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보도통제로 국민들에게 전 달되지 못했던 기사들이 한 교수의 노력으 로 20년만에 빛을 보게 됐습니다. 당시 신 군부가 얼마나 국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했는지, 정명원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20년 전 5월, 군부쿠데타에 피로 항거한 광주 민 주화운동은 외신을 타고 전세계에 알려졌 지만 정작 국내에서는 폭도들의 반란으로 보도됐습니다.
계엄이라는 이유로 당시 신 군부가 모든 언론사에게 기사화하기 전에 사전검열을 받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공수 부대 배치로 희생자가 나기 시작한 5월 18 일, 전주에서 처음으로 희생자가 발생했다 는 소식을 한 신문이 기사화하려 했지만 계엄군의 검열로 완전히 삭제됐습니다.
사 상자가 크게 늘어난 5월 26일, 동포애를 발휘해 피를 보내자는 신문기사 역시 검열 관의 가위질로 빛을 보지 못 했습니다.
광 주의 비극을 반성하자는 이 사설은 삭제라 는 도장 하나에 주부윤리를 제정하라는 엉 뚱한 내용으로 바뀌었습니다.
1년 반 동안 서울에서만 무려 27만 7000여 건, 거의 모 든 기사가 검열을 당했고, 삭제된 기사는 하루 평균 60건이나 됐습니다.
<김충식(동아일보 논설위원): 가난한 사람 들이 자살을 했다든가, 혹은 물가에 불안 요소가 있다든가, 혹은 사소한 일들까지도 검열에서 통째로 드러내는 그런 상황이었 습니다.> 그러나 당시 삭제됐던 기사들이 남 모르게 자료수집을 했던 한 교수의 논문으로 2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민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 론이 비록 외형적으로는 침몰하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언론의 자유를 향한, 제가 표현하고자 하면 몸부림, 그 다음에 언론의 진실, 세상에 진실을 보도하기 위 한 갈망이 있었다...> 이번에 뒤 늦게 빛을 본 삭제기사들은 한 순간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할 수는 있을 지라도 그 진실이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사 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SBS 정명원입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