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역대급 꼰대 중에 왕꼰대!'
지금 공연 중인 뮤지컬 '틱틱붐'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조나단 라슨이 쓴 이 뮤지컬에서 한국 대통령 이야기를 했을 리는 없지만, 이 대사는 현재 한국 상황과 맞물려 귀에 확 꽂히는 인상적인 대목이 되었습니다. 이 뮤지컬을 번역한 황석희 씨와 함께 '틱틱붐' 번역 이야기 들어봅니다.
존댓말로 번역했을 때와 반말로 번역했을 때 어떤 차이가 있는지, 똑같은 장면에서 한국 관객과 외국 관객은 어떻게 다른지, 흥미진진한 뮤지컬 번역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이병희 아나운서 : 뮤지컬 처음에 의뢰를 받으면 번역 진행 과정이 어떻게 돼요?
황석희 번역가 : 처음에는 제가 대본이랑 악보를 다 봤고. 그리고 저는 영어 번역을 오래 한 사람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영상으로 볼 수 있는 게 있으면 너무 좋아요. 그런데 모든 공연이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기존에 올라왔던 곡이면 '현황을 촬영한 게 혹시 있을까요?'라고 여쭤봐서 그걸 받기도 하고, 아니면은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촬영된 게 있으면 그걸 받기도 해요. 그런 것들을 봐야 이 대사에서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소리가 담기잖아요. 웃는지, 조용히 하는지, 각 나라마다 다르거든요. 같은 대사를 쳐도. 진지한 대사인데 한국 관객들은 웃는 경우들도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이번에도 그런 게 있나요?
황석희 번역가 : 있어요.
김수현 기자 : 어디요?
황석희 번역가 : 사실 존과 수잔이 나중에 헤어지는 장면에서 존이 막 붙잡아요. "오늘은 내가 너무 미안했어. 오늘 하루만 자고 가" 하고 붙잡아요. 그러니까 "아니야, 나 갈 거야" 이러다가 "이렇게 늦었는데 어딜 가" 이러니까 "택시 타고 갈 거야" 이런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데 전에 싸울 때 택시 얘기가 나와서 투닥투닥했던 장면이 있어요. 수잔이 밤에 "자기네 집으로 와라" 그러니까 존이 "지금 가려면 버스 두 번 타고 지하철 한 번 갈아타고 가야 되는데 어떻게 가" 그러니까 "택시 타고 와", "택시비가 없어" 이러고 싸우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나중에 헤어질 때 존이 "이 시간에 집에 어떻게 가, 너. 가지 마. 자고 가" 하고 붙잡는데 "가려면 너 지하철도 두 번 갈아타야 되고 버스도 타야 되는데 어떻게 해" 그랬더니 수잔이 되게 차갑게 "택시 타고 갈 거야" 이런 장면이 있거든요. 굉장히 많은 게 담겨 있는 대사이기도 해요.
근데 "택시 타고 갈 거야" 그러니까 관객들이 웃으시는 거예요. 그것도 이해가 돼요. 사실 좀 웃기잖아요. 전에 그렇게 싸워놓고. 그런데 그게 해외 프로덕션에서 하는 것들을 보면 관객들이 거기서 웃진 않아요. 그런 것들은 어쨌든 각 나라별로 관객들의 차이가 있는 거죠. 그래서 '어, 여기서 웃으시네?' 그러면 그게 잘못됐다는 게 아니고, 만약에 우리나라 관객들의 성향이 거기서 웃는 거라면 그런 것들을 강조한다거나 혹은 그쪽으로 연출을 할 수도 있겠고. 대사를 조금 변형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방법들도 있는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아까 녹음하지 않을 때 얘기했던 건데 여기 '우리 나라 대통령' 얘기를 하는 대목이 있잖아요. 뮤지컬에서. 거기서도 많이 웃는데. 그래서 저도 궁금해서 '대본에도 이렇게 돼 있어요?' 하고 여쭤봤었어요. 대본에 대통령 얘기가 나오기는 하죠?
황석희 번역가 : 네. 나오고, 너무 뻔하게 돼 있어요. 사실 조지 부시(George H. W. Bush)라고 하면 지금도 영화에서도 굉장히 많이 인용하는 인물이거든요. 근데 어떨 때 인용하냐면 무능하고, 꽉 막혀 있고, 재미없고, 이런 인물들. 아주 전형적으로 재미없고 꼰대라고 부르는 기성세대의 아이콘이에요. 그럴 때 인용하는 인물인데 여기서도 그렇게 나오거든요.
존이 "90년대는 정말 보수적이고 재미 더럽게 없고 꽉 막힌 시대야. 단적인 예로 말하자면 지금 대통령이 조지 부시야"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런데 그렇게 말을 하면 한국 관객들은 모르잖아요.
김수현 기자 : 조지 부시의 그 느낌이 없으니까.
황석희 번역가 : 그렇죠. 만약 훗날 2, 3년 뒤에 나오는 뮤지컬이나 연극에서 "지금 세상은 진짜 미친 세상이야. 미친 놈들이 득세했고, 단적인 예로 지금 대통령이 트럼프야" 이러면 웃겠죠.
김수현 기자 : 그렇죠.
황석희 번역가 : 그런데 그것의 옛날 버전, 90년대 버전으로 이야기하는 거니까 공감을 못 할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조지 부시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말을 해줘야 될까, 좀 풀어야 될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 나라 대통령'이라는 말까지 쓸 생각은 없었어요. '이게 조금 델리키트(delicate)하지 않나 이래서. 그냥 "지금 대통령이 누군 줄 알아?" 그리고 뒤에 수식어를 붙이는 거죠. "꼰대 중에 왕꼰대, 조지 부시야" 이런 거였어요.
근데 연출님은 좀 더 재미있게, 중의적으로 느껴질 수 있게 쓰신 거죠. "지금 미국 대통령이 누군지 알아?" 이것도 아니고 "지금 우리 나라 대통령이 누군 줄 알아?"라고 하면 중의적으로 들릴 거잖아요, 관객들에게. 그리고 중간에 텀을 두고 "꼰대 중에 왕꼰대"까지 해놓고 또 텀을 주면 사람들이 얘기하지 않겠어요. 그러고 나서 "조지 부시" 이러고 나면 '너네 지금 무슨 생각을?' 이런 장난을 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애초에 존이 관객들을 향해서 계속 방백을 하는데, 지금까지 올라왔던 프로덕션은 방백이 다 존댓말로 번역이 돼 있단 말이에요.
김수현 기자 : 아 그랬나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