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루아는 와인이나 커피에서 자란 환경이 맛에 영향을 주는 것을 뜻하는 용어다. 콩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대두도 이와 비슷하게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대두, 메주콩, 흰콩, 노란 콩, 백태 콩이라고 불리는 국내에서 재배되는 콩 말이다. 이름도 부르는 사람마다 제각각인 대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글의 대두는 백태 콩을 뜻하며 이 글에서는 편의상 '대두'로 통일하겠다.)
채식을 시작하며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환경에도 이롭게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찾은 것이 '국산 대두'였다. 처음 대두를 삶아서 한 입 먹었을 때의 맛을 잊지 못한다. 병아리콩보다 짙은 고소함이 있었고, 팥처럼 으스러지는 질감이 아니라 조금은 단단한 식감이었다. 그래서 씹을수록 부드러웠다. 사람들이 '콩취'가 난다고 걱정들을 많이 했지만, 나는 불편한 냄새를 느끼진 못했다.
처음 먹었던 콩은 경남 함양의 콩이었다. 그다음에는 파주의 장단콩을 구해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물에 불리니 함양의 콩은 크기가 컸지만, 파주 장단콩은 불려도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삶아서 먹었을 때도 단단함의 정도, 단맛, 향도 모두 달랐다. 그저 보기에는 조금 노랗고 동그란 콩일 뿐인데 물에 불린 순간부터 자신들의 개성을 드러내는 게 신기했다. 그럼, 전국에서 자라고 있는 콩들의 맛이 모두 다른 것일까? 그때부터 전국의 콩을 비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드디어 올 4월, 머릿속으로만 구상하던 일들을 실행했다. 15개 지역의 콩들을 주문했다. 품종은 대원, 선풍, 대창, 풍산, 왕태가 있었고, 품종을 알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대원 품종이었다. 어떤 콩은 맵싸한 향이 났고, 어떤 콩은 초록 잎의 푸릇한 향이 났다. 어떤 콩은 삶은 계란 흰자에서 나는 단백질 냄새가 강하게 나기도 했고, 어떤 콩은 메주의 향, 어떤 콩은 특별한 향이 없거나 구수한 향이 났다. 색깔도 창백한 노란색부터 짙은 노란색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거품의 정도도 달랐다. 갈아서 먹었을 때는 마치 생크림을 퍼먹는 것 같이 부드러운 콩도 있었다. 이틀 동안 불리고, 삶고, 갈고, 먹어보고, 기록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콩에도 와인이나 커피처럼 '떼루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두부나 된장에 가려져 있던 콩이라는 존재가 뚜렷해지는 순간이었다. 같은 콩이라도 지역마다 콩 맛이 다르다!
오늘 준비한 요리들은 대두를 삶는 방법과 삶은 대두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준비했다. 스프카세를 읽는 분들에게 국산 대두를 구해서 삶아서 먹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이왕이면 내가 사는 지역에 가까운 콩으로 먹는다면 더 좋겠다. 그리고 대두 1kg 한 봉지를 다 먹었을 때쯤 다른 지역의 콩으로 비교해서 먹으면 또 다른 맛의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콩을 구하기 가장 좋은 이유는 11월은 콩을 수확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6월에 심었던 한 알의 콩이 주렁주렁 꼬투리를 매달고 속에 콩을 소중하게 품고 있다. 올해 열심히 다녔던 충북 괴산의 콩들도, 이 글이 올라갔을 즈음이면 수확을 마치고 누군가에게 귀중한 양식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귀중한 양식으로 변신할 콩 레시피 3가지
콩을 불리는 시간은 밤을 추천한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잠들기 전 콩을 불려두면, 자는 동안 톡톡 소리를 내면서 콩이 깨어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삶은 콩은 식힌 후에 콩을 삶았던 물까지 함께 보관한다. 콩 삶은 물은 국 끓일 때 채수처럼 활용하면 좋다. 특히 콩나물국 끓일 때 한 컵 넣어주면 한층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 마른 대두 한 컵(약 110g), 3배의 물
*컵은 종이컵을 기준으로 했다.
콩 부피에 3배 정도 되는 물에 담가둔다. 여름철은 7시간이어도 충분하고 추운 날은 10시간 이상 불린다. 불린 다음 물을 버리고 깨끗한 물로 2~3번 세척한다. 콩은 씻어서 불리는 것보다 불린 다음 씻는 것이 크기가 커져서 편하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콩 주름 속의 먼지까지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냄비에 콩을 넣고, 또 3배의 물을 담은 뒤 중불로 7~10분 정도 끓인다. 그리고 약불로 10분 끓인 뒤 불을 끄고 식힌다.
*콩은 물에 불리면 2.5~3배 정도로 불어난다.
*콩은 끓으면서 거품이 끓어오르기 때문에 냄비는 가장 큰 것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냄비뚜껑은 반쯤 열어둔다.
*너무 오래 삶으면 주황색으로 변하고 메주콩 향이 나기 때문에 20분 정도 삶는 것이 적당하다.
2. 대두 후무스
후무스는 병아리콩과 중동의 향신료들로 만드는 소스류의 요리다. 대두로 만들면 고소하고 꾸덕한 질감의 후무스를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 먹은 대두 후무스만 해도 한 트럭은 넘을 정도로 자신 있게 추천하는 레시피다. 빵이나 채소 스틱과 먹어도 좋고, 김밥 속 재료나 카레, 샌드위치 같은 요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향신료를 좋아한다면 듬뿍 추가해 보자. 색다른 중동의 향기까지 느낄 수 있다.
- 재료: 삶은 콩 300g, 콩 삶은 물 100ml, 소금 1/2t, 마늘, 올리브유, 참깨, 레몬즙 1t
마늘은 편 썰고 올리브유에 약불로 살짝 익힌 뒤 식힌다. 참깨는 빻아 준비한다. 모든 재료를 넣고 믹서기에 넣어 여러 번에 나눠 곱게 나눠준다. 잘 갈리지 않을 때는 삶은 콩 물을 조금씩 추가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