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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익힌 통돼지 같은' 바그너 음악? '탄호이저'엔 서울 버전이 있다? [스프]

[더 골라듣는 뉴스룸] 오페라 연출가 요나 김이 들려주는 바그너 오페라 '탄호이저' 이야기

탄호이저
바그너는 자신의 오페라 '탄호이저'를 초연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정했습니다.  따라서 '탄호이저'의 판본은 드레스덴, 파리, 비엔나 등 여러 버전이 있는데요, 바그너는 왜 이렇게 이 작품을 여러 번 수정했을까요?

이번에 국립오페라단에서 공연하는 '탄호이저'는 '서울 버전'인데요, '서울 버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독일에서 주목받는 한국인 연출가 요나 김이 설명합니다. 

요나 김은 또 음식에 비유하자면 바그너 오페라는 '오랫동안 익힌 통돼지 한 마리'와 같다고 했는데요, 왜 이런 비유를 사용했을까요? 그가 말하는 바그너 오페라의 매력을 알아봅니다.
 
 

김수현 기자 : 바그너가 탄호이저를 젊을 때 써서 계속 고쳐서 여러 판본이 있다면서요.

요나 김 연출가 : 그게 참 재밌는 얘기예요. 저는 그게 이 작품의 운명을 얘기해 준 것 같아요. 그리고 바그너의 인생과 교집합이 많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 사람이 첫 출사표처럼 던진 거 아닙니까? 젊은 야망가가 '난 이런 사람이야' 하고 자기 얘기를 한 것과 동시에 음악적으로도 많은 시도를 했어요. 다른 동시대 사람과 다른, 바그너적인 거를 많이 시도한 작품이기 때문에 자기는 성공할 거라고 믿었겠죠. 그런데 초연이 너무 실패했거든요. 그야말로 욕을 너무 얻어먹어서 야유를 받고 폭망을 했어요.

그래서 너무 실망해서 이걸 갖고 있다가 파리에 갔습니다. 파리가 당시에 그랑 오페라의 메카였습니다. 거기서 또 한 번 발을 붙여보려고 이 작품을 고친 거예요. 파리 관객의 입맛에 맞게 하려고 발레 신도 없는 걸 만들고, 1막도 길게 쓰고. 어떻게 해서든지 이 작품을 세상에 설득하고 싶었던 거예요. 너무 이해되죠. 그런데 거기서도 또 망했어요.

그리고 뮌헨, 비엔나 버전이 또 나와요. 그나마 좀 통했던 게 비엔나 버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바그너가 생각했던 것만큼의 엄청난 성공이라기보다 드디어 야유는 안 받게 되는 정도였는데 거기서도 만족을 못 했던 거죠. 그래서 코지마한테 '난 아직도 탄호이저가 완결이 안 된 것 같아' 그러면서 새로운 판본을 하나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합니다. 결판이 안 나는 거죠.

사회와 예술가의 관계가 평생 가는 자신의 주제였던 겁니다. 그만큼 바그너의 전기가 녹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공연의 역사를 봐도 너무 자기 얘기인 거예요. 끝나지 않는 인생의 문제 같은 것일 수도 있겠죠. '어느 정도의 사회에 순응해야 되는가' 아니면 '정신과 육체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가' 등 많은 질문이 나이가 들어서도 해결이 안 났던 것 같아요. 결국은 그걸 못 쓰고 죽었죠.

정석문 아나운서 : 새로운 오페라를 써서 새롭게 성공에 도전하는 것, 다른 오페라도 계속 썼지만 탄호이저를 특별히 더 아꼈다고 생각할 수 있지 않나요?

요나 김 연출가 : 아꼈을 수도 있죠. 그런데 자기가 질문을 던졌던 평생의 문제를 젊었을 때 테마를 만들었는데 그게 풀리지 않았던 거죠.

정석문 아나운서 : 바그너한테는 되게 중요한 문제였군요.

요나 김 연출가 : 작품을 아무리 쓰고 아무리 성공하고 아무리 오래 살아도 그 질문에 대한 결정적인 마지막 대답을 못 들었다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또 다른 판본을 쓰고 싶었겠죠. 답이 없는 문제였는지, 아니면 일찍 죽어서 그런 건지는 우리가 알 수 없는 거죠. 그런데 그가 인정한 판본은 존재하지 않아요.

김수현 기자 : 그래요? 그럼 이번에는 어떻게...

요나 김 연출가 : 이번에는 서울 버전이라고 부르는데. 비엔나 버전, 뮌헨 버전, 드레스덴 버전이 초연이에요. 그리고 이제 파리 버전. 이번에는 서울 버전이라고 부르는데 저는 지휘자님과 처음부터 '우리는 어떤 판본을 쓸까' 고민했어요. 그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어떤 거를 쓰느냐에 따라서 저의 해석 의도도 많이 보여줄 수 있거든요.

저는 젊은 바그너의 야망과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의 느낌이 많은 초연을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저한텐 중요했어요. 그때 그 폭망한 거. 그걸 쓰되, 초연에서 아쉬운 점은 베누스라는 감각의 세계를 표현하는 여성의 비중이 1막에서는 적어요. 그런데 파리 버전에서는 1막에 베누스가 큰 비중을 갖고 오래 자신에 대해 얘기해서 캐릭터에 대한 설득력이 훨씬 더 강해요. 더 다차원적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이 여자와 엘리자베트의 두 여자 유형을 대척점에 놓고 얘기를 풀어가고 싶었기 때문에 둘 다 똑같은 비중이길 원했어요. 그러니까 1막은 파리로 가자고 결정했습니다.

정석문 아나운서 : 2막부터는요?

요나 김 연출가 : 2막은 다시 드레스덴으로 갔죠. 드레스덴에 가되 너무 긴 장면들이 있어요. 합창단과 솔로이스트들이 같이 부르는 걸 앙상블이라고 하는데 그걸 오래 부르는 장면에서 바그너가 반복을 많이 했어요. 젊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았겠죠. 거기서는 텐션을 높이기 위해서 살짝 삭제도 좀 했어요. 지저분한 부분을 좀 잘라낸 거죠.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서울 버전이 나온 거예요.

정석문 아나운서 : 그 과정은 다 지휘자님하고 같이.

요나 김 연출가 : 그렇죠. 그거는 지휘자와 같이 항상 조율해야 하죠. 음악적인 부분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저의 해석도 중요하고요. 그런데 너무나 다행히도 제가 '판본을 2개 섞어서 쓰고 싶다, 베누스의 비중을 높이고 싶다' 그러니까 금방 이해하셨고, 좋은 생각이라고 하셔서 빨리 동의하고 따라와 주셨어요. 그리고 다른 제안도 좋은 것이 많이 있었고요. 기브 앤 테이크 하면서 좋은 판본이 나온 것 같아요.

김수현 기자 : 파리 버전에는 발레를 넣었다고 했는데, 서울 버전에는 발레는 안 들어간 거죠?

요나 김 연출가 : 안 썼습니다. 굉장히 작위적이고 장식적이고, 당시 관객들에게 그야말로 서비스하기 위해서 오락용으로 만든 거기 때문에 저는 작품과 본질적인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뺐어요. 

김수현 기자 : 보통 바그너 오페라 하면 바그너가 무지크드라마, 음악극이라고 하면서 아름다운 아리아가 탁 나오면 '끝났구나. 너무 좋은 아리아였어' 이런 식인데 그렇게 진행이 안 되잖아요. 바그너의 다른 무지크드라마라고 하는 것들은.

요나 김 연출가 : 그래서 이 사람이 자기만의 장르를 만든 거잖아요. 오페라의 패턴이 그 당시 19세기에 너무나 관성적으로 아리아 하나 끝나면 박수 치고, 그다음에 기가 막힌 듀엣 하나 나오고, 또 합창단이 나와서 신나게 노래하고, 그러면 막 내리고 박수를 치고. 이거를 못 견뎠던 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은 예술가로서 너무 혁신적이었던 거죠.
탄호이저
김수현 기자 : 여기서는 아직 예전 오페라 형식이 남아있는 거죠?

요나 김 연출가 : 여기서는 과거의 이탈리아 형식이 조금 남아 있어요. 예를 들면 2막에 음유시인 전쟁할 때 합창단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 '약간 베르디 같은데?' 이런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아무래도 당시에 영향을 많이 받았을 테니까요. 또 베르디하고 바그너하고 동갑이에요.

김수현 기자 : 라이벌 의식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요나 김 연출가 : 나중에 베르디가 바그너를 처음 듣고 충격을 받아서 1년 동안 작곡을 안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그러고 나서 1년 뒤 시몬 보카네그라라는 오페라를 갖고 나타나죠. 거기에는 아리아가 없습니다. 혁신적인 음악 언어를 자기 식으로 실험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 아마 서로 영향을 받았겠죠.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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