 잘 사는 호시절을 깨고 전쟁터에 나간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던 것이다. 더구나, 신탁을 물어본 결과 전쟁에 나서면 20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 아닌가? 20년간 미모의 젊은 아내와 갓난 아들을 홀로 내버려 둬야 한다면 누가 전쟁에 나설까!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독립지사들은 정말 너무 위대한 분들이다. 가족과 생이별해 20년이 무엇인가! 기약도 없이 수십년을 이국땅에서 멸시와 천대 받아가며 독립의 그날을 꿈꾸었으니... 그것도 일제의 추격을 피해가며 무장 투쟁으로... 목숨을 바친 폭탄의거로... 아 친일파를 청산해 민족정기를 세우는 길만이 초야에 누운 그분들의 한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 바른 길인데... 어찌 대한민국은 전세계 유일무이(有一無二)하게 해방조국에서 식민세력에 협력한 자들에 대한 처벌이 전혀 없었단 말인가! 아직도 친일 잔재들의 목소리가 여의도를 호령한단 말인가! 이러고도 강호(江湖)에서 자유와 정의를 말하고 있다면 위선일 뿐이다.
애국지사다운 용기와 애국심이 없던 오디세우스가 병역 기피를 위한 꾀를 낸 것도 모르고, 메넬라오스는 4촌 동서 오디세우스를 만나러 4촌지간인 팔라메데스와 함께 이타카를 찾았다. 사절단이 온다는 소리를 들은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술책대로 일단 왕궁을 비우고 숨었다. 사절단이 왕궁에서 마주친 것은 아름다운 아내 페넬로페와 울고 있는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 뿐. "어찌하나?" 사절단은 사방으로 오디세우스를 찾아 다녔다. 숨는데 한계를 느낀 오디세우스는 들판으로 나갔다. 사절단이 들판으로 달려가 보니... 오디세우스가 정신 나간 짓을 하는게 아닌가!
오디세우스는 황소와 나귀를 짝지워 쟁기질을 하는가 하면, 밭에 씨앗 대신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염분은 농작물과 상극. 바닷물 빠진 간척지 농사짓기가 요즘도 얼마나 힘드는데... 미친 사람을 전쟁터에 끌고 갈 수는 없는 일. 돌아가려는 사절단에 팔라메데스가 의문부호를 던졌다. 그도 꾀많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는 오디세우스가 연극을 펼치는 것이라 생각하고, 오디세우스를 능가하는 꾀를 냈다.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데려와 오디세우스가 끌고 있던 쟁기 밑에 놨다. 미친 오디세우스라면 그냥 쟁기를 밀어 아들을 죽일 것이고, 미치지 않았다면 쟁기를 멈춰 아들의 생명을 구할 것이었다. "아니 저놈이, 정말." 오디세우스는 등에 식은땀을 흘리며 쟁기질을 멈추고 말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미치지 않았음이 드러났고, 참전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4. 트로이 전쟁 참여와 활약
고작 12척의 배를 이끌고 참전한 오디세우스는 용맹한 싸움보다는 특유의 머리를 활용한 지략으로 더 많은 공을 세웠다. 먼저 외교력을 인정받아 헬레네 송환협상팀으로 메넬라오스와 트로이를 다녀왔다. 또, 전쟁을 기피하고 숨어있던 아킬레스도 기지를 발휘해 찾아냈다. 텔레포스가 아킬레스의 창에 상처를 입자 고쳐 달라고 떼쓰면서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를 납치했을 때 "상처를 입힌 자가 치유하라"는 신탁을 바르게 해석해 아킬레스 창의 녹을 떼내 치료하므로써 트로이 가는 길을 안내받을 수 있도록 했다. 두번째 원정을 앞두고 아울리스에서 바람이 불지않자, 이피게이나와 아킬레스의 결혼극을 꾸며 이피게니아를 의심없이 아울리스로 오도록 만든 것도 그였다.
2번째 트로이 원정에서도 테네도스 섬에 이르러 2번째 헬레네 송환사절로 트로이에 다시 다녀왔다. 전쟁중에는 아가멤논의 사절로 아킬레스의 마음을 돌리러 가는 역할도 맡았다. 9년간 전쟁의 성과가 없고 군사들의 불만만 높아지자 아가멤논이 거짓으로 귀향 명령을 내렸으나, 이를 알아챈 것도 오디세우스였다. 모든 병사들이 환호하며 고향에 돌아가기 위해 바다로 달려갈 때 그는 아가멤논의 본심을 읽고 선동자 테르시테스를 잠자코 있게 한 뒤, 병사들을 설득해 되돌아 오게 한 것이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헤라클레스의 화살이 필요하다는 신탁이 나오자 렘노스섬에 버려뒀던 필록테테스를 다시 참전시키데도 수완을 발휘했다. 아킬레스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를 전쟁터로 데려와 공을 세우게 만들었다.
전쟁 막바지. 아킬레스와 파리스가 모두 죽고 난 뒤에는 다시 트로이성으로 잠입했다. 파리스의 형 데이포보스와 살던 헬레네를 만나 지원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이때 헬레네의 반응에 관한 두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헬레네가 오디세우스를 만나 트로이를 배반하고 아카이아 연합군을 도울 것을 약속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헬레네가 트로이 왕비 헤카베에게 오디세우스가 정탐차 들어온 것을 일러바쳤다는 것. 후자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는 헤카베 앞에 잡혀간 뒤 위기의 상황에서 눈물의 거짓 고백으로 동정을 사 간신히 빠져 나왔다고 한다. 오디세우스는 나중에 은혜를 원수로 갚지만... 전쟁터에서 자비(慈悲)란게 참.
오디세우스는 지략으로만 활약한 게 아니다. 전투에서도 큰 공을 여러 번 세웠다. 알라스토르등 숱한 트로이 병사들을 저승으로 보냈다. 정탐을 위해 트로이 진중으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거꾸로 아카이아 연합군을 정탐하러 오던 돌론을 만나 죽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최후의 트로이 목마 작전을 고안해 낸 것은 그의 공 가운데 길이길이 빛난다. 맹활약을 펼치면서 뜻밖에 큰 부상도 당하는데... 과정은 이렇다. 파리스의 화살에 맞은 디오메데스를 구하려다 트로이 진영에 혼자 남아 포위됐다. 오디세우스는 밀려드는 트로이 군사 여럿을 베지만, 트로이의 맹장 소커스의 창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방패가 뚫렸다. 내장을 다치지는 않았지만 소커스의 창이 옆구리에 큰 상처를 냈다.
가까스로 창을 들어 소커스를 죽였지만, 그만 선혈을 쏟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오디세우스는 있는 힘을 다해 큰 소리로 3번이나 아카이아 연합군에 도와달라고 고함을 질렀다. 멀리서 메넬라오스가 이 소리를 듣고, 大아이아스와 함께 구조하러 오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오디세우스를 소재로 한 '오디세이아'는 탄생하지 못할 뻔 했다. 오디세우스가 펼치는 목마작전과 트로이를 함락시킨 뒤 전리품 분배 그리고, 트로이를 떠나 고향 이타카에 도착하기 까지 모험을 다룬 오디세이아는 뒤에서 자세히 살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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