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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 다 읽은 상'으로 100달러! 그러자 아이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 [스프]

[뉴욕타임스 칼럼] I Paid My Child $100 to Read a Book, by Mireille Silcoff

0913 뉴욕타임스 번역
 

* 문화비평가 미레일 실코프는 단편 소설집 "아라베네(Chez L'Arabe)"를 썼다.
 

이번 여름 나는 12살 딸아이에게 책 한 권을 다 읽은 상으로 100달러를 쥐여줬다.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에 기댄 것이다. 상금 액수가 너무 컸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렇게 한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에 아주 만족한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기대 이상이었다. 아이가 책을 안 읽어서 고민하는 부모들이 있다면, 과감하게 지갑을 열어 아이들에게 뇌물을 갖다 바치라고 귀띔해 주고 싶을 정도다.

딸아이는 무척 영리하다. 12살 때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명석하다. 그러나 내가 현금을 보상으로 내걸기 전까지 딸아이는 스스로 재밌어서 책을 한 챕터 이상 읽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읽어야 하는 교과서나 참고서는 마지못해 읽지만, 그마저도 썩은 이 뽑으러 치과 갈 때처럼 억지로 읽었다. 그걸 제외하면 그림을 곁들인 이야기책이나 "해리포터" 오디오북을 듣는 정도가 우리 아이 독서의 전부였다. 이런 활동은 고전적인 내 기준에서 제대로 된 독서 습관을 들이기엔 한참 부족하다. 내가 말하는 독서란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고 책에 파묻히는 거다.

몇 달 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 때는 마치 내가 부모로서 자녀 교육에 실패한 것처럼 느껴져 괴로웠다. 분명 아이가 어렸을 때 매일 밤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줬고, 우리 집에는 책이 가득한데도, 어쩌다 아이에게 인생의 가장 기본적인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 책 읽는 습관을 제대로 심어주지 못했는지 개탄스러웠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직전 나온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도 우울하기 짝이 없다. 독서를 재밌어하는 아이들이 급격히 줄었다. 13살 아이들 가운데 무려 30%가 "평생 한 번도 또는 거의" 책을 재밌게 읽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35년 전에는 같은 답을 한 아이들의 비율이 8%에 불과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무언가를 보는 시간이 급격히 늘어난 걸 고려하면 아이들에게 여가로서의 독서는 멸종 직전인 희귀한 취미가 됐다고 할 수 있다.
 
우리처럼 평생 독서가 취미인 사람들, 즉 평생 침대 옆에 쌓아둔 책더미를 보물처럼 여기고 책에서 만난 다양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을 마치 소중한 친구처럼 마음속에 간직하며 사는 사람들에게는 독서의 중요성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풍부한 경험을 쌓는 데 독서만한 게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 나도 스스로 평생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독서의 장점을 책 읽기 싫어하는 내 딸에게 설명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딸아이는 독서가 싫다고 말했다. 게다가 책 읽는 걸 왜 억지로 좋아하려고 노력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버텼다. 그렇게 책을 멀리하는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도 전혀 하지 않았다. 주변에 "책을 좋아하는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이에게 독서가 왜 즐거운지, 뭐가 좋은지 알려주려면 먼저 나 스스로 책을 읽으면서 어디서 어떤 즐거움을 얻는지 명확히 해야 했다.

작년에 딸아이에게 사준 스마트폰도 아이가 책을 멀리하는 원인일 거다. 물론 수없이 많은 자녀 보호 기능, 부모 제어 기능에 사용 시간도 제한해 둔 중고 아이폰이지만, 스마트폰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 아이는 냉장고에 새로 만든 디저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만 해도 좋아서 까르르 소리를 지르던 활기찬 아이였다. 그러나 스마트폰을 손에 넣은 뒤로는 커튼을 내리고 문도 걸어 잠근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방에 틀어박혀 작은 직사각형 속에서 헤어 나오기 싫어하는 단조로운 사람이 돼 버렸다. 스마트폰에서 잠시라도 눈을 떼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여기는 딸아이는 언젠가부터 스마트폰을 통해 친구와 소통하는 게 아니면 세상 모든 일에 똑같이 반응했다.

"재미없어."

부모가 정해둔 휴대폰 사용 금지 시간 동안 13살이 다 된 아이에게 억지로 웃어가며 물감을 꺼내 그림을 그리거나 종이접기를 해보자고 권해본 적이 있는가? 아이는 눈에서 분노로 가득 찬 레이저를 쏠 것이다. 머리털이 곤두서다 못해 다 빠져버릴 만큼 끔찍한 경험이니, 웬만하면 하지 마시라.

그래도 나는 독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도피처를 간절히 찾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나이대 아이들에게는 사실 당연하기도 하다. 문제는 지금 아이들에게 가장 손쉽게 닿을 수 있는 도피처가 스마트폰의 중독적인 혼돈 속으로 침잠하는 일이라는 데 있다.

나는 딸을 끈질기게 설득했다.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배우는 데 소설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딸아이는 소셜미디어에서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속마음을 다 드러낸다며, 소셜미디어만 해도 다른 사람에 대해 충분히 배울 수 있다고 맞섰다.

책은 이야기의 보고라고 꼬셨다. 딸아이는 "넷플릭스가 더 재밌어"라고 말했다.

책을 보면 역사를 배울 수 있다고 했다. 딸아이는 "인터넷 찾아보면 다 나와"라고 응수했다.

책을 읽으면 다른 누구보다도 너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말했다. 딸아이는 잠깐 생각하더니 심드렁하게 말했다. "음, 나한테 관심 없는데? 그냥 대충 살래."

딸아이에게 원하는 책이 있다면 뭐든지 다 사주겠다고 약속했다. 책장을 좋아하는 책들로 가득 채우면, 그래서 침대에 누워 책장 가득 꽂힌 책등을 바라볼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딸아이는 말을 잘랐다.

"엄마, 그건 엄마나 좋아하는 거잖아. 나는 관심 없대도?"

이건 이길 수 없는 논쟁임을 직감했다. 사실 딸이 독서가 싫다고 대는 이유가 딱히 틀렸다고 하기도 어려웠다. 물론, 독서를 통해 새로운 걸 발견하고 세계관을 넓힐 수 있지만, 그건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이런 논쟁을 벌이다 보면 서로 짜증만 나고, 결국엔 독서가 인지 능력이나 집중력을 기르는 데 "얼마나 좋은지" 장황한 잔소리만 늘어놓는 엄마(나)만 남는다.

사실 우리 딸아이가 책에 푹 빠져봤으면 하는 이유가 그런 데 있지 않았기에 더 문제였다. 그러니까 나는 독서를 통해 두뇌를 발달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것보다는 어떤 미묘한 마법이랄까, 딸아이가 그걸 느껴봤으면 했다.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었다. 당신이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작가가 요약해 줄 때, 수백 개 전등이 머릿속에서 갑자기 환히 켜지는 것처럼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의 느낌 말이다. 딸아이가 그런 걸 느껴봤으면 했다. 1982년 닐 포스트먼이 "어린 시절의 실종"에서 썼듯 TV처럼 화면을 통해 보는 영상 매체에서는 이런 걸 느낄 수 없다. 왜냐하면 영상 매체는 본질적으로 시선에 들어오는 모든 공백을 남김없이 채우기 때문이다. 반대로 책에는 공백이 가득하다. 공백을 헤매다 보면 내 안에서 영감이 발동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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