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정부 예산안이 발표됐습니다. 총 677.4조 원입니다. 올해 예산보다 20.8조 원, 3.2% 늘었습니다. 올해보다 돈을 더 쓰긴 하는데 3.2%는 많이 늘어난 건 아닙니다.
무슨 상황인데?
예산안을 짜는 기획재정부 수장 최상목 부총리가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대목입니다. 쉽게 말하면 '쓸 돈이 많지 않다'입니다. 작년에 56조 4,000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났습니다. 올해도 최소 10조 원 이상 펑크가 날 것으로 보입니다. 나라 곳간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던 세금이 덜 들어왔다는 건데, 그냥 덜 들어온 게 아니라 '역대급'으로 덜 들어온 겁니다.
이렇게 세금이 덜 걷히면 정부는 크게 두 가지 옵션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돈을 찍어내서 쓸 돈을 채운다. 두 번째는 덜 들어온 만큼 안 쓰고 아껴 쓴다. 첫 번째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운영 기조와 가깝고, 두 번째는 지금 정부와 가깝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부 때 나랏빚이 너무 늘었다면서 건전 재정을 나라 살림 운영 제1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예 GDP 대비 재정 적자를 '-3%' 이상 늘리지 않도록 재정준칙을 법으로 정하려고 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찍어내는 일은 가당치 않은 일입니다.
좀 더 설명하면
또 당장 내년에 의대 정원 늘린 것 대응도 해야 합니다. 교수도 더 뽑아야 하고, 교육시설도 확충해야 합니다. 나랏돈만 5년간 10조 원 투입할 예정인데 일단 내년에 2조 원 씁니다. 게다가 공급 부족해서 집값 뛴다 하고, 빌라 시장 무너져서 아파트 전셋값 폭등한다 하니 공공주택 25.2만 호 만드는 데만 내년에 14.9조 원을 씁니다.
그래도 600조 원 넘는 돈이 남는 거 아니냐 생각하실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예산은 크게 의무 지출과 재량 지출이란 걸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의무 지출은 공무원 월급 같이 꼭 의무적으로 나가는 돈을 말합니다. 이게 365.6조 원입니다. 677.4조 원 중에 55.6%를 차지합니다. 그나마 정부가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돈을 더 투입할 수 있는 게 재량 지출인데 311.8조 원입니다. 벌써 저출생+의대 증원+공공주택으로만 10% 넘게 쓴 겁니다.
그래서 돈을 아낄 곳을 찾아야 했는데 찾긴 찾았습니다. SOC입니다. 사회간접자본이라 불리는 SOC는 대표적 선심성 예산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도로 깔고, 철도 놓고, 다리 놓는 사업입니다. 예산 항목 12개 가운데 유일하게 SOC만 내년에 3.6%. 9,000억 원 줄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가 막힌 묘수가 하나 등장합니다. 대한민국 2025년 예산안 최고의 히트 상품 '1/3'은 여기서 탄생합니다.
한 걸음 더
우선, 다른 데 쓸 돈이 생깁니다. 없는 살림 쪼개서 살고 있는데 당장 1,000억 원 묶여 있어야 하는 돈 가운데 2/3, 666억 원의 '공돈'이 생긴 겁니다. 2년 연속 세금 펑크가 나서 곳간도 말랐는데 SOC 계산법 하나 바꿨을 뿐인데 돈줄이 터진 겁니다. '1/3'만 반영해서 얼마나 많은 여윳돈이 생겼는지 총량은 알지 못합니다. 그건 기재부도 밝히진 않습니다. 하지만 SOC 예산이 전체 25.5조 원이면 여윳돈의 규모는 결코 적지 않을 겁니다.
또 다른 효과도 있습니다. 돈을 덜 쓰는 것처럼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건전 재정 기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재정준칙 GDP 대비 재정 적자 '-3%'를 지키는 걸 지상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가 발표한 내년도 재정 적자 전망치는 '-2.9%'입니다. -3%에서 딱 0.1% 더 내려왔습니다.
만약 SOC 사업에서 첫해 1/3만 반영하지 않고 원래 하던 대로 100%를 다 반영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우선 당연히 SOC 사업 예산은 -3.6% 감소가 아니라 플러스로 돌아섰을 겁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GDP 대비 재정 적자 전망도 -3%를 넘어섰을 겁니다.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고지 '-3%'가 더 멀어지는 겁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